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망상 십자가의 사랑이 이끄는 길
김준영(밴쿠버 순복음교회, Port Moody Secondary Gr. 11)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저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설교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한 설교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청소년부의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의 한 말씀이 저에게 확 다가왔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마음에 닿는 구절이 생긴다. 그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를 위해 준비해 주신 말씀이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스가랴 7장 10절의 말씀이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것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것 같았습니다.
스가랴 7장 10절의 말씀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약하고 어리석고, 나이도 어린 청소년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여러 곳에서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는 말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명기에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특히 신경 쓰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성경 통독을 할 때에는 그저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그날 이후부터 계속해서 머리 한 켠에 고아와 과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맴돌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맴도는 이 말씀이 주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막막한 기분으로 일상을 살아가며 말씀 통독을 하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 스스로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어리석다 라는 생각을 하던 제 자신이 어쩌면 합리화만을 하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의 찔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쩔 수 없다며 가나안 족속들을 살려주고, 솔로몬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며 하나님이 아닌 말과 병거를 의지하는 장면을 읽으며 나도 이런저런 핑계를 말하며 내가 좋을 대로 살고 있는 것이 그들과 다르지 않으면서 그들을 어리석다고 비난을 한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온실 안의 꽃처럼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큰 사건 사고 없이 살아온 제게 고아와 과부는 책이나 드라마로만 접하는 대상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고아들이 아닌 그저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과부가 어딨냐며,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내 좋을 대로 해석하고 그 말씀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계속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수련회, 원주민 선교, 또 한 번의 수련회 그리고 코스타를 지나는 무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 아버지는 제게 계속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제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주님께로 나아오라고 하셨고, 비전을 향한 간절함으로 기도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스가랴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한참 동안 다시 묵상하였습니다. 금요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앉아 있을 때,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졌을 때, 그때의 나는 영적인 ‘고아’와 같았습니다. 하늘 아버지와 단절된 상태가 곧 영적인 ‘고아’이고 그런 고아를 위해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줌으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도 타인을 향한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1년의 시간을 통해 예수님의 이 사랑을 제가 더 깊게 이해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2025 코스타가 끝나고 저는 잠들기 전에 여느 날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제가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셨습니다. 2년 전, ‘홀리플레임’이라는 교도소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교도소 사역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지만, 그 단체는 여성 가석방자들을 돕고, 그 중에는 미혼모들도 많다는 말씀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미혼모들과 그 아이들을 돕기를 원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마침, 몇 달 전에 교회의 선교회 모집 기간에 왜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해야겠다는 느낌을 받고 ‘홀리플레임 선교회’에 신청했던 것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홀리플레임 사역을 통해 미혼모들을 돕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저를 향한 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저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던 것은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예수님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미혼모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소외되고 부정적으로 판단 받습니다. 제가 미혼모 가석방자들을 돕는 일에 이끌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제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나를 통해 그 사랑이 세상에, 과부와 고아에게도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계획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제가 변명과 합리화 그리고 말씀을 의심했음에도, 그분의 계획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나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리라.’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며, 제가 지금 걷고 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단 한 순간도 저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막막한 길을 걸어가더라도, 십자가에서 저를 끝까지 사랑하신 그분이 함께하실 것임을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