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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골키퍼, 문자 테러 받아…크로아티아 팬들 ‘배신’ 낙인

2022-11-30 19:36:39

크로아티아 팬들은 이런 보리언을 배신자라고 낙인 찍었다. 크로아티아와 군비 경쟁을 벌이는 세르비아의 프로리그에서 뛰는 것도 모자라 캐나다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크로아티아전에 출전하는 상황을 고깝게 바라봤다.

캐나다 축구대표팀 골키퍼 밀런 보리언(35·츠르베나 즈베즈다)은 27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 크로아티아전을 마치고 휴대폰 전원을 켠 뒤, 쉴 새 없이 알람 메시지를 받았다. 그의 휴대폰엔 무려 2천500개가 넘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세르비아계’ GK 보리언 비난

FIFA 징계착수…”팬들 이해”

메시지는 대부분 크로아티아 언어로 쓰여 있었고, 대부분의 내용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었다. 보리언은 경기 중에도 크로아티아 관중들의 집중 타깃이 됐다. 이에 국제축구연맹(FIFA)이 징계에 나섰다.

자국 태생이지만 민족 분쟁으로 얽힌 세르비아계라 주창하는 보리언을 향해 크로아티아 팬들이 오랜 적개심에 기반한 혐오성 응원을 펼쳤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축구협회는 29일(현지시간) FIFA가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며 “캐나다와 경기에서 일부 팬들이 차별적이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성 짙은 행동을 보였고, 그런 내용의 현수막도 걸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27일 캐나다와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서 일부 관중들은 경기 중 보리언을 향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십만 명을 학살한 크로아티아 분리주의 운동조직 ‘우스타샤’라고 소리를 질렀다.

또한 보리언 뒤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일부 크로아티아 팬은 ‘KNIN(크닌) 95. 보리언처럼 빨리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고 쓰인 현수막을 들어 올렸다.

이는 1990년대를 휩쓴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서도 1995년까지 벌어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막바지에 있었던 군사작전을 언급한 것이라고 AFP통신은 해설했다.

1995년 크로아티아의 크닌 주변에서 벌어진 이 군사작전으로 20만명의 세르비아계가 피란민이 됐다. 1987년 크닌에서 태어난 보리언도 만 7살 때인 당시 부모님과 함께 피란 행렬에 동참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정착한 보리언의 가족은 2000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으로 이주했고, 보리언도 캐나다에서 프로선수로 성장했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주로 남미에서 활동하던 보리언은 2009년 세르비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17년부터 세르비아 리그 츠르베나에서 뛰고 있다.

그는 2010년 캐나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뒤 이번 대회를 통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 밟았다.

크로아티아 팬들은 이런 보리언을 배신자라고 낙인 찍었다. 크로아티아와 군비 경쟁을 벌이는 세르비아의 프로리그에서 뛰는 것도 모자라 캐나다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크로아티아전에 출전하는 상황을 고깝게 바라봤다. 게다가 보리언은 지난 4월 자신이 크로아티아 태생임을 부정한 발언을 내놔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자신이 크라이나 공화국 출신이라고 했다. 크라이나 공화국은 전쟁 기간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장악했던 지역이다.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했고, 이후 크로아티아로 편입됐다.

보리언은 크로아티아 팬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크로아티아 매체 베체른지에 따르면, 보리언은 경기 후 “내 휴대폰 번호가 유출된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크로아티나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크로아티아에 1-4로 대패하면서 36년만에 참가한 월드컵 탈락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