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CANADA EXPRESS NEWS
P. 53
MAY 9 2025 기고 WWW.CANADAEXPRESS.COM 23
이민 수기 양영승의 ‘태극기가 나 영승이를 알아보는가?’
자동차 정비와의 인연 세번째 이야기
글 사진 양영승
한국 영사관에 입국 신고를 하고 고용된 회사를
찾아갔더니 자동차 보험 회사 ICBC가 Strike 를
하여 3개월 후에야 일을 시작하게 될거라 하였다.
그동안 임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근처 Manpower
사무실에 찾아가 나의 형편을 얘기하였더니 나
의 딱한 사정을 듣고 담당직원이 1개월 아파트
랜트비와 약간의 생활비로 400달러 수표를 주
면서 어려우면 다시 또 오라고 나를 위로해 주
었다. ‘아! 이렇게 좋은 나라가 세상에 다 있다니!
참으로 좋은나라로구나! 열심히 노력하여 은혜
에 보답해야지’라고 나는 다짐하고 식구들을 위
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감사드렸다. 며칠후 다
시 일자리가 나왔나하고 Manpower 에 가 보았
더니 구인 광고가 있어 가 보았다. 그런데 주소를
군대 입대 … 자동차 기술 교육 모집 등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혹 나 잘못 찾아서 자동차 수리를 취미로 하는 젊은이
젊은 시절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어려울 때에 군 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올까 하고 아침 일찍부터 를 만났다. Mr Oliver Neeld 씨는 Pacific Auto
대에 입대하여 618 주특기를 받고 (진해) 수송학 그 대열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Body라는 면허를 가지고 자기 집 조그마한 차고
교에서 자동차기술교육을 받았다. 그 시절 소위 에서 사고차량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가 나의 형
계급장을 단 육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교관 캐나다 이민의 꿈 편을 듣더니 찾아가려는 주소는 국수 공장이니
이 “혹자는 군대를 인생에 잠깐 쉬어가는 코너라 안국동 뒷골목 해외 직업 소개소를 찾아 다니 가서 신고만 하고 다시 여기와서 자기 하고 일을
고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제 부터 이 나라에 진짜 던 그 힘든 시절에 우연히 처가쪽으로 먼 친척 되 하자고 권유했다. 그래서 나는 ICBC Strike 가
사나이가 되어가는 출발점이다라고 생각하고 주 는 분이 캐나다에서 학위를 받고 성공하여 고국 끝날 때까지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Olive씨의
어진 교육에 성실 하게 임하여 1.2 3 등 수에 오른 에 잠깐 다니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만났다. 나 작업복을 입고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Olive씨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부대에 배속 받을 수 있는 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평범한 한국사 내가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주위 사람들
특혜를 받게 될 것이다” 며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람도 그런 나라에 가서 살수 있겠느냐고 물었 에게 보여주며 일거리를 많이 얻어왔다. 그렇게
도 My car시대가 올 것이다 이곳에 온 제군들은 고 기술자는 이민하는데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일한지 2개월이 되었을 무렵 폐차장을 하는 자
행운아들임을 명심하고 충실히 노력하여 좋은 성 며 용기를 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희망을 가지고 기 친구로 부터 73년도 Toyota station wagon
적으로 전과정을 잘 마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 자격증과 이력서를 영문 번역하여 공증 받아 그 폐차된 차량을 가져와 수리를 (Rebuilt) 하여 검
다. 그리고 그 교관은 우리 모두에게 국민교육 친척이 있는 캐나다로 보낸지 3여년만에 (구하라 사를 받더니 합격했다고 하면서 내이름으로 자
헌장을 읽게 하면서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구할 것이 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 동차 등록을 해주어서 중고차지만 난생 처음으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중략…성실한 마 릴 것이니라 )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편지와 로 내 이름으로 된 내 차를 가졌다. 곧 이어 고용
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 함께 CANADA Vancouver에 있는 Musgrove 된 회사에서 오라 하여 나는 그 해 1975년 9월 부
며 나라를 사랑하자”라고 하신 말했다. Ford Sales Ltd 에서 채용해 주겠다는 (고용계 터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 2개월만에 월부외
나는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열심히 노력하여 훈 약서) 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즉시 홍콩에 있는 상비행기 값을 갚고 한국에 있는 형제들을 그리
련 과정을 모두 마치고 졸업 할 때에 등수안에 캐나다 영사관의 승인을 받아 비자를 받고 반공 워하며 송금도 조금씩 하였다. 나는 지금도 고
들어서 기술을 더 배울 수 있는 부산병기 차량 창 소양 교육을 받은 후 곧바로 NorthWest Orient 국과 어머니가 계신 서쪽을 향하여 바다가 보이
에 배속되어 값진 경험을 하고 68년 9월14일자로 Airline에 캐나다 에서 보내온 고용계약서를 보 는 West side of the Burnaby Mountain서 건
만기제대를 하여 군대에서 배운 기술로 자격증도 이고 우리 가족 모두 월부상환 외상 비행기(Fly 너다 보며 ‘바다위로 반쯤 안개가 항상 걸려있어
하나,둘,씩 취득해가며 군대 선배의 도움으로 직 Now-Pay Later Application)을 내었더니 비행기 하나님의 입김이 운행 하시더라’ 라는 말씀을 상
장을 얻었다. 그 후 나는 결혼도 하고. 딸, 아들, 표가 나와 일본 나리타 공항을 경유하여 시애틀 기한다.
우리 4식구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며 생활했다. 을 거쳐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제대후에 의무적으로 받는 향토 예비군 훈련에도
참여하면서 옛 군대 동료들을 만나 서로의 근황 밴쿠버에서의 시작 … 우연이 필연이 되다
을 이야기하며 장래의 살아 갈 길을 늦도록 의논 처가쪽 친척 분들의 따뜻한 마중을 받으며 그
했다. 그러나 당시의 현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분 집에서 일주일 가량 4식구가 함께 기거하다
는 장래의 아이들 교육이나 생활비가 턱없이 부 방을 구할때까지 또 다른 한인분의 집에서 몇일
족하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나는 중에 마침 가구가 포함 된 아파트가 고
당시 독일 광부 모집과 사우디 아라비아 근로자 용된 회사의 근처에 있어서 입주하였다. 다음날
본 지면에 게재된 기사, 사진, 그리고 광고 등에는 오류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게시자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The information on this page might contain typographical errors or inaccuracies, please verify through the publis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