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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6 2025 기고 WWW.CANADAEXPRESS.COM 23
이민 수기 양영승의 ‘태극기가 나 영승이를 알아보는가?’
가정과 건강 네번째 이야기
글 사진 양영승
아내의 건강 회복… 장학금 후원
1995년 1월20일 경에는 아내가 오랫동안 낯 설은
이민생활의 고됨으로 인해 갑자기 뇌출혈로 의식 불
명 속에서 11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여러 날 동안 병
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가며 조심스럽게 정상적인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새로운 감사한 일을 해야 할 뜻깊은 하나의
사명을 주셨다. 지난해 교회 남선교회 회장으로 일
을 할 때 남선교회 주관으 로 (송년회 및 장학의 밤)
행사를 여선교회와 각 부서와의 협조 하에 잘 치루
었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면 여러 교인들과 소통
하면서 서로 보람을 느끼고 선교의 목적으로 모금
된 기금을 나의 교회와 가까운 고등학교 2곳에 크
리스찬 마인드가 있는 졸업 생들에게 매년 장학금
가정과 건강… 사랑으로 회복 를 통하여 주님의 은총 으로 건강도 점점 회복되 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 연말 행사에서
캐나다에 정착하여 이날까지 살아오는 동안 두 어 갔다. 모금한 금액을 이듬해 초 회장단에서 우리 아이들에
딸을 더 주시어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생 공장은 여전히 운영 되어가고 있음에 감사를 게도 못 주는 금액을 다른 나라 아이들에까지 줄 수
활해 오던 중 갑자기 간에 이상이 생겼다. 의사는 드리면서 그동안 방심했던 나의 생활에 회개하 있겠느냐고 하면서 교회내 우리 아이들을 불러 세워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으니 쉬어가면서 일을 좀 는 나에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시어 나의 놓고 기금을 다 나누어 주고 말았다.
줄이고 음식을 주의하라고 나에게 큰 경각심을 몸도 차츰 회복시켜 주시고 마음의 여유도 주셨 이로 인하여 내가 예년에 시작한 장학사업이 사
주었다. 다. 그때에 큰 딸이 SFU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정상 중단해야 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몸이 약해지니 떠나온 고향이 몹시도 그리워져 연세대학원에 다니던 중에 신랑감을 소개받아 사 나는 이웃 사회에 우리도 함께 참여한다는 보람
서 한국에 나가 약 한달 동안 머물며 많은 생각 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건강 할 때 한 자녀 라 을 가지고 큰 마음먹고 시작한 장학사업을 이대
을 하였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는 날까지 식 도 출가시켜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집을 보내기로 로 포기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또한
구들을 다시 한국에서 살게 할까 하고 별 의별 하였다. 두개 학교로부터 어렵게 승낙받은 그 사업을 어떻
생각을 다하였다. 괴로웠던 나날속에 종종 어머 게 해야할까 하고 고민했다. 하나님께서 나와 우
님 산소를 찾았다. 고국을 떠나기 전 무릎 꿇고 로타리 클럽 활동… 한국방문 리 가정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순종하
기도드리며 성공하여 돌아오겠다고 다짐하고 고 큰딸을 출가를 시키고 나니 우리 부부 마음에 는 마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 제 아내의 건강을
향을 떠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병 도 여유가 생겼다. 그 때부터 내가 속해 있는 캠 아시지요! 담당 의사님께서 당부하시기를 아무
이 들어 돌아왔으니! 어머니 이 일을 어찌 할까 비 로타리 클럽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속마음 다 내려놓고 살아
요! 하면서 애통해 할 때에 어머님께서 “영승아! 이 국제 로타리 컨퍼런스(Conference) 에도 여러 번 가면 앞으로 10여년은 아무 탈 없을 거라고 했습
제부터는 네 형제들이나 누나, 조카들에 대하여 참석하면서 세상 구경도 하고 2016년 5월 28일 니다. 저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 가겠습니다”
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네가 뿌린 씨앗들, 네 자 에는 한국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밴 고 기도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사업은 나와 우리
식들과 식구들만 생각하고 살아라. 여기 식구들 쿠버 5040 지구 회장 내외분 이곳 캐나다 로타리 가정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
은 이제 다들 자기들이 알아서 잘살게 될 것이다” 안 28명 들과 함께 참석했다. 모든 일정을 성황 을 받아들여 실행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해 6
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요! 어머님! 리에 마치고 서울 명소들도 구경하며 저녁식사 시 월 졸업식에 맞추어서 3,4,월경에는 미리 송금하
어머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명심하고 지체하지 간에는 인사 동에 소재한(처마끝 하늘 풍경)이라 여 실행해 옮겼다. 내가 바빠서 못 참석 하면 딸
않고 가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는 한정식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친교 들이, 때로는 당년에 사회 봉사부장이나 부목사
또 청운의 꿈을 안고 어린 자녀들이 기다리는 밴 도 하며 작은 보람을 느끼면서 즐거운 저녁 시간 님, 목사님께서도 졸업식에 참석하셔서 학생들에
쿠버 가족 품으로 돌아와서 비록 몸은 병들었지 을 갖기도 하였다. 다음날은 동료 여러 명이서 게 장학금을 증여해오고 있다. “아내의 건강이 다
만 새로운 각오로 날 위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님 명동 거리를 활보하면서 새로운 명물들 과 가개 할때까지 이사업을 (Vancouver Han-in Church
과 나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을 의지했다. 간 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아울러 길거리 자판 음식 Aard) 이름으로 (Gladstone과 David Thompson
에 좋다는 당근 주스를 매일 만들어 주는 아내 들을 하나 둘 맛보다가 군것질로 그만 우리 일 Secondary School) 에 보내야겠다는, 하나님과
의 꾸준한 정성에 감사하며 생활 반경을 줄이기 행은 점심을 대신하기도 했다. 저 양영승이와의 무언의 약속으로 여기고 계속 실
로 하고 정들었던 언덕 위의 아름다운 집에서 12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40여년 후 세계 속의 행되어 갈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
년 간의 좋은 추억을 남겼다. 또 생활 반경을 줄 한국에 나와 있는 시간들로 착각할 정도로 발전 다”고 나는 기도했다. 아내의 수술 후 이날까지
이기 위하여 공장이 좀더 가까운 밴쿠버 빅토리아 되어 있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각국 다른 외국 관 옆 에서 잠을 자는 아내의 숨 소리가 안 들리면
40가 근처로 내려와 오직 교회와 공장과 집 만을 광객 들과 함께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불안해 하는 내 마음을 아시는지 조심스럽게 ‘드
오가며 근신하는 마음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 그 동안 잠깐 나의 힘들었던 이국 생활의 일들이 주 르릉’하고 들리는 코고는 소리는 지금 까지도 나
러면서 간증 집회와 트래스디아스와 신앙수련회 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로 하여금 포근한 잠을 자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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