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쓸 때면 아직도 2022년도 라는 숫자가 새롭고 적응이 안되었는데 벌써 끝이 났다. 어렸을 때는 해가 바뀌면 한 두 달 만에 그 년도 숫자에 바로 적응이 되었고 12월이 되면 이미 그 해 숫자는 유행이 지난 듯 오래 되었다고 느껴졌는데 말이다. 2022라는 숫자는 아직도 새로운데 벌써 2023이 와버렸다. 역시 시간은 준비가 되던 안되던 참 정확하게 온다. 마치 인정없고 정확한 독일 기차 스케줄처럼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독일의 커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커피는 독일의 식물학자인 Leonhard Rauwolf라는 사람이 1582년 중동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 “동방여행”에 최초로 언급이 되어있다. Rauwolf는 아랍사람들이 “차우베 (Chaube)” 라고 부르는 각성효과가 있는 음료를 마신다면서 유럽에서는 최초로 커피음료에 관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후 커피음료는 1670년경에 영국에서부터 독일로 전파가 되었고, 1680년경 영국의 상인이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 커피하우스를 차리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 당시 커피하우스는 특히 남성들의 사교의 장으로 인기가 많았고, 소규모 공연장이 있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문득 생각해 보면 영국에서는 이미 차문화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독일에 먼저 커피문화가 소개되었을 것 같지만 사실 영국 보다 늦었다고 한다. 독일의 커피문화가 영국 보다 늦은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 독일은 커피를 재배하는 식민지 나라가 없어서 중간 무역상을 거쳐 비싼 가격으로 수입을 했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연스레 대중화에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가 빠르게 유행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커피를 마시면 각성효과로 밤늦게까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고 야근은 필수였던 시대에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후 베를린에서는 남성들이 퇴근 후 맥주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성들은 커피를 마시며 그들 만의 사교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그 당시 가사일만 하는 여성들도 하루에 10잔 정도는 기본으로 마셨다고 하니 얼마나 커피가 유행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처음 카페가 많이 생기기 전에는 여성들이 제과점에서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연한 커피를 많이 즐기면서 온종일 대화를 즐겼고,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애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커피 수요가 날로 늘어나자 독일의 막대한 외화는 커피 수입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당시 국왕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도 커피를 매우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1777년에 커피 소비를 금지시켜야만 했다. 대신 맥주 소비를 권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이러한 커피 금지정책으로 법을 어겨가며 판매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결국엔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커피 소비 금지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성명서를 철회하고 말았다고 한다.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커피문화가 늦게 형성이 되었지만 기계 기술이 뛰어났던 탓에 커피 관련된 여러 기구, 기계들을 선보이기 시작 했다. 대표적으로 커피를 열풍식으로 볶는 기술, 카페인 제거 기술들이 발전되었고 각종 드립 기구로 유명한 말리타 (Malita)도 독일에서 발명이 되었다. 말리타 브랜드는 사실 독일 주부인 말리타 벤츠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편에서도 언급 했듯이 핸드드립은 이처럼 독일에서 발명되었지만 일본이 그 방식을 자기만의 개성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핸드드립 기구는 일본의 하리오나 독일의 말리타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한 때 경제적인 이유로 커피 소비를 억제하려 했지만 지금은 대중적인 카페도 많이 생겼고, 일본이나 한국처럼 가격이 비싸더라도 ‘커피 맛’을 중요하게 여겨 풍미 있고 좋은 품질의 커피를 즐기는 커피 문화가 정착 되었다.
글 A Cup of Heaven Coffee 로스터리 대표: Joseph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