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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ANADA EXPRESS / LIFE INTERVIEW FEBRUARY 09 2024
게임 아티스트가 궁금하다
이철주 게임 아티스트가 전하는 캐나다 게임회사 취업 노하우
요즘 게임 아티스트를 직업으로 원하는 학생들이 많다. 특히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흥미를 넘어 게임 제작까지 도전해 보고자 하는 게임 아티스
트를 꿈꾼다. 게임 제작시 일반적으로 게임 아티스트, 게임 기획, 프로그래머로 크게 분류된다. 각각의 세 팀은 프로덕션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아티스
트들은 보통 게임상에 보이는 모든 비주얼 그래픽 아트를 만들며 게이머가 조정하는 모든 캐릭터와 배경, 애니메이션, 메뉴, 게임 플래이에 필요한 아이템 등 모든 것
을 제작하는 전문인을 말한다. 게임 아티스트는 아트적인 비젼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다양한 2D/3D 모델링, 애니메이션 그리고 스패셜 이팩트를 위한 툴과 프로그
램을 잘 다루어야 한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20여년 이상의 게임 아티스트 경력과 최고의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한인 이철수 아티스트를 만나 게임 아티스트의
세계를 들어봤다. 이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Q 한국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 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당연한 사실인 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우
고 유학길에 오르다 데 그걸 고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 리 게임은 유럽을 배경으로 한 2차대전
2000년 동아일보와 LG 가 주최하는 만 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회사와 개인 삶 게임이었다. 캐릭터 아티스트인 나는 유
화 애니메이션 패스티벌에서 가고시마로 에 밸런스가 맞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 럽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다. 한국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대상상금과 콘소시엄 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
을 통해 정부에서 후원금을 덤으로 받았 었다.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유럽인을
다. 한순간 뜻하지 않게 많은 수입이 생 직장의 구조 체계 그려도 그곳엔 항상 한국인이 있었다.
겨서 제정적으로 튼튼해졌고 이제 유학 한국은 수직적인 보고와 명령체계지만 유럽인같이 안 보이기 때문에 몰입감 있
에 대한 걸림돌은 모두 사라졌다. 뒤늦게 캐나다는 직위구조와 명령체계가 수평 고 생동감이 나야 하는데 부족한 면이
KBS에서 내 작품인 가고시마를 애니메이 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상 있었다.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익숙하
션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일상이고 그 상 지 않은 캐릭터라서 그런가 나에겐 쉽지
유학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시점이어서 쉽 사는 그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마치 피 않은 도전이었다. 회사에서는 조심스럽
게 결정할 수 없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라미드처럼 상하 지휘체계가 뚜렷한 시 게 나 대신 다른 사람이 그 캐릭터 작업
내 계획을 위해 유학을 결정했고 2001년 스템이었다. 그러나 캐나다는 팀에 많은 을 맡는게 어떨까하는 사람이 생겼다.
한국을 떠나 밴쿠버로 왔다. 그렇게 캐나 상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주니어 시니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 구분은 있었지만 제작하는 동안에는 그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나름 힘든 상
누구에게 보고하고 명령하고 그런 구조 항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Art speaks
Q 한국과 캐나다 직장의 차이점 는 아니었다. 그래서 상사에게 보고해야 itself!’ 스타일 탓도 해봤지만 결국 문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은 캐필라노 대학 한다는 압박감은 없었다. 제는 내 아트에 있었다. 아트에 매력이
이철주 게임 아티스트 을 졸업하고 정확히 2003년 초부터 시 한국은 조직의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 없으니깐 벌어지는 일이고 모든 것은 핑
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원화 에 보고와 상하 직위체계가 선명했던 것 계에 불과했다. 너무 유럽인에 가까울
Q 캐나다 이민 동기 감독을 했지만 캐나다에서는 렐릭 엔터 같고 여기 캐나다는 개개인의 성취감을 필요는 없다 독특하고 멋있는 캐릭터를
한국에서 거주 시 KBS 2 TV에서 3D 테인먼트에서 3D 캐릭터 아티스트로 시 더 높게 봤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감을 더 만들면 된다! 컨셉이 바뀌니깐 스타일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었다. 작하였다. 필드가 틀려서 정확한 비교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 바뀌고 작업능률도 휠씬 빨라졌다. 남
그 당시 북미에서는 픽사의 토이스토리 할 수 없지만 보편적인 차이점을 중심으 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만
가 빅히트를 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3D 로 말하고자 한다. Q 캐나다 직장에서의 생활 든 컨셉대로 캐릭터가 완성이 되었다. 그
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하던 시기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21년째 게임아티 리고 몇 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그 게임이
였다. 한국에서는 3D 애니메이션을 배울 직장 문화 스트로 일하고 있다. 초반에는 언어의 출시됐다. 예상과 달리 전세계적으로 히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 아무래도 문화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장벽이 커 진급을 위한 면담을 하게 되 트를 했다. 제작 초반에 캐릭터에 대한
문에 대부분 3D 애니메이션 제작인원의 언어의 장벽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생 면 항상 커뮤니케이션 스킬에서 많은 점 우려가 있었지만 게임 출시후에 그 우려
리드들은 모두 외국에서 유학을 한 사 활습관과 사고가 틀리기 때문에 오는 수를 잃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진급이 가 모두 사라졌다. 왜냐면 기존의 RTS
람들로 체워졌다. 북미와 한국의 수준 불편함 그리고 오해 그런 것 때문에 직 느렸다. 그래서인가 연봉도 생각처럼 빨 캐릭터보다 휠씬 수준이 높고 실제감이
차이는 정말로 컸다. 때론 절망적이었고 장내에게 가끔 힘든 시간을 보낸 적도 리 오르지가 않았다. 나름 스트레스를 있으며 디테일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서부터 나의 목마름은 시작되었다. 많았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의 근면 성 받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회사에서 보너스도 받고 진급도 했다.
그러던 중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개인 실함 때문인가 회사에 나 혼자 늦게 남 만족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려 얼마후에 내가 컨셉 아티스트로 참여했
적으로 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소포 아서 일하는 날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고 노력했다. 던 웨해머(dawn of war) 가 곧바로 출
트 이미지와 3D 마야를 좋아했다. 그 두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시에 시됐다. 역시 마켓에서 대성공을 거두었
프로그램은 가격도 비싸서 그 당시에 일 퇴근하면 괜히 일을 못하는 사람처럼 인 Q 캐나다에서 첫 게임 제작 다. 게임이 잘 되니깐 그저 팀원의 일부
반 중소회사에서는 사용하기 부담스러 식될까봐 두려워 되도록 오래 남아 있었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company of 로써 보람을 느끼고 내가 하고 있는 일
워하는 고급스런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다. 난 그런 근무태도가 자연스러웠지만 heroes)가 필자가 제작에 참여한 캐나 에 자부심이 생겼다. 그리고 자기의 강
그 두 프로그램을 만든 캐나다를 동경 여기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에서의 첫 게임이었다. 그 게임의 캐릭 한 신념과 비젼이 있다면 주위 반대에도
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을 가게 되 누구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일에 충실하 터 팀을 이끌고 있었다. 캐릭터는 게이 한번 밀어부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면 꼭 밴쿠버로 가기로 맘 먹고 있었다. 면 굳이 회사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 머가 게임 플래이를 이끌어가는 게임에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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