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조합원 상품 등록 가능…조합원 금액부담 덜어
비행기 창 밖으로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토론토를 떠난 비행기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를 향해 낮아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흙이었다. 초록 대지 사이로 붉은 흙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섬과 내륙을 길게 이어주는 다리가 마치 바다 위에 놓인 한 줄의 문장처럼 뻗어 있었다. PEI와의 첫 만남은 온통 그렇게 붉은 흙과 긴 다리였다. 붉은 흙은 땅의 속살 같았고, 다리는 낯선 곳으로 건너가는 마음의 길처럼 느껴졌다.
샬럿타운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받아 호텔에 들어가기 전 다운타운을 먼저 걸었다. 크지 않은 거리에는 오래된 건물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이어지고, 워터프런트 쪽으로 내려가니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교우가 추천한 식당에 앉아 갓 올라온 해산물을 맛보면서 섬에서 먹는 음식은 섬의 풍경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에는 바다의 내음과 바람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었다.
첫 날은 다운타운과 인근 공원 보드워크를 걷는 것으로 일찍 마무리하고, 다음 날부터는 자동차를 몰고 섬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으로 나누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지도 위에서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던 섬이 막상 운전해보니 곳곳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길은 대평원으로 이어지고 때로 숲으로 연결되고 때로 바닷가로 닿았다. 작은 어촌 마을과 큰 농장들을 지나고, 붉은 흙 밭과 푸른 초원을 지나며 여행이란 결국 애초 지도 위 생소했던 이름과 좌표들이 내 눈 안에 들어와 나의 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그네 길을 ‘旅程’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가다보면 ‘旅情’이 되곤하지만…
글린위치 해변에서는 모래언덕 사이로 난 트레일을 걸었다. 듄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야생화가 기득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무념무상으로 걸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꽃잎은 너무 작았지만, 그 작음이 오히려 눈에 들어와 앉는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닐까. 살아온 세월을 역사라기에는 턱없이 짧고 한 송이 꽃처럼 작지만, 바로 그 작은 삶 하나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에…
이스트 포인트 등대에 서니 망망대해 대서양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수년 전, 리스본을 방문했을 때 유럽 가장 끝 지점에 비석을 세우고 ‘세상의 끝’이라고 새겨놓은 호카곶의 카보다로카 비석이 떠올랐다. 어쩌면 둘은 서로가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우리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바다는 끝나는 곳에서 결국 다시 시작되고, 길은 멈추는 곳에서 또 새로운 길을 만드는것을…
카벤디쉬에서는 붉은 절벽과 파도와 바위가 만들어낸 해안 절경을 만났다. 그러나 PEI를 이야기하면 J. M.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초록 삼각지붕의 집과 앤이 걸었을 법한 길, 그녀의 상상력이 깃든 풍경을 따라 가다 보니 몽고메리는 이 평범한 섬의 풍경에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세월이 흐른 뒤 세계의 수많은 사람을 이 작은 섬으로 불러들였다. 결국 아름다운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과 이야기를 만날 때 비로소 오래 살아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짧은 3박 4일간의 PEI일정을 마치고는 토론토로 향했다. 이틀의 짧은 시간이지만 알공퀸의 단풍을 마음에 담아두고자 하였다. 3시간 정도를 북상하자 차창밖으로 거대한 풍악산의 절경이 화폭에 담겨 펼쳐지기 시작했다. 최절정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방문이라는 가이드 분의 설명은 오히려 80프로가 주는 포만감으로 다가왔다. 단풍은 한꺼번에 물드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나무마다 하나같이 조금씩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알곤퀸의 단풍처럼 사람에게도 각자의 시간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초록이고, 누군가는 노랑이며, 누군가는 불타오르듯 붉게 물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어느 색이 더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계절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내느냐는 아닐까…
중간에 무스코카 호수에서 증기선을 탔다. 호수 위를 천천히 나아가는 배위에서 바라본 가을 풍경은 뭍에서 바라볼 때와 또 달랐다. 물 위에는 숲의 색이 그대로 수면에 비치고 있었다. 실제의 단풍과 물에 비친 단풍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인생도 저와 같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단풍이라면, 그 세월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남긴 흔적은 물 위에 비친 풍경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고 비치는가 골몰해보았다. PEI의 붉은 흙에서 시작해 대서양 수평선을 지나 알공퀸의 단풍으로 이어진 이번 가을 나들이는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행인 셈이었다.
단풍은 아무 말없이 가르쳐주었다.
아름다운 삶은 오래 푸르른 삶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계절까지 아름답게 물드는 삶이라는 것을…
註 1.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시 제목에서
2 풍악산 :계절에 따른 금강산의 별명 (봄- 금강, 여름-봉래, 가을-풍악,겨울-개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