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COVID-19으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직업 중에 하나가 음식을 취급하는 업종인 식음료 업종과 관광업, 숙박업 등일 것이다.
COVID-19이 터지기 전에 이미 미니 스트로크가 와서 실업수당을 받고 있던 실업자였던 나는 비씨 주의 카지노가 모두 문을 닫기 전에 문 닫는 날인 3월 첫째 주 월요일에 면접을 보기로 한 곳에서 연락이 와서 언제까지 될지 모르지만 면접을 잠정 연기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시니어 홈에서도 정직원으로 일을 하려고 했지만 몸상태가 아직 돌아오지 못해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다른직종으로의 직종 전환도 고려대상이 되었다. 경비원으로전환해 볼까 했지만 그것도 교육받고 나서 최저 임금부터 시작을 해야 하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러다 보니 전에 다니던 직장에 다시 임시직으로 받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어떤 주에는 일이 없고 어떤 주엔 주 5일을 일하는 캐주얼 잡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에 아프기 전부터 캐주얼 잡으로 가지고 있던 직장인 케어 홈에서안내가 왔다. 헬스 케어 시작 프로그램인데 1년 이상 풀타임으로 공부를 하면서 시급도 지금 받는 급여를 받을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해서 나 이거 정말 해보고 싶다는생각이 들었고, 동료한테 보여주니 정말 좋은 기회라고말했다.
결과적으로 영어 때문에 하고 싶은 트레이닝 코스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원을 하였지만 캐나다에서 10학년까지 공부를 했거나 영어 레벨을 요구했다. TOEFL IBTm CELPP, 또는 IELTS 레벨 테스트를 요구했다. 다른 요구사항은 캐나다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프로그램에 2년동안 할 수 있어야 하고, 캐나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이어야 한다. 또한 일주일에 37.5시간 일을 시작하면서 트레이닝해야 하고 시작을 4월부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지원할 때 이거 영어 때문에 걸고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어 때문에 하고 싶은 트레이닝 코스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산지 벌써 27년 차이다. 이젠 한국에서 산 세월과 캐나다에서 산 세월이 비슷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 이민 와서는 기초 ESL을 배우기는 하였지만 계속할 형편이 못됐다. 당장 렌트비도 없는 상태에서 쌍둥이 둘하고 우리 가족이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물론 옆지기나 애들은 핑계라고 말한다. 그 와중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했다. 밴쿠버에서 F&B 매니지먼트 자격증 과정을 공부한 거라든가, FOOD SAFE자격증 등을 딴 일이다.
이민 2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공부해서 뭔가 자격증이 있어야 이력서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의 학교도 경력도 다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했다. 심지어 한국식당에서도 한국의 학교 다른 것도 아닌 조리 관련 대학 졸업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메일로 온 답장을 보여주니 가족들의 반응도 그랬다. 아내는 거봐 내가 진즉부터 공부하라고 했잖아. 아들도 딸도 영어 공부 좀 하지. 물론 핑계라면 핑계지만 먹고 살기위해 발버둥 치느라 공부할 시기를 놓쳤다. 그리고 사실 30년을 넘게 일한 조리직을 떠나서 다른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옆지기 친구가 한 달에 얼마의 수입이라고 말했을 때 때려치우고 한국 가서 간병인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물론 이번에 시급을 지급하면서 트레이닝 시켜준다는 것도 간병인과 같은 직업이다. 보조 간호사 아래서 환자나 시니어를 돌보는 일이다.
사실 조리직만 오래 일해 왔기 때문에 지원하기 전에 갈등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병원 관련 일이 아니면 안전한 직장이 없는 지금의 형편상, 그리고 직업 구인란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것도 시니어 홈에 헬스케어 쪽이다.
10년 전에 조리사로 일하다 학교를 다녀 PN 즉 간호보조사가 된 멕시코 출신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 그 친구 용기가 가상하게 생각되면서도 젊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은퇴를 생각해야할 나이가 되어 다시 공부하여 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싹을 싹둑 잘라버리는 현실 앞에 이민의 설움을 다시 느끼게 한다.
이민 초기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대기업 중견사원이나 의사, 치과의사 등을 하다가 이민을 함께 와서 그로서리를 하거나 세탁소를 하는 일이 많았고 그분들이 한국에서 조리 일을 하다 이민 와서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이 축복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최근에 이민의 추세는 유학으로 와서 이곳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잡고 취업비자, 영주권, 그리고 시민권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민 올 때만 해도 투자이민이 아니면 독립이민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안 되면 스폰서를 통한 취업비자를 받고 영주권, 취업비자 스폰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코가 꿰어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하루 15시간이 넘는 근무를 하면서 오버타임도 못 받고 따져보면 최저임금인 월급을 받고 일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난 독립이민 조건이 되어 독립이민을 와서 영주권을 바로 받았으니 그런 설움은 안 받았지만 직장을 구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인이지만 캐나다인이 아니고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다. 때론 한국말의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영어 단어로 셀폰으로 한국말을 찾는 일도 있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내 조국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사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도 입사 조건은 10학년 이상 캐나다에서 졸업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전에 백인 매니저는 이 조건으로 사람들을 뽑으니 늘 영어가 우선이었고 아무리 능력이 좋고 경력이 뛰어나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민자가 매니저일 땐 사람이 부족하고 꼭 이 사람을 써야겠다고 하면 무시되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은연중의 차별이 늘 이민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필리핀이나 인도 사람들이 이민이 늘어나고 병원 등의 좋은 직장에 많이 근무하는 이유가 아닐까?
아빠 엄마가 이민을 와서 이곳에서 공부한 아들은 늘 왜 원어민처럼 영어를 못하냐고 핀잔을 준다. 서류 등을 번역하거나 작성을 도와달라고 하면 늘 한소리 하고 공부하라고 한마디 하고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래도 비교적 잘 도와주는 딸에게 부탁을 많이 한다.
처음 이민왔을 땐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리고 내가 틀렸을때 그들의 놀림을 알아듣게 되면서는 더욱 입을 닫게 되었다. 이젠 두렵지는 않다. 모르는 게 있으면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고 대화를 이끌어 내면 되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마이동풍처럼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또한 문제이다.
COVID-19으로 가뜩이나 인기없는 조리직이 더욱 인기가 떨어질 것 같다. 내 자녀가 조리직을 한다고 하면 절대 권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처음 이민 와서 한국식당에 일할 때 아주머니가 난 한국사람들하고 일하고 서양사람들하고는 왕래가 없었다며 이민 오자마자 백인 친구가 있다는 나를 부러워했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연락은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처럼 끈끈한 정은 없다. 물론 한국인이라고 해도 끈끈한 정을 이어 나가기는 힘든 것이 이민자 사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글 | 전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