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란(전 밴쿠버 한인회장)
채송화가 빨갛게 핀 장독대엔 나팔꽃이 피었다. 울타리 섶에는 봉숭아가 연분홍으로 한여름 피어 있다. 지금도 고향 집 장독대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백일홍, 맨드라미가 핀 유년의 고향 집, 장독대가 있는 풍경이다.
예전엔 장독대의 장맛을 보고 딸을 데려간다는 말이 있었다. 장독대를 보면 안주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그 딸의 됨됨이까지 견주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장독대는 실용적으로는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는 맛을 주지만 집안의 내력을 보여주는 장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늘 장독대를 윤이 나게 닦았으며, 그 주변에 꽃이나 자갈을 놓아 예쁘게 장식했다.
스웨덴에서 살다가 캐나다에 와서 웨스트밴쿠버 산자락에 집을 마련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조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뜰에는 풀장이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꽃을 심었다. 그리고 10여 개의 독을 가져다가 장독대를 마련했다. 한번에 옹기를 일괄해서 모은 것은 아니다. 어떤 지인이 선물한 것도 있고, 이곳 한인 마켓에서 구입한 것도 있다. 이렇게 해서 고향의 장독대가 캐나다에서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장독대는 고향의 정취를 보여주는 장식 보여주는 장식 목적이었다. 장이나 고추장, 간장을 담그려고 장독대를 마련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지인이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을 주셨기 때문에 장독에 담았다. 장식용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뜰에 나가보니, 곰이 들어와서 장이 담긴 장독을 모두 망쳐놓았다. 캐나다의 곰들도 한국의 장맛을 아는 듯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곰이 우악스럽게 장독을 굴리면서 된장을 먹었는데 깨어진 것은 없었다. 한국의 질항아리가 무척이나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장독에 장을 보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귀하게 다루어야 할 고향의 정취인데 곰이 망치면 다시 구하기 어렵다. 그때부터 옹기에 식품을 넣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바람이 불어도 장독대는 변함없이 늘 고향의 따뜻함과 그리움을 보여주는 아련한 추억이다. 뜰에 장독을 마련한 후에 그 주변에 꽃을 심었다. 새싹이 자라서 멋진 화단이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남편이 나를 돕겠다고 장독대 옆에 자란 꽃을 모두 뽑아버렸다. 그리고 잡초만 남겨두었다. 꽃을 잡초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웃는다.
한국도 고층 아파트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장독대를 놓아둘 공간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시장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사서 먹는다. 마트에서 파는 장맛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장독대에서 직접 담근 장맛과 비교가 되지 못한다. 도시는 그렇지만 지금도 시골이나 읍내, 산사에 가면 장독대를 두고 산다. 집마다 주부의 손맛이 다르듯이 장맛 또한 다르다. 솜씨 좋고 맛 좋기로 소문나면 이웃과 지인들이 서로 한그릇 얻어가려고 난리다.
여름날 장독대도 꽃이 있어 아름답다. 겨울도 운치 있다. 눈이 장독 위에 소복이 내리면 그림같이 좋았다. 무심한 까치가 장독 위에서 눈을 머금고 신나게 논다. 참새, 박새도 와서 눈을 좋아했다. 어떤 시인은 장독대를 보면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있는 모습 같다고 노래했다. 고향 집은 장독대가 있어 정겹다. 봉숭아 곱게 핀 장독대 앞에서 손톱에 꽃물을 들이던 아련한 추억. 가끔 고향의 그리움은 정겨운 장독대의 풍경으로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