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문영
오랜 만에 산을 갔다
겨울 산은 잊은 지 오래되었다
한 때 눈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눈의 세상에서 마음껏 살았던 적의 일이다
그리고 나서 초록이 그리웠었다
초록과 땅의 색을 밟고 싶었다
오랜 만에 산을 갔다
하얀 눈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발 놀림이
차곡차곡 눈길에 낙서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마음보다 몸이 신이 나서
“나 너 알아”, 하면서
겨울 산을 겅중 겅중 달렸다
흰 눈이 덮혀진 나무를 보며 받아들임을 배웠고
안개가 흩어지며 속살을 보여준 풍광에 넉넉함을 배웠고
발을 옮길 때 마다 발과의 대화를 배웠다
봄에 피는 꽃 대신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대신
흰 눈이 겨울산을 메웠다
오랜 만에 산을 갔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도착한 산에는
한 까마귀가 마중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