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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ANADA EXPRESS / LIFE                                        기고                                                     AUGUST 28 2026





                                            북한에서 8박 9일의 기록 4













           3월 28일 수요일
           아침 8시20분에 전기가 들어왔다 시동을 준비하
          는데 10시 10분쯤에 나간 이후로 하루 종일 무소식
          이다. 점심 후 우리에게 식사를 준비해주는 아주머
          니에게 고맙다고 몰래 미화 20불을 쥐어 주었다. 저

          녁때 나를 보더니 아주 고맙다고 남 몰래 눈 인사
          를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여인은 상업학교를
          나와 평양 민경련 사무실에서 경리를 보는데 이번
          시운전 기간 현장 시운전 팀 조리 담당으로 차출되
          었단다. 본부 경리과에서 졸지에 지사 경리도 아니
          고 취사담당으로 둔갑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야적된 원광석의 혼-배합(Blending), 송-배수관
          의 위치 및 높이 변경, 급광기 속도 조절, 등 잡다한
          작업을 지시해 두었다.  한 낮이 되니 바람은 차갑

          지만 제법 따스한 햇빛이다. 철조망 너머 먼 논에서
          밭갈이하는 사람 4명이 보인다. 한 사람은 감독인
          것 같고 중간 한 사람이 삽으로 흙을 파면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이 삽의 양 옆에 달린 줄을 당긴다. 이                  만경대 혁명 기념관 전망대
          렇게 하루 종일 논에서 흙을 뒤집는 작업을 한다.
          감독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서성거리                      가 와서 가동을 시작했다. 추운 방에서 꼬부리고                     있다. 내 선산이 금사동에 있는데 여기 “공화국”까
          면서 가끔 담배를 피운다. 이분은 소위 “지도원”인                   자기보다는 공장에 나와 북한의 기능공들과 기계                      지 왔으니 조상들 묘소에 참배를 허락해준다면 약

          가 보다.  밤이 되니 유난히 춥다. 아마 영하 5도는                 가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편한 것 같다. 지친                  소하지만 갖고 온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내 부친
          되나 보다. 그런데 전기는 감감 무소식이다. 이렇게                   몸으로 새벽 5시쯤에 들어와 한 3시간 자고 8시경                   께서 생전에 그려주신 선산 묘소의 약도를 주었다.
          해서 또 하루가 지났다.                                  에 다시 현장을 둘러보았다.                                고조부모(합장), 증조부모(합장), 조부, 3인의 조모
                                                          여기 저기 용수가 넘치기도 하고 공회전하는 펌프                    이렇게 6개의 선산 묘소 그림 복사지를.
           3월 29일 목요일                                    들도 있지만, 전기가 계속 들어온다면 공장은 돌                      조금 전에 나를 보자면서 하는 말이 “박사 선생,
           두꺼운 어름을 깨고 정신이 번쩍 나게 찬물로 세                    아갈 것 같다. 그래야 보수/보완 상황을 판단할                     포기하시라요”한다. 이유인즉은 오늘 “피양으로 떠
          수를 하려는데 주방 아주머니가 내 옆을 지나는 척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작업자들은 각자 맡은 위                    나야디요”다. 군소리 할 수 없이 “알았어요”했다.
          하며 툭친다. 눈짓으로 잠깐 기다리라는 듯했다.                     치에서 하라는 일은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급수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만약 묘소가 1~2개라면
          앞뒤 눈치를 보더니 김이나는 물 한 바가지를 얼                     발브를 10분에 1분씩 열었다 닫았다” 하라고 하                    급조했을 가능성이 있단다. 묘소가 문제아니라

          른 내 앞 얼음물 세숫대야에 던지다시피하며 사라                     면 공급수가 있던 없던, 1분이 너무 길어 하부가                    돈을 뜯는 것이 우선이니까. 캐나다 귀국 후 어느
          진다. 오랜만에 미지근한 물에 비누칠 세수를 했다.                   범람하던 말던 그냥 하라는대로 한다. 그래야 책                     매체에서 북한 방문자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자
          이것이 몇일전에 건낸 20달러의 뇌물인지 보은인지.                   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29일이 지나고 30                세히 보니 새로 급조된 듯이 풀을 듬성듬성 심은
          보는 사람도 없는 판에 어름 냉수로 몇 일 고양이                    일을 맞이했다.                                       누런 묘소에 참배하는 모습이었다. 비석도 없고 새
          세수를 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제일 힘들었던 일은                                                                   로 자른듯한 허연 나무 판대기가 비석인양 묘소 앞
          화장실 가는 것이다. 40여년이 넘도록 안하던 동작                    3월 30일 금요일                                    에  있었다.
          을 마치고 일어나려는 과정은 정말 표현하기가 어                      오늘 아침에 모든 것을 끝내고 평양으로 간단다.

          렵다.                                            갑자기 자기네 맘대로 일정을 정하나 생각이 들고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북한에
           어느 진화론자들은 직립인간 (Homo Erectus)이                몇일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가만히                      가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
                                                                                                            각하며 개칠하듯이 가끔 긁적거렸던 노트를 정리해서 순서대
          지구상에 나타나기까지 몇 10만년이 걸렸다고 하                     생각하니 모든 일정은 전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                        로 몇자 적어본다. 현지에서 그때그때 간단히 일기처럼 메모한
          던데.                                            이외에는, 참사위원이 주관하는 것 같다. 물론 그도                      것들 것 모아 보았다. 원래 글 재주가 없는데다가 우리말을 써
           하루 종일 전기가 들어오질 않는다. 해주호텔에                     보이지 않는 상부지시를 받겠지만.                                본지도 오래돼서 무슨 글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의 사건이고
          서 팩스가 왔다고 참사위원에게 연락이 와서 2인                      이제 마지막 날이다. 나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                       부분적이지만 북한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왕복 140Km를 약 5시간만에 가지러 갔왔다.                   야겠다. 나는 서울 태생이지만 우리 집안은 대대로
          참사위원은 정보용 핸드폰이 있나 보다. 투자자인                     개성에 본거지를 둔 소위 송악 터주 집안이다. 6.25                                                  글 김 주영
          광진공 본사와의 1회 교신에 24시간이 더 쇼요되는                   동란 한달 전 5월중순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                          1966, 인하공대 졸업, 1969, University of Missouri-Rolla, Graduate

          현장이다.                                          누런 삼베 상복을 입고 개성인근 중서면 연하리 금                            School, 공학석사, 1970-1972, 한국 KIST 제련연구실 연구원,
                                                                                                             1973-2002, Noranda Inc.(현재 Glencore사) Senior Metallurgical
           지시한 여러 작업 중 전기가 없으니 철판, 쇠파이                   사동 선산에 장례를 치른 기억이 난다.                             Scientist,2003-2017, 대한광물자원공사(광진공), 삼성물산(해외자원사
          프 등의 절단-용접은 꿈 속이다. 새벽1시쯤에 전기                    몇일 전 참사위원을 밖으로 불러 부탁을 한 바                        업), 고려아연,  Ambatovy사 기술고문. 서울공대, 인하공대, 한양공대,
                                                                                                                전남공대,  POSCO E&C, 단기강좌(Short Course) 초빙교수
                                                                                                                                        현재 써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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