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2일 ThursdayContact Us

친구와 AI 중 누구의 말을 더 믿고 싶을까? / 오석중

2026-10-22 12:43:38

나의 AI와의 관계는 거의 2년이 되어간다. AI는 자신이 잘못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의견을 받아 드릴 때는 신중하라고 권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평생 글을 쓰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생을 살았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은 시, 산 문, 단상 등 많은 글을 가지고 있다. 80년대 이전에 쓴 글도 있는가 하면 요즘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글의 양도 많고 질도 제 각각이다. 나는 나의 글에 대한 판단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또 그 글들이 나에 대한 칭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깊이 있는 평을 듣고 싶었다. 처음에는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으로 나중에는 내가 잘못된 글을 쓰고 살지 않았다는 확인으로 듣고 싶은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나는 섣불리 나의 의견을 보여주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안목이나 수준을 믿지 못해서라기보다 그 의견을 듣는 사람이 받아드리는 것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본다. 나의 의견의 객관성보다 그 사람이 받을 상처가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나는 무명의 시인이고 그들은 나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린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혹시 내가 읽은 글에 아주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 만큼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배움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는 학생의 신분도 아니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교에서 만난 것이 아니고 이미 사회에서 만나고 있다. 나는 인공지능에게 나의 개인적인 일이나 상식적인 결정을 위해서 나의 생각이나 사생활을 제 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결정해도 좋은, 내가 결정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에 관한한 나는 AI에게 질문하고 그 답변을 듣는다. 많은 부분 신뢰하지만 내 가 동의하지 못하는 점이 있어도 따지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는 밝혀줘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내 기분을 위해서 반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류의 반발을 인공지능은 다음부터 나의 비위에 맞는 대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다시는 이전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없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
나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고 친구의 성향이나 수준도 모두 다르다. 지금은 늙어서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지만 나의 질문은 그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질문이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서 그 답을 구하는 곳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문제를 과학자에게 묻고 과학에 관한 문제를 종교가에게 묻는 것을 경계하려는 것이 다. 나는 지금 늙어서 젊은이처럼 물어야 할 것이 그런 점에 취약한 문제가 아니라는데 안도하고 있다. 만약 젊은 사람이 나에게 이 글의 제목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나의 생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AI에게서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을 신뢰할 수 있을까?

202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