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 제니퍼 노

2025-12-11 17:22:02

가끔은 나의 삶이 유난히 더 무겁고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마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신에게 불평하며 말한다.
“왜 제 짐만 이렇게 크고 무겁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짐은 훨씬 가벼워 보이는데요.” 그러자 신은 그를 짐이 잔뜩 쌓여 있는 곳으로 데려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네가 원하는 짐을 하나 골라 보아라.” 그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가장 작고 가벼워 보이는 짐을 찾았지만, 끝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원래 지고 있던 짐이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남의 인생이 가벼워 보일 뿐 결국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짐 역시, 결국 내가 지고 나아가야 할 삶의 몫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메리 루이즈 린(Mary Louise Linn)의 명언처럼,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시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배우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버겁게만 느껴지는 순간조차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밴쿠버 생활이 16년차에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밴쿠버에서의 삶은 어떤 점이 좋았고, 또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돌이켜보면 그 질문이 요즘처럼 마음 깊숙이 와닿은 적은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쓸쓸함, 그리고 늘 가슴 한편에 자리한 책임감과 미안함이었다.
타국에서 16년 동안 아이를 키워 내고, 더 이상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삶의 여유는 생겼음에도 언제나 텅 빈 듯한 무언가를 찾지 못했던 이유는, 젊다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 속에서 시부모님 두 분과 친정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냈기 때문인 듯하다. 세 분 모두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처음 만났던 시부모님은 막내며느리를 유난히 따뜻하게 품어주셨고, 친정 아버지는 장녀임에도 막내딸처럼 아낌없이 사랑해 주셨다. 세 분의 마음이 지금 더 간절히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엄마는 늘 씩씩하고 당찬, 건강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참 다르다며 자랑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생각이 내 부족함에서 비롯된 오만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이 든다.
지금의 나는, 부모님 곁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한 후회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이 허락한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 인간은 몸이 약해지면 모든 것에 대해 더 겸손하고 조심스러워지는 듯하다.
지난여름, 친정어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바라보던 순간은 내 삶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무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아직 놓을 수 없는 일적인 책임도 있고, 감당해야 할 여러 계획들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더 깊이 연결되어야 하는가를. 삶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멀리서 지켜만 볼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아리지만, 그 아픔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붙잡고 다시 한 번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된다.
어머니의 떨리는 눈가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남은 생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삶의 잔잔한 진실을 읽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멀지 않은 시간에, 비로소 선택의 기준을 성취에서 사랑으로, 의무에서 관계로 옮겨 놓으려 한다.
누구의 짐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부모의 무게, 자식의 무게, 삶의 무게를 모두 인정하면서 나는 다시 걸어가려 한다. 삶이 더디고 고단해 보여도, 그 길 끝에서 다시 만날 얼굴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남은 시간 속에서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다시 한 번 삶을 배우는 길 위에 서 있는 오늘이 후회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