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엄마가 되면서 늘 고민하던 부분은…
좋은 부모의 역활이었다. 단지, 우리 부부만의 고집이 아닌 양질의 다양한 사고를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환경의 제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로 시작하는 성경의 첫 구절 조차도 마음에 닿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회라는 곳을 생전 처음 찾아간 우리는 또 다른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는 설레임에 들떠 있었고, 익숙해져 가는 시간을 쌓아가야만 했다.
우리 가족이 선택한 교회는 써리와노스델타의 경계에 있는 다문화 국가가 함께하는 교회였다.
한인부와 캐네디언부는 물론, 인도,수단, 중국등의 나라의 사람들이 있었고 물론, 일반 예배 때에는 한인 목사님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주일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접한 적이 없던 우리 여덟명이 교회를 찾은처음마음은 이랬다.
부모와의 부재에서 나와 제임스가 해 줄 수 없는 어떤 부분은 반드시 있었다.
하나님이라는 매개체는 어쩜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부분을 꽉 채워주시지 않을까?
말씀으로, 사랑으로, 같은 구성원들의 관심으로…
첫 시작을 어색해하는 우리를 위해 목사님 가족부터 손을 내밀어 주셨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하고 친교를 나누기도 하며 조금의 향수병도 없이 참으로 따뜻한 교회 생활을 하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아이들은 모범적으로 2년 가까운 성경 공부도 잘 마쳤고, 찬양을 인도하며 봉사의 은혜도 아는 괜찮은 아이들이 되어 있었던 것도 첫 사람들을 잘 만났기 때문일 것 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영어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위한 활동에 더 매진을 하였더라면 우리들의 함께 하는 시간도 길지 못 했을지 모르겠다.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어쩌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지금 그렇게 얻은 값진 마음을 나누는게 익숙한게 아닐까 싶다.
나는 무언가 시작을 할때에 준비하지 않아도 될 준비까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곳 밴쿠버에 오기로 한 그 때부터 아이들의 정장이나 드레스, 한복등을 준비해 왔는데…
이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드레스 코드 때문에 교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외국인 교인들에게 인기만점의 아이들이 되기도 했었다.
너무도 반짝반짝 빛나는 여섯명의 작은 보물들~~
어떤 날에는 문뜩문뜩 아이들 전부가 내 아이였음 하는 바람과 욕심이 살짝 생겼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종교적인 부분은 참으로 민감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어 보는건…아이들의 정서에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에서다.
혼자서 유학을 오는 학생이 있다면, 또는 엄마와 단 둘이 유학을 오는 가정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주고 받는 종교 활동을 받아 들여보기를 권면하고 싶어서이다.
강단에 서신 목사님의 말씀, 맨 앞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는 온전한 축복이 있을거라는…그뒤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장로님의 옆 자리 맨 앞에 앉아 집중하는 우리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학점을 높게 받고 대회에 나가 상을 타는 기쁨보다 배가 되는 행복을 부모님들이 느낄 수 있다면 보람되지 않을까?
나 조차도 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찾은 신앙이었기에…조금은 선택의 이유가 부끄럽지만 지금처럼 큰 아이들이 술 담배 또는 다른 일탈은 하지 않고 지내니 복 받은 부모가 아닐까 싶다.
2010년 9월이 지나기 전, 모든 생활이 시작인 그 때 지인 가족이 여행을 왔었다. 2학년과 4학년인 남매와 부모님은 한국에서 나의 학생과 학부모였고, 나이가 어린 탓에 유학을 함께 못 왔던 인연이었던아이들이다.
한달 정도의 밴쿠버 여행에 우리 가족도 동행하는 날들이 있었다.그리고, 이 여행의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많은 곳을 다니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여행의 첫 시작은 빅토리아 였는데, 12명의 인원은 적지 않았기에 가이드 한 분과 가족만이 함께
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은 하버 광장에서의 우리들만의 이벤트였다.
몇 가지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고, 어떤 이들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으며 즉흥적으로 자신의 개인기를 보여주는 모습이 한국의 대학로에서 보던 공연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위기에 우리 아이들 여섯 명과 나는 광장 한 자리에 줄 지어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노바디 음악에 맞춰춤을 선보이며~~끝 자라엔 대한민국을 외치며 가슴벅찬 추억을 만들기도 하였다.
지금도 아이들과 지난 얘기를 나눌 때는빅토리아를 가던 중에 보던 범고래 무리와 멀리 보이던 만년설의 산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와 공연을 하며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던 기억들에 한 번씩 설레어 보기도 한다.
그 뒤로도 여러곳의 여행을 다니는 경험은 자주 만들어지곤 하였다.
휘슬러에서의 우리 집 막둥이였던 은영이의 생일 파티~ 아이들은 그 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잊었을지모르지만…
한국을 떠나 올 때 넣어 두었던 약간의 주식수익금을 생일 날 여행 가는게 소망이었다는 은영이의 바람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경제적으로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휘슬러 겨울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이렇게 3년은 그랬던 것 같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라는 영화가 떠올라 시애틀을 찾아가 보고, 오카나간의 리조트에서 아이들과 즐기는 3박 4일의 여행도…인생에 꼭 한번 가 봐야 할 여행지인 록키의 8박 9일의 캠핑,게 잡이와 조개 잡이로 추억을 만들었던 썬샤인 코스트 등~~좋다는 곳 맛있다고 소문난 곳 등은 찾아가보며 아이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냈었다. 물론, 이렇게 지내온 세월에 우리들만의추억이었기에 어쩜 아이들의 부모님조차도그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할거라는 건 안다. 공부나 더 시켰음 했을 수도 있었을 것 이고…아이들의 소망을 들어주려 계획하고 움직이는 우리네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크게 게의치 않는다. 홈스테이라는일…나와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부모들과 남들은 다 그렇게 여기는 홈스테이는 좋은 말보단, 쓴 말을 더 듣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마음은 여유로웠고 기뻐했으니 그것으로 족한다.
요근래에 만나는 유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캐나다에서 지내면서도 여러곳에 여행을 다녀보는 학생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그 만큼 캐나다의 높고 청명한 하늘과 풍경을 살필 여유가 없다는 뜻 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그런 각박함이 아쉽기에 어쩌면, 아이들에게 쉴 수 있는 타이밍을 조금씩만 준다면, 더 밝고 행복하게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한 마디: 우리 아이들은 그 시절, 배 부르며 외롭지 않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없었기에 더욱 쉽고 편안하게 지금의 우리들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 한다. 결국, 우리 어른들의 몫은 편안하고 웃음이 가득한 가족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