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용 표지판에 DTES 명칭 빠져
“도시 미화냐, 현실 은폐냐” 비판 확산
2026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밴쿠버 시내에 설치된 관광 안내 표지판이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시민과 지역 단체들은 시가 방문객들에게 긍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DTES)의 현실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가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새 안내 표지판은 개스타운과 차이나타운, 예일타운 등 주요 관광지의 역사와 문화, 음식, 쇼핑 명소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빈곤과 노숙, 중독 문제로 잘 알려진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는 지역 명칭이 직접 표기되지 않고 ‘해스팅스 크로싱(Hastings Crossing)’이라는 이름 아래 소개됐다.
해당 안내문에는 예술과 음악, 코미디 공연장, 지역 음식점, 문화·역사 명소, 멕시코 바리오 등이 강조돼 있어 일부에서는 “지역의 현실을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년 넘게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를 기록해 온 사진작가 캐서린 아넷은 SNS를 통해 “DTES를 해스팅스 크로싱으로 재포장해 현실을 감추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올림픽 당시에도 그랬듯이 시 당국이 지역의 사회 문제를 숨기려 하고 있다”며 “진정한 세계도시는 어려운 현실까지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실제로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는 빈곤, 노숙, 정신건강 문제, 마약 중독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집중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아넷은 관광객들이 이 같은 현실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표지판 제작 의도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온라인 안내 자료에서는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가 빈곤과 약물 중독 등 복잡한 사회·보건 문제를 안고 있는 동시에 주민 주도의 회복과 지원 노력이 계속되는 지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관광 홍보기관인 데스티네이션 밴쿠버 역시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지만, 최근 관광객들 사이에서 거리 무질서와 공공장소 마약 사용,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스팅스 크로싱 비즈니스 개선협회의 랜던 호이트 대표는 “해스팅스 크로싱은 15년 이상 사용해 온 지역 명칭일 뿐이며,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를 새롭게 포장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경기장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지도에 포함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지역 구호단체 퍼스트 유나이티드의 아만다 버로우즈 대표는 지역 상권과 음식점들을 소개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관광객들이 지역의 현실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노숙 문제와 사회적 약자를 가리는 ‘소셜 워싱’이 우려된다”며 월드컵을 이유로 취약계층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도에 등장한 ‘멕시코 바리오’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지역 내 20여 개 이상의 멕시코계 업소들이 제안한 프로젝트로, 일부에서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역 상인들은 문화적 자부심을 담은 명칭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멕시코 음식점 운영자 아돌포 곤잘레스는 “바리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낸다” 고 말했다. 다만 그는 “관광객들이 실제로 이 지역 깊숙이 들어오면 거리의 거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 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