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만큼이라는 단어는 단독으로 쓰기는 충분한 단어는 아니다. 충분한 단어가 아니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왜 그런 단어를 선택했을까?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그 단어가 가지는 폭넓은 뜻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가 이제 늙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요만큼이라는 말은 아주 애매하다. 혹 손가락으로 보여주면서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해석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말을 정확하지 않게 써도 별...
우리는 평생 무슨 결정이든 결정을 하고 산다. 나는 어려서 철이 없을 때,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으면 내심 내가 태어난 것이 나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옳은 항변처럼 보였지만 오랫동안 숙고해 본 결과 나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생을 살면서 무수한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만 그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결정을 하면서 사는 걸까?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자신의 어떤 결정의 결과와 무게를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아버지는 아버지의 눈으로 아내는 아내의 눈으로 아이는 아이들 눈으로 山을 보고 하늘을 보고 看板을 애드벌룬을 보고 道路 신호등 교통순경을 승객의 눈으로 안 보고 운전사의 눈으로 보고 제 눈의 안경으로 보고 보이는 곳을 보이는 대로 보이는 만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내려다보고 들여다보고 나무가 아직 거기에 있고 江이 언제나 거기서 흐르고 道路는 그렇게 드러누워 있지만 行人의 눈 行人의 눈 行人의 눈 老人의 눈 詩人의 눈 나란히 서서 같이 보고 있어도 눈의 높이가 다르고 오른...
나는 은퇴한지 한 달도 안 된 새내기 백수다. 백수를 해본지도 40년이 넘어서 백수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들은 다 잊었고 지금 그 의미는 변질되고 시대도 나도 변해서 그 뜻을 정립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그래도 기본적인 의미는 일을 안 한다는 거니까 내가 지금 정말 일을 안 하는지 꼼꼼하게 따지긴 해야 할듯하다. 가령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건 일일까? 아닐까? 잔디를 깎는 일, 집안 청소를 하는 일, 식료품을 사러가는 아내를 모셔다 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