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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8. 2025                                             |  기고  |



                                                                 수박 예찬



                                                                                                                                 글 | 최금란
                                                                                                                            수필가, 전 밴쿠버 한인회장




              예전에 밴쿠버의 여름은 그다지 무덥지 않았다.
             여름에 섭씨 30도 이상 되는 날은 손을 꼽을 정도
             였다. 열대야 현상 같은 것은 먼 나라 얘기였다.
             에어컨이 있는 집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국 여행자들이 밴쿠버에 오면 여름에도 솜이불
             을 덮고 잤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여기도 여름이
             덥다. 생태계의 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 때문이다.
             그래서 마트에서 선풍기,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
             고 있다.
              서울의 경우 7월에 열대야가 22일이나 지속되었
             다. 118년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운 7월의 기
             록이다. 밤낮의 평균 기온이 29도에 가까웠다. 기
             상학자들은 7월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8월이 더
             무덥다고 한다. 서울만 더운 것이 아니고 전국 어
             디나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신음하고 있다.
              한국에 비해 이곳 여름은 그다지 덥지는 않지만,
             가끔 견디기 어려운 찜통더위가 사람들을 힘들게                    어서 다행이다. 밴쿠버에서 수박 한 통에 30-50불               상 사치품 중 수박이 으뜸이고 과일 중의 왕이라
             한다. 이러니 사람들이 만나면 날씨 얘기가 빠지지                  을 지불해야 한다면 금값이라고 수박 먹는 사람                   고 했다. 수박을 맛본 사람은 천사들이 뭘 먹는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대형 몰에 가서 더위를 식히                  이 많지 않을 것이다. 수박은 93%가 수분으로 되                알게 된다고 수박의 가치를 최고로 꼽았다.
             고, 심지어 도서관에 가서 그냥 피서하고 있다.                   어있다.                                         그는 소년 시절에 미시시피 강변의 소도시에서
              여름 더위엔 수박보다 더 시원하게 하는 것은 없                   여름철 걸리기 쉬운 탈수 현상을 방지한다. 수박                 수박을 하나 훔친 일이 있다. 수박을 쌓아 놓고
             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 마트마다 유난히 수박이                   은 항산화 성분인 리코펜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농부가 파는 데 정신이 없는 사이에 수박 한 통
             많이 팔리고 있다.                                   젊음의 과일이라고 불리고 있다. 심장병과 암 예방                 을 훔쳐서 뒷 구석에 가서 돌멩이로 수박을 깨보
              예전에 토론토 살던 사람들이 밴쿠버에 오면 수                   에 좋으며 근육 통증을 완화해 준다.                        니 붉은색은 찾아볼 수 없는 풋과일이었다. 그는
             박이 맛이 없다고 불평했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수박의 단맛이 혈당을 높여준다고 생각하지만                    배짱 좋게 설익은 수박을 들고 가서 농부에게 보
             대부분의 수박이 미국 미시건주에서 온다.                       그렇지 않다. 혈당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                이고 먹을 수 없는 수박을 팔았다고 일장 훈시를
               여름이 무더우므로 모든 수박이 달고 맛있다.                   타민 C보다는 A가 풍부하고 쉽게 소화되는 건강                  했다. 그렇게 해서 잘 익은 수박 하나를 받아서
             밴쿠버는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아서 워싱턴주에                    과일이다.                                       맛있게 먹었다.
             서 온 수박이 맛도 없고 상당수는 잘 익지 않았                     사람들은 너무 흔한 것에 가치를 낮게 보는 경                  마크 트웨인이 후에 수박 훔친 얘기를 한 것은
             다. 올해는 다르다. 마트에서 산 수박은 대부분                   향이 있다. 쉽게 구할 수 있고 또한 저렴하기 때문                정직하지 못한 짓에 대한 반성이었다. 훔친 것은
             잘 익고 맛도 좋다. 다행한 것은 예전에 비해 수박                 이다. 최영미 시인은 수박을 "땅 위의 달", "심오함              나쁘나 솔직히 과거의 잘못을 시인했다는 의미에
             가격도 퍽 저렴하다.                                  의 창고"라고 표현했다.                               서 그는 천성이 바른 사람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서울의 올해 수박 가격은 보통 3만원을 넘는다.                   작가 허수경은 수박을 보면서 "아직도 둥근 것                   아직도 8월 한 달이 여름이다. 얼마나 더울지 좀
             좀 비싼 것은 5만원 정도이다. 여기 돈으로 환산                  을 보면 아파요"라고 했다. "나, 수박 속에 든 저               걱정된다. 하지만 수박을 먹을 수 있다면 더위 따
             하면 50불이다.                                    수많은 별들을 모르던 시절 나는 당신의 그림자                   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여름철 폭염과 일조량 부족 등으로 생산량이 감                   만이 좋았어요"라고 노래했다.                             수박 한 통을 식탁에 쪼개어 놓고 남의 눈치 보
             소하면서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을 쓴              지 않고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삶은 행복이고, 여
             10불 정도면 크고 맛있는 수박을 쉽게 살 수 있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 은 이 세            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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