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리 클럽 그리고 태극기

2025-04-24 11:27:05

이민 수기 양영승의 ‘태극기가 나 영승이를 알아보는가?’

두번째 이야기

글 사진 양영승 

사회적으로는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소속된 단체들인 (Cambie Rotary Club)이나, 기독실업인회 (KCBMC), 밴쿠버한인교회 그리고 떠나온 나의 조국에도 귀를 기울이며 강진Rotary Club을 통하여 현재까지도 주어진 사명과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나 하나님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민 생활 15년째 되던 무렵인 1990년 2월 23일경 밴쿠버에도 한인들 숫자들이 많아지면서 재외동포분들도 이 지역 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지인들 및 타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사회봉사를 통해 교제도 하며 문화 교류도 하고자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 52여명이 모여 Sponsored by Arbutus Rotary club의 도움을 받아 R I, DISTRICT 5040 Rotary club of Vancouver Cambie 라는 이름으로 시카코 Evanston IL 본부에 등록되어 있는 클럽이 창설되었다. 그 후 국제적으로 크고 작은 봉사 활동에도 참여하며 북미주 에서는 유일하게 한인들만이 주멤버가 되어있는 클럽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그 당시 해외에서 밴쿠버로 여행 오는 타국 로타리안들이 밴쿠버에 가서 캠비클럽에 참석하면 한국의 정서를 느껴볼 수 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우리 클럽을 방문하며 현지 타 클럽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보람 있는 Cambie Rotary Club 으로 인정받았다. 1999 ~ 2000 년도 제 회장 임기 중에 Whistler 에서 열리는 5040 지구 Conference에 참석하여 타 지역 300 여 명의 로타리안들과 함께 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 다음날 저녁 행사를 진행하는 순서에 International Flag Show 시간에는 각국 나라 국기가 알파벳 순으로 무대로 입장을 하는데 A, B, 순으로 JAPAN 까지 나오고, 다 음에 K 이므로 마땅히 KOREA국기가 들어오며 애국가 반주가 나와야 할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한국 태극기가 안 들어오고 건너뛰어 Mexico ,Spain, Singapore,이 들어오더니 United Kingdom 하고는 끝이 나는 듯 했다. 그러나 잠시후 주최 국인 캐나다 국기가 중앙 J 옆에 우리 K 자리에 캐나다 국기를 꽂아 놓고 모두 기립하여 O,CANADA 를 Bag pipe의 큰소리 반 주에 맞추어 부르는 동안 나의 뺨에서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른편에 있는 어느 현지 로타리안 여자 회우는 날 더러 왜 우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하고 내내 울다가 그날 저녁 Flag 쇼가 끝이 나고 말았다. 우리 클럽 회우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모두 불참석하여 나 홀로 쓸쓸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총회 주최 측에 알아보았더니 태극기가 없어서 그리 되었노라는 정중한 변명을 들었다. 나는 우리 클럽에 돌아와 총회참석 보고 후 태극기를 보내도록 결의하여 곧 바로 실행하여 이날까지 각 대회때 마다 선명한 태극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각 대회에 참석한 회우들과 함께 때로는 우리 클럽과 인연이 있는 현지 회우들과도 함께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마치 서러웠던 그날을 보상 받는 마음으로 위로를 받으며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산행 중의 태극기
태극기에 대한 에피소드 중 North Vancouver에 위치한 Grouse Mountain 에서의 일이 떠오릅니다. 세계 각처에서 찾아온 관광객들과 함께 천국이라 불려지는 밴쿠버에서 명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맛보며 함께 오르고 있다. 처음 등산을 시작할 무렵에는 잠깐씩 떠오르는 옛 노래나 때로는 찬송가를 부르거나 성경 말씀 시편1편이나 23편이나 때로는 주기도문을 외우며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종종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서로 어울리어 산행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젊은 아빠는 5개월된 아기를 등에 지고 큰 아이는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가족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올라가는 젊은 연인들 때로는 한국에서 여행 오시는 분들이나 여기 한인들과도 부담 없이 만나며 함께 산을 오를 때의 경험들이 소중합니다. 가끔 나름대로의 취미로 만든 노래 가사에 곡을 붙여 가며 혼자서 흥얼거리며 산을 올라 다니곤 하였습니다. 때로는 타지에서 특히 낭만의 고장 유럽에서 온 등산객들과 3-4명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울 때면 나의 자작곡인 Grouse Mountain G,G hiking trail course 를 노래 한 “The Peak of heavenly Vancouver” 를 불러주고 나면 그 다음 첫소절 부분은 금방 따라 부르면서 어느 사이에 하이킹 코스 옆 작은 공간에는 미니 콘서트장이 되었다. 서로를 흉내 내며 즐거워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어 다음주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등산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감사하며 다음 산행이 기다려집니다. 미세먼지 보다도 더 탁한 공기가 자욱한 Auto body Shop 에서 일만해 오다가 산행을 시작한지 여러 해가 지나면서 건강도 차츰 좋아지는 것 같아 매주 한번씩 산을 오르게 됩니다.
어느날 Grouse Mountain Guest Service Roof 에 여러 나라 국기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데 태극기가 보이지 않아 사무실에 물어보았더니 담당자가 휴가중이라 하고 때로는 주중에나 오라 하여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아! 이건 아니 다! 나 개인 보다는 내가 속해 있는 캠비 로타리 클럽 사회 봉사부장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허락해 주면 태극기를 기증할 터이니 지붕에 세워줄수 있겠느냐 고 하였더니 흔케히 가져오라고 했다. 1999년 6월25일 경에 태극기를 기증하였으나 5,일 이 지나도 태극기가 안 세워져 있어 섭섭하였었는데 7월1일 은 CANADA Day 휴일이라 아침에 산을 올라 갈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태극기가 곤도라를 타고 내려 오면서 혹시 오늘은 태극기가 세워져 있을까? 하고 국기들이 세워져 있는 지붕을 곤도라 창 너머 로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니 다른 국기들 사이로 유난히 태극기만 펄럭거리며 마치 나를 반기어 주는 듯 했다. 아니 왜? 점점 곤돌라가 아래로 내려 올때도 저 많은 다른나라 국기 들은 모두 축 늘어져 있는데 우리 태극기만 유난히도 양팔을 내저으며 마치 나를 반겨 주고 있는 것처럼 팔락이고 있었다.약 25여년 동안 낯설은 캐나다에와서 이민생활 하면서 나도 다른 사람 들처럼 잘 살아 보겠다고 그 동안 탁한공기 속에서 일만하느라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앞만 보고 가는 그곳에는 과연 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이날까지 달려온 영승이가 ” 태극기” 하나를 다른나라 국기들 사이에 세워두게 했더니 “태극기가 한국 사람인 나 영승이를 알아보는가!? “나 혼자 오로지 내가족만” 생각하고 한국을 멀리하고 떠나온 부족한 것이 많은 이민자인 영승이에게! 우리 대한민국 태극 기가 마치 (나) 여기 세워주어서 고맙다고 환영해주는 것처럼 반가워해 줄 줄이야! 내가 거기 세워둔 태극기 앞에 갈때면 날보라는 듯이 태극기만 나부끼곤 하였 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감격 을 생각 하며 때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느 곳을 가던 여러 나라 국기들과 나란히 서서 나부끼는 “태극기” 앞을 지날 때마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행복한 습관이 또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