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 브레넌이 떠난 후 일 년이 지났다. 이별의 슬픔이 컸기에 나는 속으로 빌었다.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했으면 하고. 그러나 내 기대는 엇나갔다. 딸은 지난여름 멕시코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또 입양해 들였다. 겉보기엔 너무 크지 않고 털이 짧아서 날아다닐 걱정도 없고 모든 것이 맘에 드는 듯했다. 연보랏 빛이 도는 진회색의 예쁜 강아지라 보기만 해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미인 강아지다. 나이는 한 살 반이라 아직 강아지라 했다. 딸은 무척 좋아했다. 브레넌을 잃고 슬퍼하던 딸에게 안성맞춤이라 여겨졌다.
멕시코에서 동물 구조대원들에 의하여 구출해 온 강아지라 했다. 원래 이름은 치키(Chyky)였으나 딸은 빌리(Billie)라 명명해 불렀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애견에게 특별한 사랑을 표시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만나 봤을 때 나는 곧 알아보았다. “얘는 아기가 아니야. 어미 개다.”
라고 지적했을 때 딸은 아니라고 우겼다. 멕시코에서 구출한 강아지라고. 그러나 빌리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 흔적이 확연했다. 그리고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빌리는 주인만 따랐고, 낯을 많이 가렸다. 특히 남자들이 접근하면 으르릉대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하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하면 곧 방어 태세였다. 딸이 빌리를 받아 올 때 함께 갔던 열 살짜리 막내 손녀에게만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온순하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접근도 못 하게 으르렁댔다. 특히 아들에게는 더 심했다. 자기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짖어댄다. 큰 소리에도 너무 예민해 길을 가다가 사이렌 소리가 나도 벌벌 떤다고 했다. 산책길에서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공격적이라 딸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드디어 딸은 강아지 심리를 아예 연구 수준으로 하는 듯하다.
우리 집에 오면 딸은 으레 나에게 빌리에게 주라고 쿠키를 한 움큼씩 주었다. 나는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고 비스듬한 자세로 빌리! 빌리! 부르며 달래듯 쿠키를 주면 받아는 먹지만 곁을 주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딸에게 “얘 돌려보내야겠다.”라는 차가운 제안을 했다. 딸은 펄쩍 뛰면서 자기가 버리면 빌리는 너무 가엽다고 그건 아니라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딸도 강아지도 스트레스가 여간이 아니었다. 딸은 드디어 강아지를 보낸 동물 구조대(rescuer)에 편지를 보냈다. 빌리가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쪽에서 편지가 왔다. 치키를 구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단다. 행려자 같은 사람이 치키의 주인이었는데 강제로 임신을 시키고 새끼를 낳으면 즉시 팔았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치키가 너무 가여워서 행려자와 오랫동안 협상 끝에 겨우 구출했다는 것이다. 딸은 그 편지를 받고 빌리가 가엽다고 나한테 말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빌리가 길들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지 빌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의 판단이었다.
딸은 쿠키를 줄 때도 아주 다정하게 주라고 단단히 나에게 교육한다. 그런데 나는 딸이나 우리 손녀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빌리를 부르고 부드럽게 대해 주지 못한다. 빌리와의 교감이 잘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우리 애들과 같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없음을 빌리를 통해 재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해방을 겪었고, 한국전쟁을 호되게 겪었으며 전후의 가난을 살았다. 또 대학에 다닐 때 이미 철이 들어서 학문은 나의 생의 전부인 듯 머리 터지게 공부한 학구파였다. 후에 대학교수까지 지낸 성공파였으나 나에게는 낭만이랄까, 그 따뜻함이 없다. 인생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은 있어도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결여되어 있음을 새삼 이 나이에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딸은 빌리를 위해 정성을 다하여 심리치료를 하는 중이다. 원래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특수교육이 전공이라서 동물을 이해하는 데도 세심한 사려를 하는 것 같다. 자폐아들의 문제를 이해하듯 빌리의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모양이다. 나는 딸에게 “ 강아지 심리학자가 다 됐구나. 논문 하나 써서 발표나 하시지” 했더니 딸은 정색하고 엄마에게 강아지의 심리를 이해해 줘야 한다고 한참을 나에게 설교했다. 빌리는 인간의 악행으로 본성이 망가졌다. 그러나 빌리를 학대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강제 임신을 시킨 그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악인 줄 모를 것이다. 빌리의 강제 임신으로 새끼를 팔아먹는 악덕 행려자는 그 옛날 노예를 생각하게 해 준다.
악을 저지르면서도 악인 줄 모르는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메리카의 역사 중에서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잡아 미 대륙으로 끌고 와서 노예로 팔았던 노예시장의 역사, 백인들은 그 추악한 역사를 들춰내는 것조차 부끄러울 것이다. 얼마 전 교황 레오 14세께서 드디어 아프리카 노예 역사의 부끄러움을 사죄한 담화문이 있었다. 종교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정식 사과를 한 것이다. 백인들이 감추고 싶은 역사의 단면이다. 카리브의 어느 아름다운 섬에는 노예 양육장이 있었다고 한다. 잘생긴 젊은 흑인 노예 남녀를 가두고 그 안에서 동물을 사육하듯 임신을 하게 한 후 아이들이 자라면 노예시장으로 끌고 가서 물건처럼 팔았던 끔찍한 역사가 있다. 인간 죄악에서 가장 비참한 역사 중 하나일 것이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생명의 존엄을 파괴할 때 인간은 창조주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다. 모든 창조물의 생명은 창조자의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자의 것을 창조물이 파괴하거나 훼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생명은 창조주의 몫이기 때문이다.
벨리는 요즘 신경 안정제를 매일 먹는다. 한번 상처 입고 파괴된 정서는 본성으로 돌아가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빌리는 사람처럼 평생 신경 안정제를 먹어야 한다. 빌리는 서서히 적응하고 있다. 아주 서서히…. 빌리를 사랑하는 딸의 정성과 사랑의 여정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란다. 요즈음은 제법 이것저것 배우고 재롱도 떤다. 쿠키를 주기 전에 ‘손 줘!’ (Shake hands) 하면 한 앞발을 준다. 밖에 일 보러 나가고 싶으면 종을 누른다. 내가 너무 신기해했더니 딸의 말인즉, 사람이나 동물이나 상처와 치유의 원리는 같아서 자폐아 치유 방법이 빌리에게도 통한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빌리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