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584(0620)
P. 11

|  EDUCATION  |                                            JUNE. 20. 2025


                                                        오석중 심사위원의




                                              제 3회 글짓기 대회 심사평






                                            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알아가면                큼 다르다는데 놀란다. 이 글은 자신의               평이했다. 편지투로 쓰이는 글도 많지만
                                            서 알았다는 점이 지금 세대의 사고로는               추억과 경험을 어떻게 완성해 가는지를                거기에는 수신인이 아닌 사람도 수신인
                                            신선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사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자신만                이게 하는 객관화가 들어있다. 나와 남
                                            고를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단순                의 경험으로 편집된 추억은 죽을 때까지               의 글이 같다면 나를 차별화할 수 없다.
                                            하고 상식적인 대답에 부응하는 점이다.               자신이 가지게 되는 귀중한 선물이다. 이              나의 인생은 남의 인생과 같지 않기 때
                                            그것이 지금 나이를 먹은 할아버지, 할머              글은 7살부터 17살까지의 성장의 일면               문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냉정하게 사색
                                            니 세대가 어렸을 적 일이라면 이런 글은              을 보여주는 단서를 글로 썼다고 본다.               하면 남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글을 쓸
                                            상투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분단               군데군데 손이 갔으면 하는 부분은 작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 상처를 잘 모르는 지금 세대가 쓴 이              자가 다른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고                 글과 마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과
                                            작품에 주목한 이유다. 글을 쓰는 일은               쳐나가리라고 본다.                          마주한다는 말과 같은 말일 것이다. 인
                                            관찰을 토대로 하는 일이다. 더 넓은 관                                                  생을 꼭 살아야 하는 것처럼 글을 꼭 써
        오석중 심사위원장
                                            찰, 깊은 사고를 가지기를 기대한다.                 A군 우수상 <가족이란>                      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 어
        사진 이지은 기자                                                                이 시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거기서 결               떻게 쓸 것인가?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
         총 80여 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주제가              A군. 최우수상 <가족>                      론을 끌어내는 방법을 썼다. 답은 질문               것인가와 같은 문제지만 항상 같은 결
        가족이라선지 가족과 같이 쓴 것 같은                 의미를 찾는데 집중하느라 의미를 이                에 있다는 답재문처(答在問處)를 <벽암               론에 도달하는 일도 아니다. 다른 언어
        글이 있었다. 쳇지피티 (Chat GPT)를 이          야기로 전환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록 14칙 평창(評唱)> 떠올리게 한다. 질            권에서의 경험과 사춘기, 부모의 사랑을
        용했다고 의심이 들 만한 글도 있었다.               런 부족함을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하                 문할 수 있으면 답을 가질 수 있다. 어              확인하는 일은 자라면서 자신이 어디 있
        보내온 글은 평년수준을 넘지는 못했다.               지 않지만 짜임새가 높은 점을 장점으로               떤 답을 얻느냐는 질문하는 사람의 몫                는지를 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주제가 너무 평이해서 좋은 글을 쓰기가               보았다. 의미를 날것 그대로 쓴다면 학               이다. 운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서술적으               하는 생각은 내가 쓴 글보다 더 복잡하
        더 어렵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제가 일               술에 가까워진다. 비유나 상징을 사용해               로 흐른 점이 흠이다. 그렇지만 전반부               다. 글을 쓰는 행위는 무엇을 어떻게 보
        상적이다 보니 글쓴이들의 감동이 어떤                서 깊은 감동을 주는 글을 쓰기 바란다.              를 시작하는 방법이 좋았고 나름의 반                여줄 것인가에 대한 일이지만 나의 마음
        감동인지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전도 있었다.                             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내는 일이기도
        감동은 일반적이고 상투적이어서 고민                  B군 최우수상                                                                하다.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주최자가 응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                   B군 우수상 <80억 명의 가족>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썼느냐 로 평가
        모자를 고민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                 시의 틀을 잡고, 전개는 좋았지만 누구               80억 명의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받고 있다. 그러나 결국 무엇을 쓰느냐
        감이 들었다. 여기 모든 응모자는 물론,              나 예측할 수 있는 평범한 결말이어서 이              싶다는 통 큰, 이 글의 작가는 자신의 상             의 문제다.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캐나다에서 태어난 응모자도 한국어에                 점이 시 전체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바꾸었              처를 승화시키려고 노력한다고 느꼈다.                는 자신이 쓰려고 하는 소설을 구상하
        대한 숙지도가 높았다. 이 점 2-30년 전            는데 이것이 오히려 흠이 되었다. 선자의              글쓴이는 자신을 반추하고 반추했으리                 고 그것을 머리에 굴릴 때가 가장 행복
        에 비해 달라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생각으로는 이런 당연한 결말은 작품 전               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때로 납득하                하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소설이
        로 모두가 행복해선지 개인적 경험에서                체를 안일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결말              기 힘든 일을 납득하기 위해 자신의 감               나 글을 구상하고 머릿속에서 굴릴 때
        나오는 차별화된 구체적 소재를 찾는                 을 말하기 위해 전반부의 세심하고 풍부               정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렇                행복하다면 이 말은 근본적으로 상을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상 받는               한 전개를 더 고민하거나, 전개를 그대로              게 어려운 시간을 글로 직면할 수 있다               타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좋은 글을 썼
        수상자들 간의 차이도 크지 않아서 작                놔두고 더 의미 있는 결말을 고민하는 것              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며 이 글의 성과               기 때문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상을
        은 상금 만큼의 차이도 없었다.                   이 더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 아닐까 추측한다. 다듬어야할 표현                받는 여러분의 행복을 폄하하거나 부정
                                                                                이 눈에 띄지만 자신의 일을 객관화시키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은
         대상 <가족, 나를 울린 하드보드지>                A군 우수상 <준비되지 않은 이별>                는 능력이 더 돋보였다.                       무엇인가? 남에게 인정받았다는 결과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사람에 대한 사랑                같이 자란 형제들도 부모와의 기억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이것도 무
        으로 까지 사고를 확장한다는 것은 쉬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같은 집                 B군 우수상 <낯선 땅, 익숙한 사랑>              엇을 쓰느냐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한
        운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에 살며 자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                대체로 짜임새 있는 글이었지만 너무                다고 생각한다.

































                                                                                                                                                 11
   6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