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A 김예준
그리움, 성찰, 격려, 그리고 희망
“예준아~ 할아버지랑 같이 산책할까?”
“할아버지,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그러니까…!”
2019년 가을, 우리 가족은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급하게 한국으로 출국했다. 건강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장례식 내내 비가 추적 추적 내렸다. 비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를 위해 하늘이 주는 선물 같았다. 캐나다로 돌 아온 이후에도 그 해 가을과 겨울에는 유난히 비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할아버지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하셨다. 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고 창 밖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싫다고 거절하기 도 했고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서기도 했었다. 나란히 우산을 쓰고 아파트 주변 산책길을 걸었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소리,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걷다가 정자 벤치에 앉아 쉬며 주변 빗소리도 들었다. 흙 냄새, 나무 냄새, 숲속 냄새, 비냄새도 맡으며.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요즈음 비가 올 때면 나는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때 산책하면서 할아버지께서 해 주셨던 말씀들이 하나씩 내 뇌리를 스친다.
비는 그 고유의 향기가 있다. 이제는 나도 그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때는 흙 냄새, 어떤 때는 나무냄새, 어떤 때는 풀 냄새. 비는 흙, 나무 그리고 풀들의 향기를 더 진하게 만들어 준다. 비는 우리의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자신이 어떤 향기를 내는 사람인지 잘 모르다가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각자의 고유한 향기를 내품게 되는 것 아닐까? 비는 아름다운 교향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보슬보슬, 똑똑, 뚜두둑, 주루룩, 줄줄줄.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 마음껏 연주한다. 때로 빗소리는 나를 격려하는 박수소리 같 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여준다. 빗소리는 부족한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낙담하 고 있을 때 내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날이 개이면 비를 맞은 풀과 나무들은 더 생기가 돌고 공기는 한층 더 상쾌해진다. 여러날 지루하게 비가 계속되더라도 뒤따라올 반짝이는 햇살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또한 비로 인해 더 파릇파릇해질 식물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에서의 시련과 역경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반복되는 실패와 오랜 절망으로 바닥을 치고 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을 것이다. 곧 삶에 생기가 돋고 햇살이 비칠 거라는 희망의 메세지 가 느껴진다. 요즈음 사춘기를 지나면서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울쩍했다가, 아무 이유 없 이 웃음이 났다가, 별일 아닌 일에 화가 났다가, 하고 싶은 거 없이 마냥 누워만 있고 싶다가도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 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런 나에 게 그리운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비 냄새를 맡으며 나를 뒤돌아보게 되고, 빗소리를 들으며 격려를 받고, 비 온 후를 기대하며 희망을 느낀다. 비 오는 날, 나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