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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아티스트가 궁금하다

2024-02-08 10:47:10

이철주 게임 아티스트가 전하는 캐나다 게임회사 취업 노하우

요즘 게임 아티스트를 직업으로 원하는 학생들이 많다. 특히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흥미를 넘어 게임 제작까지 도전해 보고자 하는 게임 아티스트를 꿈꾼다. 게임 제작시 일반적으로 게임 아티스트, 게임 기획, 프로그래머로 크게 분류된다. 각각의 세 팀은 프로덕션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아티스트들은 보통 게임상에 보이는 모든 비주얼 그래픽 아트를 만들며 게이머가 조정하는 모든 캐릭터와 배경, 애니메이션, 메뉴, 게임 플래이에 필요한 아이템 등 모든 것을 제작하는 전문인을 말한다. 게임 아티스트는 아트적인 비젼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다양한 2D/3D 모델링, 애니메이션 그리고 스패셜 이팩트를 위한 툴과 프로그램을 잘 다루어야 한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20여년 이상의 게임 아티스트 경력과 최고의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한인 이철수 아티스트를 만나 게임 아티스트의 세계를 들어봤다.

Q 캐나다 이민 동기
한국에서 거주 시 KBS 2 TV에서 3D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 당시 북미에서는 픽사의 토이스토리가 빅히트를 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3D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한국에서는 3D 애니메이션을 배울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3D 애니메이션 제작인원의 리드들은 모두 외국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로 체워졌다. 북미와 한국의 수준차이는 정말로 컸다. 때론 절망적이었고 거기서부터 나의 목마름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소포트 이미지와 3D 마야를 좋아했다. 그 두 프로그램은 가격도 비싸서 그 당시에 일반 중소회사에서는 사용하기 부담스러워하는 고급스런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그 두 프로그램을 만든 캐나다를 동경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을 가게 되면 꼭 밴쿠버로 가기로 맘 먹고 있었다.

Q 한국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유학길에 오르다
2000년 동아일보와 LG 가 주최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패스티벌에서 가고시마로 대상을 수상했다. 대상상금과 콘소시엄을 통해 정부에서 후원금을 덤으로 받았다. 한순간 뜻하지 않게 많은 수입이 생겨서 제정적으로 튼튼해졌고 이제 유학에 대한 걸림돌은 모두 사라졌다. 뒤늦게 KBS에서 내 작품인 가고시마를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유학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시점이어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내 계획을 위해 유학을 결정했고 2001년 한국을 떠나 밴쿠버로 왔다. 그렇게 캐나다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

Q 한국과 캐나다 직장의 차이점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은 캐필라노 대학을 졸업하고 정확히 2003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원화감독을 했지만 캐나다에서는 렐릭 엔터테인먼트에서 3D 캐릭터 아티스트로 시작하였다. 필드가 틀려서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없지만 보편적인 차이점을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직장 문화
아무래도 문화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언어의 장벽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생활습관과 사고가 틀리기 때문에 오는 불편함 그리고 오해 그런 것 때문에 직장내에게 가끔 힘든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 때문인가 회사에 나 혼자 늦게 남아서 일하는 날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시에 퇴근하면 괜히 일을 못하는 사람처럼 인식될까봐 두려워 되도록 오래 남아 있었다. 난 그런 근무태도가 자연스러웠지만 여기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구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일에 충실하면 굳이 회사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당연한 사실인데 그걸 고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회사와 개인 삶에 밸런스가 맞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의 구조 체계
한국은 수직적인 보고와 명령체계지만 캐나다는 직위구조와 명령체계가 수평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일상이고 그 상사는 그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마치 피라미드처럼 상하 지휘체계가 뚜렷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캐나다는 팀에 많은 상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주니어 시니어 구분은 있었지만 제작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에게 보고하고 명령하고 그런 구조는 아니었다. 그래서 상사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었다.
한국은 조직의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보고와 상하 직위체계가 선명했던 것 같고 여기 캐나다는 개개인의 성취감을 더 높게 봤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감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Q 캐나다 직장에서의 생활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21년째 게임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초반에는 언어의 장벽이 커 진급을 위한 면담을 하게 되면 항상 커뮤니케이션 스킬에서 많은 점수를 잃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진급이 느렸다. 그래서인가 연봉도 생각처럼 빨리 오르지가 않았다.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만족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Q 캐나다에서 첫 게임 제작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company of heroes)가 필자가 제작에 참여한 캐나다에서의 첫 게임이었다. 그 게임의 캐릭터 팀을 이끌고 있었다. 캐릭터는 게이머가 게임 플래이를 이끌어가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우리 게임은 유럽을 배경으로 한 2차대전 게임이었다. 캐릭터 아티스트인 나는 유럽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다. 한국에서 그리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유럽인을 그려도 그곳엔 항상 한국인이 있었다. 유럽인같이 안 보이기 때문에 몰입감 있고 생동감이 나야 하는데 부족한 면이 있었다.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라서 그런가 나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회사에서는 조심스럽게 나 대신 다른 사람이 그 캐릭터 작업을 맡는게 어떨까하는 사람이 생겼다.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나름 힘든 상항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Art speaks itself!’ 스타일 탓도 해봤지만 결국 문제는 내 아트에 있었다. 아트에 매력이 없으니깐 벌어지는 일이고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너무 유럽인에 가까울 필요는 없다 독특하고 멋있는 캐릭터를 만들면 된다! 컨셉이 바뀌니깐 스타일도 바뀌고 작업능률도 휠씬 빨라졌다. 남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컨셉대로 캐릭터가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그 게임이 출시됐다. 예상과 달리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다. 제작 초반에 캐릭터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게임 출시후에 그 우려가 모두 사라졌다. 왜냐면 기존의 RTS 캐릭터보다 휠씬 수준이 높고 실제감이 있으며 디테일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에서 보너스도 받고 진급도 했다. 얼마후에 내가 컨셉 아티스트로 참여했던 웨해머(dawn of war) 가 곧바로 출시됐다. 역시 마켓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게임이 잘 되니깐 그저 팀원의 일부로써 보람을 느끼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이 생겼다. 그리고 자기의 강한 신념과 비젼이 있다면 주위 반대에도 한번 밀어부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Q 세계 최고 게임아티스트를 뽑는 픽셀에 선정
게임출시 후 2007년 내 작품 In the rain으로 세계 최고의 게임아티스트를 뽑는 픽셀(Into the Pixel)에 선정됐다. 그 당시 픽셀 선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작품이 경쟁력이 있어야만 했다.
소니, 마이크로 소포트, EA 등 많은 회사에서 후보를 내고 서로 자사의 아티스트의 작품이 픽셀에 선정되야지 자사의 게임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운좋게 픽셀이 선정되면서 LA 아트 협회 전시회에 초청을 받았다. 아울러 토론토 국제 영화제, 그리고 USA today에 내 작품이 전시가 되기도 했다. 한국 문화부 초청으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세미나를 주최하기도 했다. 그동안 묵묵히 열심히 일했던 노력에 대한 소중한 보답이었다. 그저 하나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Q 새로운 도전… 현실과 꿈
2007년 이후 평탄한 회사생활이 이어졌다. 꾸준히 회사생활도 하면서 틈틈히 개인작품도 만들어 갔다. 성공한 게임도 실패한 게임도 많았다. 게임의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어쨌든 난 발전하고 있었다.
2019년에 커리의의 변화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창업 계획이 있었고 펀딩도 약속받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휠씬 적은 미비한 펀딩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가 불투명하다는건 걸 깨달았다. 그 당시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모바일게임 회사에서 오퍼가 들아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써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고 그래서 재정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아내한테 미안했다.
가족과 상의한 후 일단 미국회사의 오퍼를 받고 몇달간 일을 해보기로 했다. 미국은 캐나다하고 조금은 틀렸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 보다는 미국의 직장문화가 맘에 들었다.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받고 이젠 가족을 설득해서 미국으로 이주할 생각이었다. 막상 미국으로 이주하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긍정적이던 아내도 이제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결국 미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솔직히 밴쿠버를 떠난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여기서 가족을 이루고 애들을 낳았고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방항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친구가 운영하는 밴쿠버에 있는 게임회사로 들어갔다.

Q 코로나 시기…“Glimpse of hope!”
2020년 코로나이후 자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코로나 발병 초창기 의료진이 목숨 걸고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에게 뭔가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Glimpse of hope!” 작품완성 후 무심코 소셜미디어에 작품을 올렸다.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특히 유럽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사 간호사를 포함한 많은 의료봉사자들이 그 그림에 감명받았다는 반응이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명인한테서 작품 잘 봤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인과 코멘트를 받기도 했다. 여기저기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온세계가 코로나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라서 언론에서 유독 그 작품에 더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아트 프린트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고가의 수준 있는 작품만 프린트하는 회사로 유명했다.
내 작품도 선정이 되어서 200매 최고급 프린트에 들어갔고 모두 sold out 됐다. 많은 수익금도 생기고 그 일부를 후원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아직도 아티스트로써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된다.

Q 한인 2세대들 중 게임 IT관련 직업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필요한 것
게임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게임기획 쪽 아니면 영화 스패셜 이팩트, 애니메이션 쪽 분야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어느정도 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본적으로 스킬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학이나 학원 같은 곳에서 그 분야에 필요한 과목이나 전공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아티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아트에 재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도전할 것을 추천한다. 당연히 재능이 없어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러나 기본적인 재능 없이는 그 성공으로 가는 길이 결코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뛰어난 재능을 말하는 건 아니니 도전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다음으로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한다면 게임 코딩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게임 기획을 하고자 한다면 게임을 많이 하고 창의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Q 취업을 위해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
밴쿠버에는 게임 엔터테인먼트 IT분야의 회사가 상당히 많다. 몇 년 전 미국 산타 모니카에 있는 소니 이미지 픽셔스가 본사를 밴쿠버로 옮겼다. 그와 동시에 자사의 수많은 직원들이 밴쿠버로 이주했다. EA도 본사가 버나비에 있고 많은 유명기업이 밴쿠버에 있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회사가 밴쿠버로 몰려올 거라고 믿는다. 왜 밴쿠버로 회사가 모이는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취업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스킬이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 취직을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이건 아니면 전문 애니메이션 학원이건 전문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길 추천한다. 그곳에서 전문지식을 습득함과 동시에 많은 동료를 만나고 그들과 영감을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현장에서 일해보면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항상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지식과 인맥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이다.

Q 취업을 위한 노하우
취업의 기회는 많지만 막상 도전해 보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1.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라.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직원 채용 시 그 직책에 맞는 완벽한 사람을 찾긴 정말 힘들다. 그런 경우 인터뷰에 많은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인터뷰 때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긍정 마인드는 면접관에게 신뢰를 줌과 동시에 부족한 부분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2. 열심히 해라.
이 분야의 지원자 대부분은 그림이 좋아서 아니면 코딩에 푹 빠져서 시작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열정도 만만치 않다. 그들과 경쟁하고 그들 중에서 본인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마라.
취미활동 아니면 운동을 해라. 바쁜 와중에 한가하게 취미활동이라서 좀 느슨하게 들릴 수 있지만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기본적인 체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간단한 운동을 꾸준히 하면 스트레스도 풀고 건전한 마인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4. 자신감을 가져라!
취직은 분명히 된다 단 얼마나 빨리 그것이 실현되느냐가 관건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면 그 문은 반드시 열린다.

5. 즐겨라! Enjoy the 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