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14일 ThursdayContact Us

[체질컬럼] 태양인 아버지와 태양인 아들

2026-05-14 10:00:34

지금 시대로 보아, 인구 수백만도 되지 않는 국가가 역사상 세계를 제패한 경우가 있을까. 로마 제국의 근간인 이탈리아는 현재 그 인구가  7,8천만 정도다. 나일강가의 왕국 이집트,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페르시아의 후예의 이란등등,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국가들의 현재의 인구도 그리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그 인구가 4백만도 안되는  나라가 한때 세계를 이리가 양떼를 찢어 삼키듯 정복한 적이 있다.

몽골. 몽골은 하나의 신비다. 자칭 세계의 중심이라 하는 중국조차 한번도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는데, 그 위에 오목하게 붙어있는 나라, 모래와 먼지의 나라, 바다가 없는나라, 인구 몇 안되는 나라가 중국을 삼키고 아시아 전체와 러시아 그리고 유럽의 일부까지 손에 집어 넣어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하였으니, (필자같은 이에게) 불가사의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때는, 우리나 중국만 몽골제국의 제물이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슬람세계에서 본 세계사’를 통해서 본 아랍은12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그 전역에서 피를 흘렸고 멸족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황폐화 되고 말았다. 유럽의 십자군의 침범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모슬렘의 땅과 자존심은 몽골 앞에서는태풍 앞에서의 등불과도 같이 그렇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도데체 그 시대 몽골인은 누구였으며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굳이 그 답을 찾아 본다면, 징키스칸이라는 인물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이것도 불가사의다. 한 사람이 천하를 그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니. 도데체 (한)사람의 역량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그런데 한때 세계의 야수같던 몽골이 역사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인물과 기상과 야심과 (잔혹하고도) 강대한 힘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면 그러한 힘이 혹시라도 은밀하게 감추어져 언제가 다시 한 번 세상밖으로 드러나 또 다시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것일까.

필자는 진료실에서 일면이면 몇 명 이상의 몽골 사람을 진료한다.  다들 육식을 좋아한다. 유목민의 나라라서 그렇다고 한다. 한국사람이 끼니마다 김치 먹는 것처럼,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달고 산다고 한다. 그렇게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민족. 체질을 고려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백번, 천번을 생각해 보아도 건강에는 불리할 것이라는 결론을 비껴갈 수 없다.

이번 5월 초, 해마다 방문하는 몽골 가정이 다시 방문했다. 부부와 아들. 아들의 체질은 그 아버지를 따라 태양인. 엄마는 소음인. 태양인과 소음인 부부의 조합은 비교적 이상적이다. 태양인은 육식이 맞지 않지만 소음인은 돼지고기가 아니라면 육식도 무난하다. 그 엄마는 몽골인임에도 처음부터 체질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고 그 동안 음식을 가려와 지금까지 큰 건강 이슈없이 무난히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 그 태양인 남편은 체질에 대해 납득하는 것 같으면서도 거의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본인은 채식주의도, 육식주의도 아니라 두루두루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음식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건강 면에서는 무난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씩 위장과 피부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그래서 한의원을 방문한다.

열 살이 되는 그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태양인. 한창 성장의 시기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필자의 지침이 그 부모의 귀에 그리 달갑지 않을 법. 아이의 엄마는 그리해 보겠노라고 하지만, 아빠는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모양새. 필자는 거기서 말문을 닫고 만다.

필자가 보기에 그 몽골인 아빠는 전형적 태양인이다. 십수년을 보아왔기에 그의 성정이나 몸놀림에서 체질적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빠르고, 날카로와 보이고, 주관이 강해 보이며 똑똑해 보이는 그에게,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침 놓고 혹 약 처방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이 점에서 다른 태양인들과 그는 조금 다르다. 대화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 면에서.

육식의 나라 몽골과 태양인 몽골인. 필자같은 이에게는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처음 그와 왔을 때의 대화, “육식을 어느 정도 합니까?” “자주합니다.” “육식을 끊을 수 있습니까?” “어느 정도나요?” “가급적이면 완전히.” 환자는 놀란다. 유목민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육식을 끊으라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나 30년 이상을 살아 온 한국사람인 나에게 김치를 끊으라는 것과 매한가지일 수 있다. 환자는 타협점을 찾고자 한다. “조금 줄이면 괜찮지요?” “그렇게 하세요. 아예 하지 않으면 더 좋겠구요.”

그런 그를 지난 5월 초로부터 몇 차례 보고 있다. 사람의 선입관은 때로 너무 치우치고 때로 좋지못하고 때로는 무섭다. 역사속의 몽골을 생각하면 지금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는 변방의 가난한 민족같지만, 몽골 민족의 피에는 비범한 뭔가가 있는 듯하다. 한때 그들이 세계를 들쑤시고 세계를 호령했었다. 우리 백의민족, 한국이 한번도 꿈속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의 중국도 하지 못했던 세계정복. 그것이 잘못됬던, 악하던, 그 민족에게는 이것이 자신들의 역사요 자부심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던가. (E. H. Carr) 곰곰이 그 의미를 생각해보니, 과거와 대화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현재의 개선을 통해 미래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면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역사의 의미라는 것이 필자의 이해다. 만약 누군가가 현재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역사는 무슨? 이라고 시큰둥하게 반문한다면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나 막중하고 모두에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적이나 하나의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 어찌보면 이것이야말로 전 인류로부터 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그 흥망성쇄가 달린 문제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몽골은 어떨까. 더 부연할것도 없이, 옛날의 그런 인물이 다시 나오고 더불어 국민의 기상이 그런 인물로 앙양되고 국가를 이끌어 갈 그러한 시스템이 다시 정비된다면 그들에게의 예전의 영화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역사를 교훈삼아 결코 남의 나라,  남의 민족의 피를 흘리지 않는쪽으로. 그것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논리와 지혜를 저 북방의 곰나라는 취득하지 못한 것일까. 왜 저 사막의 한 복판에서 역사적으로 홀로 고투해 오던 민족은 이것을 내동뎅이친 것일까. 그리고 지금은 왜, 세계의 자애로운 형님이요 경찰이라고 자칭하던 국가조차 그것에 희미해진 것일까.  양대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를 소망해 온 인류는 인간 내면의 근본적 이기심과 욕심의 지독한 아이러니의 벽에 갇혀 지금도, 아마도 미래에도 피를 흘리며 울고 슬퍼하고 고통할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과 싸움이 그치는 평화가 이 세상에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세상 모든 민족과 함께 몽골 민족에도 광영이 깃들었으면 하는 一人의 마음을 전해본다./다니엘 한의원 (604-790-8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