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3일 TuesdayContact Us

물속에서 할렐루야 / 김춘희

2026-10-13 16:21:13

화요일 아침인데, 아쿠아 피트니스(Aqua fitness)에 갈까 말까? 피곤하니까 쉴까? 그래도 가야 한다는 몸의 호소에 못 이겨 수영장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핸들을 잡고 수영장으로 달린다. 게으름이 점점 나를 침범하는 나이엔 뭐든 시작이 힘든 법이다. 핸들을 잡고 수영장으로 향하기만 하면 되는걸. 빨리 걷기를 이미 거부한 내 두 다리를 힘겹게 끌고 물속에 들어간다. 잠시나마 통증을 잊고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물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물을 좋아한 건 거슬러 70년 전으로 올라간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부산 피난 생활을 접고 다시 서울로 수복한 후 우리는 전후 재건이라는 시대를 살았다. 무엇 하나 충족한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막 고등학교로 올라갔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무엇이든 배우고자 했던 의욕에 찼던 꼬마였다. 학교에서는 나 같은 청소년들의 의욕을 만족시켜 주기라도 하듯 수업 후 여러 가지 특별반이 있었다. 나는 너무 의욕이 넘쳐서 이 방 저 방 기웃거렸다. 수영은 일생에 꼭 배워야 할 필수 과제라 여기고 즉시 수영반에 등록했다.
수영반에는 졸업생 선배가(남녀공학) 코치였다. 엄격한 수영 강습이었다. 처음 시작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헤엄치기만 배우고자 했으나 코치는 제대로 된 수영을 가르쳤다. 우리는 틈만 나면 서울운동장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했다. 그런데 나는 물속에서는 괜찮았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마치 물에 빠진 족제비 모양 수영복이 몸에 착 달라붙고 물을 흠뻑 먹은 수영복은 손으로 여기저기 쥐어짜지 않으면 걸을 수조차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몸에 착 붙는 멋진 수영복을 입고 가슴을 펴고 늠름했는데 나는 메리야스로 된 수영복 때문에 늘 쭈뼛거리며 수줍은 꼴을 해야 했다.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수영복이 물을 먹어서 창피해 죽겠다, 물 밖에 나오면 수영복을 이리저리 쥐어 물을 짜야 한다, 요즘 누가 이런 메리야스 수영복을 입느냐며 징징댔다. 어머니는 맨날 집에만 오면 수영복 타령을 하는 딸에게 어느 날 선수가 되면 수영복을 사 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다. 어머니 생각엔 네까짓 게 무슨 선수냐 하는 부정적 생각에서 내뱉으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수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배웠다. 겁 많은 나를 스타트 못 한다고 엉덩이를 물에 밀어넣으면 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죽을힘을 다해 물속에 뛰어들곤 했다.
코치는 우리들 중에서 수영을 좀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선수로 세워주었고 나는 영광스럽게 수영반 선수가 되었다. 선수로 뽑힌 날 나는 당당하게 “엄니! 나 선수 됐어!” 하고 수영복을 사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약속을 지키셨다. 그 길로 어머니와 나는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수박색 바탕에 은빛 반짝이가 쪼르르 달린 최신식 스타일의 수영복을 드디어 사 주셨다. 나는 선수가 되면서 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물을 먹지 않는 멋진 수영복을 입게 되었다.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배운다 했지만 이제 수영반 선수로 발탁이 되어 학교를 대표하여 수영 대회도 출전했다. 서울운동장 수영장에서 우리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나는 자유형으로 출전했는데 당시만 해도 여자 자유형을 하는 여학생이 거의 없었다. 상대도 없이 혼자 자유형을 독주했다. 100미터를 아마도 10분 이상 헤엄을 친 듯싶다. 그래도 수영장 기록에 ㅇㅇㅇ학교 김춘희 자유형 100미터 기록 000이라는 신기록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수영장의 찰랑거리는 파란 물을 보면 어린 시절에 스타트할 때 눈물을 참으며 죽을힘을 쓰고 첨벙 물에 뛰어들던 생각이 난다. 7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엉금거리며 계단을 기어 물속에 들어간다. 우리 시니어들은 거의 모두 나 같은 자태로 물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아무도 우리의 다리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모른다. 요란한 음악에 맞추어 강사의 몸짓을 따라 움직인다. 하나둘 하나둘, 뭍 밖에서 할 수 없는 동작을 우리는 물속에서 유연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권투하듯 두 주먹으로 물을 치기도 하고 공을 차듯 다리로 물을 친다. 권투, 태권도, 줄넘기, 어쩌다 로큰롤 맘보 등 시니어들이 젊은 시절에 부르던 노래가 나오면 잠시 젊음으로 돌아가 예 예 예 떼창을 부르기도 한다. 거의 50분간의 운동이 끝나면 마침운동으로 박자가 빠른 음악 대신 조용한 음악으로 넘어간다.
마지막 율동으로 조시 그로반(Josh Groban)의에 맞춰 물속 요가를 한다. “내가 당신의 어깨 위에 있을 때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당신 때문에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지요. 나는 당신 때문에 강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율동은 할렐루야로 마무리한다. (레너드 코언의 ) “결과는 미미했으나 나는 최선을 다했지요. 나의 믿음이 변변치 못하지만, 어느 날 주님 앞에 서게 되면 할렐루야만을 부르겠어요. 할렐루야.”
시니어들은 노랫말을 음미라도 하듯 그들의 동작도 천천히 부드럽게 마침 운동을 한다. 짧은 물속 요가가 끝날 즈음 우리 시니어들의 표정도 한결 평온해 보인다.
나의 삶 속에는 늘 나를 이끌어 준 코치와 스승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잘 살게 해 준 나의 멘토들이었다. 때로는 서울운동장 파란 수영장 물속에 겁먹은 나를 밀어 던졌던 코치 같은 사람들, 때로는 나와 경쟁하는 적수들이 나를 뛰게 했고, 때로는 실패의 나락으로 내팽개쳐져 절망에 빠졌을 때 그 어떤 힘에 밀려 더 높이 더 넓게 날 수 있을 때도 있었다. 마지막 물속 요가로 피트니스가 끝날 무렵 할렐루야는 조용히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