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모두 끝났지만, 나는 선뜻 발을 떼지 못한 채 망설이며 서 있었다. ‘오늘은 과연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까.’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내내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햇볕에 바랜 길이 시골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작은 오래된 마을들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고, 북적이는 도시에는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인들, 오가는 자동차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신이 나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것이 내가 대한민국에서 625km를 걸으면서 눈에 담은 풍경이었다.
나의 여정은 가평군에 있는 캐나다군 한국전쟁 기념비에서 시작되었다. 경로는 사흘 동안 서쪽으로 이어져 서울에 다다랐고, 다시 남쪽으로 향해 부산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내가 이어 온 가평 전투 추모 여정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그것은 지난 5년 동안 하나씩 맞춰 온 거대한 퍼즐을 마침내 완성하는 순간과도 같았다. 내 ‘가평 퍼즐’의 첫 번째 조각은 2021년에 놓였다. 그때 나는 토피노(Tofino)에서 랭리(Langley)까지 걸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23년, 두 번째 조각을 더했다. 이번에는 랭리에 있는 가평석 한국전쟁 기념비에서 밴쿠버 국제공항까지 걸은 뒤,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으로 와 인천에서 다시 걸음을 이어 가평군까지 도착했다. 이제 퍼즐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수많은 노력과 약간의 고통, 그리고 결코 잊지 못할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비로소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2026년 4월 26일, 나는 75년 전 가평 전투에서 싸운 유엔군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마지막 여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정확히 몇 걸음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의 한 달 동안 걸었다. 날씨가 어떻든, 지형이 어떻든, 매일 25~30km를 걸었다. 언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언덕을 올라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그것은 그저 피할 수 없는 길의 일부일 뿐이었다. 이곳은 한국이었고, 한국은 산과 언덕이 많은 나라였다. 나의 여정은 5월 22일, 유엔기념공원에 도착하고서야 끝이 났다. 결승선은 용감한 병사들이 잠들어 있는 그 장소의 입구였다. 이름은 알지만 만난 적 없는 이들. 그들은 내게 말로써 이야기를 건넬 수는 없었다. 우리는 대면했던 적도 없지만, 나는 왠지 그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4월에 가평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걸을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왼쪽 무릎 안쪽의 작은 파열이 아직 다 낫지 않았고, 오른발의 부상 또한 얼마 전에야 겨우 아물었다. 그럼에도 나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었고, 실패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떠났던 긴 여정은 육체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정신적인 도전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걸었고, 그늘은 거의 없었으며, 숨 막히는 습기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단단한 아스팔트 길과 무더위, 그리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모두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내 열정은 무뎌졌고, 꼭 필요했던 에너지를 서서히 빼앗겼다. 나는 원치 않았지만 결국 완전히 지쳐버린 몸과 늘 함께 다녀야 했다. 탈진은 결코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잠을 잘 때만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다음 날 운동화를 다시 신고 걷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아침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미소와 웃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는 침묵과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이 대신하고 있었다.
탈진은 점점 커져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탈진은 나를 압도했고, 결국 나를 지배했다.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탈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부서진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온전하다. 나를 끝까지 지켜 준 것은 나의 의지였고, 그 의지 덕분에 나는 끝내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부산에서 가평 전투의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캐나다로 돌아갈 때 원치 않게 함께 가져가게 된 기념품이었다. 탈진은 내가 한국에서 받은 영원한 선물이었다.
캐나다로 돌아온 뒤 다시 한 번 책상에 앉아서 한국전쟁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내 생각은 언제나 그 여정을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닿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들, 그리고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진심을 다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의 우정과 도움은 가평 전투의 한국전쟁 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어 온 나의 길고 긴 여정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나의 감사와 함께, 그들의 따뜻한 친절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글 : 가이블랙 번역: 전종현
(전종현 군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저의 친구입니다. 그는 이번 추모 걷기 여정에 함께하였으며 다양한 정보의 통번역을 도와주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