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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시사 칼럼 8>                                                    |  기고  |                                          OCTOBER. 17. 2025



                                                   ‘케데헌’과 한국문화



                                                                                                                              글쓴이 | 이원배
                                                                                                                      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 회장/수필가






             요즘 ‘케데헌’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케데헌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줄임 말이다. 2025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
            이션 영화인 케데헌은 캐나다의 한국인 이민자 1.5
            세대 출신인 매기 강이 감독했다. 줄거리는 K-pop
            걸그룹 '헌트릭스’(멤버-루미, 미라, 조이)가 악마
            사냥꾼으로 변신해 세계를 지키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판타지이다.
                강 감독은 한국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신화와 현대 K-pop을 융합한 작품을 만들
            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한
            국 문화의 전통과 현대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글로벌 히트(넷플릭스 사상 최고 조회수 기록)를
            이뤘다.  영화 속에는 주요 한국 문화 요소, 신화
            적 상상력, 그리고 현대 한국인의 일상적 생활을
            함께 버무려 맛깔스럽게 보여주면서, 한국의 정체
            성을 강조한다.
                이를 살펴보면, 한국의 전통 문화요소는 저승
            사자, 도깨비, 무당, 그리고 갓을 쓴 까치 캐릭터('
            서씨'), 호랑이 캐릭터('더피', 전통 민화 '호작도'에서                 뿐만 아니라 김밥, 컵라면, 새우깡, 떡볶이 등               끝인 캐나다 사회에서는 한국의 역사문화교육은
            영감을 받음), 부채춤과 같은 전통 무용, 종묘제례                  한국의 일상적인 먹거리 문화가 노출되고, 식당에                   언감생심이다.
            악 등 전통 예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서 수저 아래에 냅킨을 놓고 식사하는 모습이나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시작한 것이 한인 역사
                일상적 생활문화요소는 K-POP 아이돌 문화,                 대중목욕탕에서의 목욕장면 등 한국인에게 익숙                     문화 교육이다. 2년전 차세대 들과의 모임에서 그
            즉 걸그룹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하고 세밀한 생활 문화가 묘사되어 있다.                       들이 제안한 ‘캐나다 한인 문화유산 박물관’ 건립
            통해 K-POP 아이돌 그룹의 활동, 무대, 팬덤 문화                    다문화사회인 캐나다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을 추진하면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교육이
            (팬사인회 등), 치열한 경쟁 구도가 생생하게 묘사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배우고 체험하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고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는 너무 낯익고 흔                   서 정체성과 자긍심의 확립을 도모하고 있다. 한                    차세대들이 한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
            한 광경이라 간과하기 쉬운 서울의 일상과 배경,                   인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바야흐로 한국, 중국, 일                  고 이를 후세대나 타민족에게 전파할 수 있을 때
            풍경과 장소, 즉 낙산공원 성곽길, 남산 서울타워,                  본의 동양삼국 문화 중 한국문화가 대세를 이루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이 가능하다. 그래서 지난
            북촌 한옥마을, 명동거리, 청담대교, 자양역(구 뚝                  는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8월 ‘제1회 캐나다 한인 역사문화 아카데미’ 강좌
            섬유원지역) 등 실제 서울의 명소와 거리 풍경이 디                      그러나 미래의 캐나다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                  에 이어, 한국의 신화, 설화, 고전문학, 음악, 미술,
            테일하게 등장하여 익숙한 한국적 분위기를 조성                     가게 될 차세대들은 어떠한가. 그들이 뿌리인 본                   예절과 풍습 등 다양한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관
            하고 있다.                                        관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심지어 홍길동전이                    련 분야를 강의해 줄 수 있는 분들의 동참을 또한
                                                          나 춘향전 같은 한국 고유의 이야기도 잘 모르는                   바라고 있다.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차세대들에게 물어보면 한                        주변에서 말린다. 그걸 누가 들으러 오겠느냐
                                                          글학교 다닐 때 배우지 못했다고 하고, 부모세대                   고. 그러나 보라. 수많은 캐나다 이민자 후손 중
                                                          들에게 물으면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잡으                  에서 유독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고 아낀
                                                          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데,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 사람, 메기 강 감독이 있어서 오늘날 ‘케데헌’은
                                                          한국역사와 문화를 배울 시간도 없고, 필요도 없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 한 사람이라도 배출할 수
                                                         어서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부                 있다면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해변가로
                                                          모세대들 또한 생업에 바빠 자녀들에 대한 정체성                   밀려온 수많은 불가사리 중 한 마리를 바다로 돌
                                                          교육을 할 수 없다.                                  려 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
                                                              여기서 느끼는 것은 조부모세대의 부족이다.                  한 마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어느 어부의 대
                                                          한국은 제사나 명절 때 항상 모든 가족이 함께 모                  답이 필자를 자극한다.
                                                         여 대화를 나누게 되면 자연스럽게 역사와 문화를                        자꾸 우리 밖을 뛰쳐나오려는 양떼를 지키는
                                                          윗세대로부터 전수받는다. 필자가 어릴 때는 부모                   알프스 어느 산골마을의 ‘고독한 양치기’처럼, 자
                                                          님들이 제사준비 하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                   꾸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고 잊어버리려는
                                                          주를 무릎에 앉히고 ‘삼신할미’, ‘도깨비방망이’, ‘혹              세대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을 시행하며 ‘고독한 한
                                                          부리영감’, ‘장화홍련전’ 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                국문화 지킴이’가 되려 한다.
                                                          려주셨다. 학교에 가면 국어시간에 고전소설을 배                    모두가 쓸데없는 일이고 시간낭비라고 하는 것
                                                          우고, 일상생활의 대화에서는 인용도 했다. 조부                   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모 없는 단독세대가 많고, 기초 한국어 교육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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