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9회

밴쿠버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겪는 일 중 흥미로운 것 하나는 비가 온다고 뭔가 취소가 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큰아이가 축구를 좋아해서 어린이 축구 팀에 있는데 왠만큼 비가 와서는 경기나 연습이 취소가 되지 않는다. 비가 정말 많이 와서 축구 필드에 물이 차야지만 취소가 되고 보통은 일정대로 진행을 한다. 누가 보면 무슨 대단한 리그라도 되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연습하는 줄로 착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기온이 영하 1도 이하로 내려가면 바로 취소가 된다 (소속되어 있는 시의 축구 팀마다 규정은 다르겠지만) 날씨가 화창해도 말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훈련을 하고 토요일마다 시합을 하는데 시합하는 날 전반전이 끝나면 아이들이 당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오렌지 싸오는 당번을 정해 두었다. 저번주 당번이 내 차례였는데 오렌지를 보니 오렌지 군단이라고 불리는 네덜란드가 생각 나서 오늘은 네덜란드의 커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 미리 경고를 해두는데 앞으로 이런식의 억지 서론으로 컬럼을 시작하려 하니 적응이 필요할 것이다.
네덜란드에 처음 커피가 소개된 때는 1616년경이다. 그때 네덜란드는 예멘의 아덴에 진출해 있던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커피가 재배된다는 소식을 듣고 상인을 가장한 스파이를 인도에 밀파하여 인도의 바바부단의 커피와 묘목을 네덜란드 본국으로 밀반입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묘목은 네덜란드 식물원에서 증식은 성공하였지만 네덜란드에서 재배하기에는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을 비롯한 따뜻한 기후의 식민지 나라에서 본격적인 커피재배에 나섰다. 이로인해 아라비안들이 2세기 동안 아랍상인들을 상대로 독점했던 커피 상권도 막을 내리고 네덜란드가 유럽에 커피를 수출하는 주 공급자로 떠올랐다.
국제커피기구 통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사람은 주중에는 하루 평균 4.2잔, 주말에는 3.9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아침에 1잔, 오전 10시에 1잔, 오후 2-3시에 또 1잔정도를 마신다고 한다. 이정도면 네덜란드인 모두가 커피 애호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마 네덜란드 커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콜드브루의 원조인 더치 커피 (Dutch Coffee)가 가장 대중적일 것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는데 보통 로컬 카페에서는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더치 커피의 유래는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상인들이나 선원들이 긴 여정동안 최대한 커피를 상하지 않게 마시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한 방울 한 방울씩 추출해서 마셨다고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보통 모임, 회의, 또는 파티등의 시작은 항상 커피와 함께 한다고 한다. 손님이 집에 방문하면 커피를 마실지 묻는 것으로 시작하고 보통 2잔 정도 제공되며 그 후 손님이 원하는 다른 음료 (주스, 가벼운 술등)를 제공한다. 파티 역시 커피와 함께 어울리는 과자나 케익 등으로 시작한다.
조금 다른 주제이지만, 혹시라도 네덜란드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너무나 개방적(?)인 대마초 문화에 당황할 수도 있으니 알아 두기 바란다. 보통 커피샵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러 들어 갔다가 사람들이 대마초를 구매도 하고 심지어 피우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커피 원산지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커피에 대한 사랑은 어느 나라보다 더 열정적이고 생활화 되어있다. 커피농장 하나 없는 나라이지만 네덜란드의 무역상들은 지금도 커피를 유럽 여러 국가들로 수출을 하며 수준 높은 로스팅 기계, 에스프레소 기계도 자국에서 생산해서 수출한다. 한국도 원자재가 하나도 나지 않는데 각종 산업에 쓰이는 유류, 철강, 반도체등을 가공해서 세계로 수출하듯이 네덜란드도 커피는 나지 않지만 커피 관련된 상품들을 여러 나라로 수출하는 것을 보면 커피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글 A Cup of Heaven Coffee 로스터리 대표: Joseph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