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쿠버 한인OB축구회의 백발의 마라도너 안인택 골 게터
“지난주 게임에서 상대방 골문을 위협했던 나의 볼이 골인돼 결국 우리팀이 이겼다. 이때 모든 회원이 환호하며 떡잔치를 권유해서 나는 다음 주 게임 후에 떡 파티를 열었다. 즐거운 일요일 새벽이 되었다. 축구의 매력은 단순함에 있고 건강을 지키는 데는 이것보다 좋은 운동이 없다. 공과 골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경기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전략일 것이다” 안인택(86세) 씨는 축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39년생(86세) 안인택 씨는 50여 년을 한결같이 생업에도 충실하며 운동장을 누비는 밴쿠버 한인OB축구회의 산증인이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축구와의 인연
20년 전 60대 후반이었던 나는 70세까지 뛸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작심을 굳혔다. 그 결심도 어느덧 15년 전의 일이다. 1970년경 30세를 갓 넘긴 나이였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거주하면서 일요 조기축구회에 가입, 건강을 위해 볼을 차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축구공을 가족 다음으로 끈질기게 사랑했다. 돌아보면 50여 년을 아마추어 축구 인생으로 살아온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팀과의 경기가 주마등처럼 펼쳐지며 생각할 때마다 생생한 기억들이 깊고 아름답게 가슴에 새겨지며 감회가 새로워진다.
Q 다양한 축구 경력
1987년 10월 사회인 체육 전국 대통령 하사기 축구대회에 광진구 팀으로 출전해서 우승했다. 1988년 5월 7일 밴쿠버로 이주해 정착해 1990년 50세 이상 다민족 축구팀(주로 유럽계)인 포트 코퀴틀람 블루스 축구팀(Poco Blues Soccer Team)에 가입해서 2001년까지 정규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데 현재도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밴쿠버 한인 OB축구팀은 1995년 7월 창단했으며 매년 2회 시애틀 축구팀과 친선경기를 하고 있다. 매년 5월에는 시애틀에서 밴쿠버 OB축구팀을 초청하고, 8월에는 밴쿠버 OB축구팀이 시애틀 팀을 초청한다.
15년전 시애틀 한인신문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팀 선수 가운데 백발을 휘날리며 워싱턴 주 문전을 여러 차례 위협한 공격수는 23년째 밴쿠버 조기축구회에서 활약하는 7순의 안인택씨이며 그는 첫날부터 연속 두 게임을 소화해내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올해로 49년 넘게 축구로 체력을 다지고 있다는 안씨는 한국에서 고밀도 검사를 해본 결과 30대의 뼈를 갖고 있다는 판정을 받아 조기축구회원들 사이에 ‘실험대상’이라는 별명을 듣는다며 축구 예찬론을 폈다라는 기사가 있다.
Q 할아버지 마라도나
1990년대에는 조기축구팀이 활발해 한인 교민 리그전(11팀 출전)에서 시합종료 직전에 한 골을 넣어 4강까지 진출했다. 그 당시 나에게 ‘할아버지 마라도나’ 라는 별칭이 붙었다. 축구게임에서 나의 포지션은 윙이었으며 70대 이후에는 상대 팀의 문전을 자주 위협해야 하는 최후 공격수이다.
내가 속해 있는 OB 축구팀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관계없이 일요일 새벽 7시면 40여 명이 모여 몸을 풀고 체력을 다진다. 계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늘도 여전히 광역 밴쿠버 중심 버나비 시청 부근의 인조잔디 구장에서 화이트 팀과 레드 팀 등 2팀으로 나눠 전후반 90분 동안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누빈다.
축구장에 모이면 간단한 연습과 몸풀기를 끝내고 팀을 갈라 게임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팀을 나누는데도 실전과 같이 온 힘을 다해 구장을 누비며 열전을 벌인다. 한동안 밴쿠버 한인 사회에 20여 축구팀이 있었고 1년에 1차례씩 리그전도 열고 더 나아가 에드먼튼, 캘거리 지역과도 친선경기를 열고 캐나다 한인 사회의 친목과 우정을 다지는 촉매역할을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사회가 위축되었다.
Q 영원한 밴쿠버 한인OB축구회
밴쿠버 OB 축구팀이 선두에 나서서 견인차 구실을 충실히 할 것으로 믿는다. 축구를 통하여 축구 인구의 저 변화를 꾀하고, 대회를 통하여 동포사회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오리라고 굳게 믿는다.
밴쿠버 축구계에서는 86세 노익장인 나를 롤 모델(Role Model)로 삼고있는데 나도 그 역할을 힘닿는데까지 할 것이다.
Q 인생의 소중함… 가족과 여행
축구 다음으로 나는 여행을 즐기는데 50대 후반에 나의 아내와 둘이 미국과 캐나다를 자동차로 횡단(1만 7천km)했고 그 다음 해에 밴쿠버에서 출발해 알래스카를 자동차로 (1만 5백km) 별 무리 없이 부부가 횡단했는데 아마 수십 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운동장을 누볐던 것이 밑거름된 것 같다.
사실 나는 밴쿠버에 이민와서 4명의 손주를 둔 것 이외에는 큰 변화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노인이다. 지금도 한가한 시간이 나면 음악을 듣고 노래를 좋아하며 18번인 섬머 타임을 부르는 것도 나의 인생의 일부분이다. 또한 생활 중에 짬을 내어 기타도 배우고 부부가 함께 자동차로 집을 떠나는 여행도 나의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으니 축구와 음악, 여행이 내가 가는 인생항로이다.
이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