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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은 건강할 때 먹어야 한다?

2026-02-12 13:46:04

“요즘 기운이 너무 없어요. 보약 한 재 지어야 할까요?”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질문이다. 많은 이들이 보약을 ‘크게 아플 때 먹는 약’ 혹은 ‘기운이 바닥났을 때 단번에 끌어올리는 특효약’으로 여긴다. 하지만 한의학의 전통적 관점에서 보약은 병을 직접 공격해 없애는 치료약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큰 병이 없을 때, 다시 말해 겉으로는 비교적 건강해 보일 때 몸의 균형을 다지고 약해지기 쉬운 부분을 보완해 질병을 미리 막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의학에는 ‘치미병(治未病)’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직 병이 되지 않은 상태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병이 깊어진 뒤 치료하는 것보다, 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바로잡는 것이 상책이라는 예방의학적 사고다. 보약은 바로 이 지점에 놓인다. 피로가 쉽게 쌓이고, 감기를 달고 살며,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탈이 나는 사람에게 보약은 떨어진 면역과 회복력을 북돋워 다음 고비를 넘기게 하는 ‘방패’가 된다. 병을 없앤다기보다 병에 덜 걸리는 몸을 만드는 데 초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약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건강하다고 믿고 무턱대고 먹는다고 모두에게 이로운 것도 아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건강은 단순히 검사 수치가 정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기혈의 순환과 장부 기능의 조화가 유지되는 상태를 뜻한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속에 열이 쌓여 있거나, 소화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스트레스로 기운이 막혀 있다면 그에 맞는 처방이 필요하다. 체질과 현재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보약은 오히려 더부룩함이나 두통, 열감, 불면 같은 불편을 낳을 수 있다. ‘보(補)’도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영양이 과잉된 시대에는 ‘무조건 보한다’는 발상이 위험할 수 있다. 과로와 수면 부족, 운동 부족, 과식과 음주가 반복되면서 생긴 피로를 생활습관 개선 없이 보약 한 첩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근본 처방이 아니다. 보약은 무너진 생활을 덮어주는 면죄부가 아니라, 올바른 식사와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운동 위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조력자에 가깝다. 몸을 혹사시키는 습관을 그대로 둔 채 기운만 보태려 한다면, 이는 물이 새는 독에 물을 붓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언제가 보약을 고려할 시점일까. 큰 병은 없지만 유난히 기력이 달리고 회복이 더딜 때, 수험생이나 임신·출산 전후처럼 신체적·정신적 소모가 예상될 때, 수술이나 큰 질환 이후 기력이 떨어진 회복기, 잦은 감염으로 면역 저하가 의심될 때가 한 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나 중년 이후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시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현재의 허실(虛實)을 가려내고, 부족한 부분은 보하고 과한 부분은 덜어내는 맞춤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약도 결국 ‘나에게 맞는가’가 핵심이다.
결국 “보약은 건강할 때 먹어야 한다”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보완이 필요하다. 이미 병이 깊어진 뒤에야 찾기보다는, 아직 회복력이 남아 있을 때 미리 다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옳다. 그러나 ‘건강하다’는 판단은 스스로의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세심히 읽는 과정 위에서 내려져야 한다. 보약은 건강을 대신 만들어주는 기적의 약이 아니라,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에 힘을 보태는 동반자다. 예방의 지혜와 절제된 생활,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보약은 제 역할을 한다. 건강할 때의 한 걸음이, 병든 뒤의 열 걸음보다 값지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 이 칼럼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하며, 개별적인 건강 상태에 따라 전문가의 진료와 상담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글 미소드림한의원 원장 노종래 (RTC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