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금란 (전 밴쿠버 한인회장)
캐나다의 가을 단풍은 동부 지역이 유명하다.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주와 퀘벡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자랑한다. 알곤킨 공원과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의 가을 풍경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빼어난 단풍을 보여준다. 그리고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는 세상의 여느 캐피털 중에 단풍을 치자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캐나다의 국기에 붉은 단풍을 넣은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단풍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밴쿠버는 동부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BC주 대부분의 산천에 침엽수림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곳곳에 따라 활엽수림이 무리지어 자란다. 들녘이나 강가 에서도 빛깔 좋은 가을을 즐길 수 있다. 가까운 스탠리 공원이나 퀸엘리자벳 공원 또는 버나비의 디어레이크는 단풍이 무척 곱다.
차를 몰고 밴쿠버 외곽지역으로 나가면 청정하고 조용한 활엽수림을 볼 수 있으며 단풍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흰머리 독수리들이 모여드는 스콰미시의 강변이나 미니 밴프 공원이라고 칭하는 펨버턴이
특히 멋지다. 펨버턴엔 은사시나무라고 칭하는 아스펜 군락지가 있으며 노랗게 물든 가을날의 풍경은 너무도 따사롭다. 꽃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며 피지만 단풍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며 물든다. 사람은 찬 바람에 옷을 더 입지만 나무들은 추우면 옷을 벗는다. 사람과 나무는 겨울에 대해 상반된 준비를 하고 있다.
밴쿠버의 단풍은 주로 노란색 계열이다. 그러나 올해는 유난히 붉은 색조가 뛰어나다. 가을에 잎새들이 노랗게 물드는 것은 카로틴 색소 때문이다. 붉게 물드는 것은 안토시아닌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주황색은 크산토필이 풍부하다. 가을의 날씨와 기온에 따라 붉은 단풍이 되기도 하고 꽃처럼 아름다운 노랑색을 피우기도 한다.
가을 들녘에서 단풍을 볼 때 아름다운 탄성뿐만 아니라 무언으로 들려주는 인생의 교훈도 얻을 수 있다. 푸른 잎이 붉게 물드는 것은 자연의 이법이다. 삶은 영원하지 않으며 스쳐 지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시간여행이다. 단풍은 결국 낙엽 되어 떨어지고 그리고 흔적없이 사라진다. 삶이란 유한하며 긴 여행길이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허무할 필요가 없다. 그 긴 여름을 보내고 탐스러운 열매를 내는 과일나무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삶이란 아무리 이름 없는 생명이라도 세상에 존재의 발자취를 남긴다. 저마다의 사연과 얘기를 담고 있다.
가끔 따스한 가을 햇살이 눈부신 날에 단풍나무 숲을 걷고 싶다. 한 폭의 그림처럼 화사한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져 뒹구는 공원 벤치에서 앉아서 따사로운 햇살에 얼굴을 쪼이고 싶다. 결실의 의미와 떠남의 여정을 생각해 보고 싶다. 생각나는 시라도 한 구절 읊조리면 가슴엔 아름다운 가을의 서정으로 가득하다. 강가나 해안가에서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 들녘과 언덕에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억새, 가을이 선사하는 계절의 행복이다. 아름다운 서정 시를 많이 지은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들국화 한 송이, 갈대, 바람에 팔랑거리는 가지 끝의 단풍잎 하나. 가끔은 분주한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눈길을 주고 싶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눈부신 어느 오후의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