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CANADA EXPRESS NEWS
P. 54

24         C LO S E  U P                                                                                                     MARCH 08 2024










                  진실은 스토리다





               '추락의 해부'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결론을 원하는 이들에게 쥐                화였다면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 사건에 얽힌 정                  주장하는 것은 모두 결국 창조된 이야기이다. 그리
               스틴 트리에(Justine Triet·46) 감독의 새 영화 '추락      황과 관계가 명료하게 드러나겠지만 트리에 감독                   고 이들은 구멍 난 사실 관계 사이 사이를 상상력으
               의 해부 ANATOMY OF A FALL’는 최악의 답안지           은 오히려 이 사건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흐릿하게                 로 채워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로 만드는 작가들이
               다. 한 남성이 3층짜리 집 꼭대기에서 추락해 숨진               몰아 간다. 사뮈엘이 누구에게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산드라와 그의 학생이 주고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에는 공식이니 정답                혹은 어떤 경로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에 관한 사                 받는 소설 작법에 관한 대화는 이 작품의 방향을
               이니 하는 정석이 없다.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실 관계는 추가하지 않고, 이 죽음과 직접 관련 없               처음부터 드러내고 있었다.
               끝에 가서 마주하게 될 것을 보기 위해 손을 더듬어               는 세 가족의 관계에 관한 팩트만 하나 둘 던져 놓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추락의 해부'는 아들 다니엘의
               가며 전진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 영               는다. 산드라가 변호사에게 "난 사뮈엘을 죽이지 않                '작가 되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검사가 타살
               화는 '떡밥 회수'를 하지 않는다. 초점이 맞춰진 부분             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답               을, 변호사가 자살을 주장할 때(각자 스토리를 써
               은 회수가 아니라 떡밥. 떡밥은 어떻게 뿌려졌고, 왜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려 갈 때) 판사·배심원(독자)이 가장 관심 있고 판
               뿌려졌는가. 그리고 이 떡밥은 뭘로 만들어졌고 과                  말하자면 이 영화는 추락을 해부하는 게 아니라                 결에 가장 큰 영향을 줄(채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
               연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오는가. '추락의               추락이 해부해버리는 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추                은) 증언(스토리)은 아들 다니엘에게서 나온다. 다니
               해부'는 끝맺음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토의               락의 해부'는 사뮈엘이 떨어진 이유를 규명하는 덴                 엘은 몇 차례 번복 끝에(시행착오 끝에) 재판 관계
               를 끌어내려 한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사망한 원인을 파헤                자 대부분이 수긍할 만한(가장 그럴싸한) 증언을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과 알게 된 것을 들여다본                 하고(스토리를 쓰는 데 성공하고) 그의 발언은 재판
               영화는 언뜻 추리물이자 법정물처럼 보인다. 남편                 다. 그건 열등감과 우월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꾸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가장 많은 이들의 지
               사뮈엘이 집 3층에서 추락했고, 집 안에는 유명 작가              만 엇나가기만 하는 부부 관계이고, 죄책감과 연민                 지를 받는 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온갖 주장과 추
               인 아내 산드라만 있었다. 문제는 사뮈엘 머리에 난               이 어른거리는 부자 관계이기도 하며, 사회가 규정한                측이 난무하던 이 사건은 마치 진실에 도달한 듯한
               상처. 부검에 따르면 둔기에 맞았을 수도 있고, 어               도덕과 개인이 가진 윤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형태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진실이란 어쩌면 드러
               딘가에 부딪혔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타살일 수                인간들이기도 하다. 다만 '추락의 해부'는 이 지점에               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 결정하는 것이다.
               도 있고, 자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고사일 수도                서 한 번 더 도약하며 이야기를 확장한다. 이 영화가               다니엘이 고도 근시를 가진 장애인이라는 건 작가
               있다. 아들 다니엘은 아버지가 추락하던 시간에 산                 제시하는 사실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공백이 존                 라는 존재에 관한 메타포다. 작가는 기자가 아니다.
               책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목격자도 없다. 그런데 이                재하고, 사뮈엘의 죽음으로 최소한의 교차 검증을                 보고 들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건 기자의 일이
               상한 점이 있다. 자살 또는 사고사라고 했을 때 머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단일한 진실이 성립되지 못하                  고, 본 것과 들은 것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 가
               리를 부딪혔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사뮈엘의                   게 한다. 이제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실             상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작가의 일이다. 다니
               DNA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반대로               이란 건 무엇입니까.'                                엘은 정확하게 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들
               타살을 입증할 증거도 없다. 이제 관객은 사건의 전                 어떤 죽음이 주는 충격으로 시작해 온갖 의혹과                 은 것의 맥락 역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말이 밝혀져 이 추락이 온전히 해부되길 기대할 것이               추리가 난무하는 법정 다툼의 스릴로, 결국 폭로되                 기자가 될 수 없지만, 대신 작가가 될 순 있다. 전혀
               다.                                         고만 어느 가족의 내밀한 관계를 지나 결코 손에 잡                볼 수 없거나 아예 들을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추락의 해부'는 장르를 경유하며 관객을                히지 않는 진실의 애매함을 통과한 '추락의 해부'는                반대로 완벽하게 볼 수 있거나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기만한다. 변사체로 발견된 한 남자에서 시작된 이                이쯤에서 멈출 만도 하지만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새                건 아니기 때문에 다니엘은 사실과 사실 사이의 빈
               영화는 산드라가 기소된 이후 주무대를 법정으로                  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트리에 감독이 이 영화                곳을 자기 나름의 상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말
               옮겨 아내의 살인을 주장하는 검사와 그의 무혐의                 를 통해 끝내 도착하려는 장소는 스토리텔링이란                   하자면 그는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작가가 될 수밖
               를 입증하려는 변호사가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을                  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어떤 증거도 목격자                 에 없다.
               담는 데 러닝 타임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평범한 영              도 전무한 상황에서 검사·변호사·산드라·증인 등이                                      VANCOUVER LIFE 편집팀
   49   50   51   52   53   5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