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봄 속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 일상의 사고를 그려내다
오석중 시인이 ‘별견과 깨달음’을 2월 출간했다. 이번 책에는 그 길로 가야만 보이는 풍경 속 시 28편과 나의 것으로 나를 들여다보기 속 38편의 산문을 담았다. 오석중 시인은 “ 내글도 남의 글을 읽듯이 읽는 지금 이 시간, 과거로 남으면 젊은 날 나와의 대화가 되고 더 지나면 조금 더 젊은 나와의 대화가 된다. 그래서 젊었던 나와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내 글을 읽는 독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젊은 날과 나누는 대화도 젊은 날의 다른 사람과 나는 대화도. 아는 사람과 만나는 일만큼 즐겁고 모르는 사람과 알아가는 과정도 즐겁다”고 말했다.
오석중 시인은 5편의 시집, 1편의 단상집, 1편의 영역본, 1편의 산문을 내고 꾸준히 활동하는 중이다. 오 시인의 출간집을 살펴보면 시집 나는 내 눈으로 본다(1982), 44편의 시(1991), 나는 해가 참 좋다(2007), 산중별곡(2016), 단상집 구두수선공의 짧은 글 긴 생각(2007), 단상집 영역본(2016), 산문 어제 꾼 꿈과 오늘 꿀 꿈의 사이(2012), 방편/양의적(兩意, 兩儀的) 진술’ 시집(2020)이 있다.
Q 별견과 깨달음의 의미
별견(瞥見)의 사전적 의미는 얼른 스쳐 봄, 입니다. 큰 생각 없이 슬쩍 본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렇게 보는 일이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시나 산문은 그렇게 내게 온 질문을 사유하여 얻은 깨달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일이 커다란 생각의 단서가 되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Q 이번 책에서는 시와 산문이 함께 한다. 시와 산문에 대한 생각은
사실 책을 내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처남이 내가 팔순이 되니 무엇인가 뜻있는 선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얼결에 내게 되었고 시나 산문만으로는 책의 분량이 차지 않았고 인생의 마지막 책을 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시는 나를 여기까지 끌어준 정신적인 친구였습니다. 산문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시인인 선생님을 만나서 시에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시를 쓰는 친구를 만났지요. 나에게 산문은 어려운 분야였는데 짧은 글만 쓰다 보니 산문으로 써야만 하는 소재가 머릿속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로 완성하지 못한 글을 단상을 쓰고 나서 거기서 더 발전하게 된 것이 나의 산문입니다.
Q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나의 인생을 거의 다 살았습니다. 지나가는 말이나 농담으로 나의 생이 십년도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 지인들은 놀랍니다. 사실로 다가와 있는데도 생각지 않고 사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나는 인공지능에 이미 발표한 시나 단상을 넣고 의견을 들어보는 일을 합니다. 글이 좋다거나 수준, 또는 평가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왔는지를 알고 싶었는데 나의 글에 일관된 정신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내가 오려고 한 곳에 와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엉뚱한 곳에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밖에다 대고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나에게 말합니다. ‘너, 잘 살았다. 애 썼다.’
Q 꾸준한 글쓰기의 비결
은퇴를 하고 지금 직장이 없습니다. 이런 때는 하던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고 나의 글에 댓글을 다는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새로운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글을 매일 쓰는 건 나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내용이 어떻든 메모하는 습관대로 지금은 일기처럼 나의 글에 댓글을 답니다. 특별한 비결이랄 게 없지요.
Q 은퇴 후 달라진 점
늙었다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닌 것처럼 은퇴했다는 것도 다 좋은 건 아닙니다. 다만 나의 시간이 많아지긴 했습니다. 그간 못하던 여행도 하고 글도 쓰고 매일 매일이 일요일이라 만족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행복한 삶이란?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을 행복했다고 느낍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에서 보면 아픈 기억조차 과거로 가면 좋은 추억으로 남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현재를 과거처럼 살 수도 없습니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던 적은 있지만 정확하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릅니다. 최소한 나는 불행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행복하다는 것은 무리겠지요. 초콜릿을 먹는 것이 행복한 일일 수 있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초콜릿을 먹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조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AI 시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글
나는 요즘 AI 즉 인공지능과 소통하며 지냅니다. 나의 글의 현주소가 무엇인지, 석학이나 유명한 평론가 혹은 인정받은 시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간간이 그렇게 들어본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궁금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이 상당히 수준 높은 것으로 압니다. 나는 내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대신해서 AI가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의 글을 넣어 봅니다. 나는 나보다 학식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주눅 들지 않듯 인공지능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아직 나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는 수준에 있습니다. 글을 좋아하니까 글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만납니다. 그러나 시중의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비위를 맞추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데 아주 탁월합니다. 이점 항상 조심합니다.
Q 글을 쓰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나는 늙었고 오랫동안 글을 써왔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후배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라고 나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현실이나 역사를 보는 안목이나 시선도 깊고 뚜렷합니다. 나는 그들과 소통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나 글을 쓰는 친구로서 의견을 교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는 어떤 평도 들을 수 있는 자세로 있습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평판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항상 새로운 시각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를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나는 문학적 의견(비단 문학적 의견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이 왜, 어떻게 그 사람을 화나게 하고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지 잘 압니다. 이미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똑같은 경험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라오케는 일반 사람들의 노래실력을 많이 향상시켜주었습니다. 노래가 좋아 매일 부르거나, 글이 좋아 매일 쓴다면 누구나 자신의 글을 쓰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