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석중
어느 날 누워서 책을 보는데
먼지보다 작은, 아주 작은
벌레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이 놈이 나쁜 벌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손으로 눌러 죽여 버렸습니다.
작은 놈도 너무 작으니까
불안해 지더군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건 다행한 일일까요?
One day I was lying down and reading a book
It came to my attention that a bug was moving
It was so tiny and tinier than a dust
Suddenly I thought it might be harmful
And killed it with my thumb
Even though it was so tiny
Being too tiny made me afraid
Isn’t it a thankful thing that
We cannot see viruses or bacteria with our naked eyes?
보이지 않는다와
모른다가 같다고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모르는 일은 흔합니다.
고개를 돌리면 금방 보고 있던 것이
생각이 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때로 나는 ‘나의 망각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나는 기억보다 망각에 불평을 더 많이 합니다.
아플 때, 쇠약해졌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건강해지면’ 바로 잊어버리는 이런 상념을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자주 하고 만약 무슨 일이 있을 때 나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는 계기로 쓴다. 물론 욕심도 조금 있어서 내 결정대로 언제까지 가겠다든지 어디까지 가고 싶다는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걱정하기는 한다. 지금 예측해보면 아주 많이 빗나갈 것 같지는 않다. 당뇨로 30년을 지내다보니 항상 환자인 생활을 하고 합병증도 있지만 정상적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아내의 덕분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운이 좋을 거라고 근거 없는 믿음 속에 산다. 그러나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항상 되뇌곤 한다. 나름 나의 연습이 다. 받아들이자. 섭섭하지 말자고.
그래도 나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꿈이라고 해야 아주 소박하지만 그래도 나름 꿈을 꾼다. 내가 가진 재주에 많이 보태서 나의 예술이 만족스러웠으면. 의도치 않았던 일이 생긴다는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빌미는 나니까 아주 많이 헛된 꿈은 아니겠지 한다. 나의 글에 무엇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무엇이 있다면 그걸 보는 사람이 있다면 죽기 전에 만나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있었으면 하는 꿈은 어제 오늘 된 꿈은 아니다. 나는 이런 일들이 궁금하다. 젊은 시절 우물 안 개구리로서 서슬 퍼렇게 살던 시절, 그 시절의 기상은 다 꺾였지만 그렇다고 속절없이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도 믿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가진 것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거기가 내가 궁금해 하는 곳이다.
나의 인생에는 쓰라린 경험이 없다. 내가 그 쓰라린 경험을 피해서 산면도 있지만 내가 34년 간 해온 직업처럼 망하지 않고 분에 넘치는 도시(Chilliwack)와 손님의 호의를 입고 지금까지 잘 살아온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여기가 나의 고향이 되었다. 이 도시에 나보다 조금 산 사람들도 종종 만나고 사디스(Sardis Park) 공원을 걷다보면 내가 구두수선을 오래 했다고 산책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수군대는 소리도 들린다. 하긴 나는 여기서 모국인 한국보다 더 오래 살았다. 내가 겪지 않은 쓰라림은 나의 환경을 온실처럼 만들어서 나의 글이 세파를 겪은 글처럼 보이지 않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화초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의 인생으로 치면 다행이다. 꼭 질겨야만 맛이 있는 고기는 아니니까. 싱이 박히지 않은 무처럼 단맛이 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쉽게 산 인생도 아니니까.
그래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안됐다고 보기도 했고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여전히 그런 점을 보류한 채로 나는 나의 몫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