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8회
작년 12월은 평소보다 눈도 많이 오고 해를 볼 수 있는 날들도 많아서 “이번 겨울은 밴쿠버 답지 않구나” 라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람도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역시나 전통이란 정말 깨지기 어려운 것 같다. 우리가 섭섭해할까 너무나 익숙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사실 눈이 많이 와서 도로가 엉망이 되었을 때 비 오는 밴쿠버 날씨가 조금이라도 그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며칠전에 지인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비에 관한 밴쿠버 농담을 들려주었다. 밴쿠버 국제 공항이 왜 YVR이라고 하는지 아는 지? 그건 바로 “Yes, Very Rainy” 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너무 웃겼으면 이 컬럼에 넣지 못했을 텐데 다행이도 내가 추구하는 지루함과 약간의 미소를 짓게 해 줄 정도의 농담이어서 여기에 쓸 수 있었다. 자, 이제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와서 오늘은 터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터키의 커피 문화는 15세기 중반쯤 두 명의 시리아 상인들이 이스탄불에 커피를 소개하며 시작이 되었다. 이 후 오스만 시대에는 한 커피 제조사가 40명이상의 조수들과 함께 고급 커피를 만들어 오스만 제국의 황제인 술탄에게 진상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터키 커피는 그 추출 방식이 앞서 이야기했던 유럽 국가들과는 전혀 다르다. 원두를 매우 곱게 갈아 (마치 에스프레소 용 정도) 물, 그리고 설탕을 제브제 (Cevze)라는 커피포트에 넣어 끓이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때 ‘카다멈 (Cardamom)’ 이라는 향신료가 원두 분쇄 과정이나 끊인 후 완성된 커피에 첨가되기도 한다. 카다멈은 박하 맛 같이 독특한 향도 있고 고소하기도 하며 약간의 알싸한 풍미도 가지고 있다. 보통 동남아 지역에서 오믈렛, 미트볼, 국수 같은 요리에 쓰이고 가격은 샤프란, 바닐라의 뒤를 이어 세번째로 비싼 향신료라고 한다.
또 한가지 터피 커피 추출 방식의 특이한 점은 다른 나라와 달리 필터를 이용하여 찌꺼기를 거르는 과정이 없다. 커피 가루를 직접 제브제에 넣고 끓이는 방식 때문인지 끓이는 과정에서 거품이 만들어 지는데 터키에서는 커피잔에 거품이 없으면 대접하는 쪽이 체면을 잃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거품이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터키 커피문화 중에 커피 점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커피잔을 엎어 놓으면 커피잔 안쪽에 커피 찌꺼기가 여러가지 문양 또는 그림 형상으로 나타나는 데 그 모양을 보고 여러가지 운세를 점쳐 보기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강아지 모양이 나오면 주위의 좋은 친구나 지인이 많이 생긴다고 하고, 물고기 모양이 나오면 재물이나 성공할 운수라고 여기곤 했다고 한다. 아마도 커피를 마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생겨난 일종의 놀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커피에 관련된 또 한가지 재미있는 문화는 결혼과 관련된 것이다. 결혼을 하기전에 예비신부의 집에서 신랑 가족과 상견례를 하는 데, 이때 예비 신부집에서 특별히 만든 커피를 대접한다. 그리고 신부가 어떤 맛으로 커피를 만드는지에 따라 혼사가 결정되곤 했다. 신부의 부모가 승낙을 해도 신부 본인이 신랑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탕 대신 소금이나 후추를 넣어 거부 의사를 하면 그 혼사는 성사되지 않고 없던 일로 한다.
이러한 터키의 여러가지 커피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터키에는 커피 한잔을 하면 인연이 40년간 이어진다 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표현중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이 아닌가 싶다. 그 정도로 커피를 함께 한번이라고 마실 정도라면 가벼운 인연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누군가 여러분에게도 “혹시 시간 되시면 커피 한 잔 안 하실래요?” 라는 말을 건네면 작은 설렘이 느껴지지 않을까?
글 A Cup of Heaven Coffee 로스터리 대표: Joseph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