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모든 가정에 행복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자녀가 특정 분야에서 강한 인재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각자 어떤 부분에 무게 중심을 싣고 자녀를 응원하고 있는지를 부모는 고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일도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사랑하는 마음이야 계획할 수 없는 본능이겠지만 내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반대로 어느 부분이 약점인지를 파악하는 일 또한 놓치지 않는 것이부모이자어른의 책임인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 가정에 한 명씩 들어올 때 마다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그들가정의 분위기이다.가정마다 지니고 있는 삶의 색깔이 다른 것은 현실이기에 그것을 살피고 다가가는 것은 아이를 안정감 있게 돌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 가정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바라였던 소망들은 공부를 잘 하여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목표가 대부분이었다.
세상에 나와있는 많은 강연들의 주체처럼, ‘사회성 좋은 아이로 키우기,스토리가 강한 아이로 키우기,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우기,입시에 강한 아이로 키우기’ 등처럼 서로 비슷한 키워드의 자녀 바라기는 그리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 내 견해이다.이런 말들에 길들여져 유학을 온 아이들이 갖는 공통된 마음의 소리는 ‘해방감’이다.혼자 되어 외롭고 두렵기도 하지만,머물 곳이 있고,다닐 학교가 있으며언제든 사용 가능한 현금카드가 있는 한 아이들은 ‘열심’이라는 단어에는 관대해지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우리들의 보물인 자녀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유학은후회라는 아픈 선택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내가 본 경험이었다.
나에게는9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다짐이 있다.나와 맺은 인연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함께 하자는 것이다. ‘돕는다’라는 표현은 과한 것이고 나 또한 실수투성이의 인간이기에 함께 나가는 것이 내 신조이다.그래서인지 내 아이들은 자랑스럽게도 중요한 무언가는 성취하고 돌아가는 공통분모가 있다.
실패라고 생각이 든 경험은 단 한번이었다.가정 사정의 이유로 갑자기 떠나게 된 아이는 의도하지 않게 마무리를 못 하고 이별을 했던 때가 있었다.그 외에 아이들은 원하는 공부를 위해 대학을 찾았고,직업을 갖기도 하는 등 도전하며 좌절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괜찮은 아이들로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입시는, 2017년도 대입 전형부터 쉽지 않은 것이 해외고 출신의 한국대학교 입학이다.2019년도 대입 입시의 수시전형에는 유학생 아이들에게 입학의 문이 거의 닫혔다는 확신이 들었던 작년 12월이었다.우리 가정의 세 아이들의 입시 도전은 컨설팅 한 두 달에 결실을 얻기에는 무리수가 있음을 잘 알기에아이들을 만나는 시작부터 계획을 세워 입시를 계획하였다.
세 아이들의 꿈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외교 전문가,항공 정비 전문가,변호사등. 아이들의 희망에는 학업 성취도는 기본이지만 활동에서 그들만의 히스토리를 갖고 있어야 하기에 학교와 외부 활동들을 정하였고 졸업시까지 꾸준히 매진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하였던 학교 활동에는 학생회 임원,디베이트 클럽 창설 및 리더,사이언스 클럽 창설 및 리더,국제 학생 리더쉽 활동,모델유엔 활동 등으로 짧게는 2년,길게는 5년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외부 활동으로는 국제 대회 등에 출전하여 수상을 하기도 하였고,한인회나 캐나다 행사의 자원 봉사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주의원이나 상원의원으로부터 래퍼런스를 받기도 하고,난민을 돕기 위한 행사등에 주최가 되어 선행을 보이는 일들도 서슴없이 하였다.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활동의 바탕은 입시를 위함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일에 대한 준비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다.이 마음이 배제되고는 즐겁고 보람 된 활동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그래서 정해야 할 처음 순서는 내 꿈이 있어야 한다.
독일인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문과 이과의 적성을 구별짓기 시작한다.그래서인지 자아를 일찌기 깨우치며 자존감 또한 높은 성인들로 자라고 있다고 한다.
너무 이른감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오랜 시간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다 보니 참으로 설득력이 있는 풍문이다.자아가 바르게 형성되어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미래 지향적이었고 그 만큼 빠르게 자기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보며,자녀 교육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접했을 때보다 또는 유명한 강사들의 강연을 듣는 것 보다도 효과적이고 시행착오가 적었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수 많은 자녀 키우기의 타이틀보다도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기에 힘들 수 있는 입시 과정도 주인이 되어 자기들의 터전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몇 년의 시간을 함께한 후 2018년12월 중순은,
한국대학교의 수시 전형 결과들이 확정되기 시작하였다.우리 가정의 아이들은 저마다 노력하는 학창 시절을 보내었기에 고려대학교,포항공과 대학교,경희 대학교 등의 합격을 받고 웃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결과가 발표되기 전,초조하고 예민했던 아이들 중에는 진심으로 만족하고 안도하는 아이도 있었고,입시 전후 과정을 되새기며 좀 더 나은 성취를 얻을 수 있었을 과정을 아쉬워하는 아이도 있다.그리고 지금 아이들은 3월이 되어 새롭게 시작할 그들의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낼지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아이들 학습과 활동등을 코디하며 지낸 지난 2-5년간의 시간을 ‘보람’이라는 흐뭇한감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중이다.좋은결과를내게 제일 먼저 전해오며‘감사함’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시간들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인 것이다..
훗날, 이 아이들은 분명히 그들의 꿈인 외교 전문가, 항공 관련 전문가,변호사라는 직업들을 먼 꿈이 아닌현실로 성취할 것이라는 확신은 전혀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 부모님의 곁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겪었을 시련들을 이겨 냈고,자기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지를 깨달았기에 이들은 남을 위해,더 나가 세상을 위해 나누는 각계 각층의 리더가 되어 있을 것이기에 언제나 내 아이들을 나는 응원하는 바이다.
Ps:오랜시간 외국어에 익숙한 학생들의 한국어 자기 소개서 작성은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이번 입시에서 합격을 받은 학생의 꾸밈없는 그만의 스토리를 공유하며 후배들의 입시에 조금이나마 소중한 정보가 되길 바라여 본다.
고려대학교 합격생 자기 소개서 샘플 소개
1.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제 인생에서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과정이었습니다. 졸업식에서 TOP 학생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은 해마다 겪은 시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공이 컸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기 전 Solari 선생님은 영어 과목에서 제 인생 첫 F를 줬습니다. 그 충격으로 저는 영어 실력을 올리기 위해 매일 신문기사를 읽고 기사에 관한 저만의 생각을 글로 써 서 선생님께 검토를 받아 결국 다음 학기에 A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고등 학교 과정에서 저의 영어 실력은 더욱더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뛰어난 영어 실력 과 학업 성취도를 인정해주신 선생님들은 저에게 선행학습을 권유하셨고 10학년 때 화학 12, 생물 12, 영어 11과 같은 제 학년보다 높은 수업들 위주로 들으며 학업적 지평을 넓혀갔습니다. 조기 졸업 대상자가 되었던 11학년은 영어 12 선생님과의 갈등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저의 능력과 가능성을 동시에 증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제출했던 에세이마다 항상 A를 받지 못하게 1~2점이 낮은 점수를 주면서 저에게 유독 모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평가에 좌절하지 않고 결국 주 정부가 실시하는 영어 시험에서 A를 맞으면서 선생님의 칭찬과 함께 결국 클래스 점수에서도 A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 주어진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더 성장하기 위해 개교 이래 최초로 토론, 과학 동아 리를 개설하여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학업적인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겪었던 역경을 넘어 고등학교 과정에서 했던 노력은 조기 졸업이라는 성과로 이어졌고, 또래 보다 1년 더 빨리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더 깊은 학습과 이해를 할 수 있는 대학 생 활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단순히 학업적인 성장을 했던 기억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2.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 (3개 이내)을 통해 배우고 느낀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포츠 관련 활동에만 유독 많은 관심이 쏠리는 학교의 분위기는 저에게 조금은 아쉬웠던 부 분입니다. 8, 9학년부터 학교 골프팀에서 활동해오던 저는 스포츠 외에도 아카데믹 활동에 대 한 갈망이 컸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부 학생들의 학구열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학업 관련 동아 리를 위한 후원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저는 학교에서 최초로 과학 및 토론 클럽을 개설하여 저와 같은 갈망이 있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과학 및 토론 동아리 설립이 공식적으로 허가됐던 순간은 우리 학교가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겠다는 긍정적인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후 학업적인 활동에 관 심이 있고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지원에 학교의 학생 및 선생님 등 모든 관계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학 동아리에서는 주거용 우주선을 설계하였던 NASA 우주 정착 경연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과학 박람회 행사를 주최한 우리 동아리는 딸기에서 DNA를 추출하였고,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 모형을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토론 동아리에서는 스탠퍼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BC 주립대학 같은 캐나다와 미국의 주요 대학 토너먼트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대표하여 연례 하버드 토론대회에 참가해 국제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며 교장 선생님이 직접 학교 신문에 실어주는 이색적인 풍경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변화의 시작점을 만든 저는 학교를 대표하는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학교 역사상 첫 한 국인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매주 학생위원회 모임에 참석하여 헌혈, 음식 기금 모금 및 예술 갈라쇼와 같은 다양한 학교 활동을 조직했습니다.
체육 활동으로 선두를 달리던 우리 학교는 점차 학습적인 탐구와 지역 사회 봉사 등 여러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에만 몰두했던 친구들이 제가 기획한 활동으로 넘어오면서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 했습니다. 제가 학교 첫 한국인 부회장으로 기획했던 가장 의미 있는 봉사활동은 바로 한국전 쟁 참전용사 기념행사였습니다. 저는 현지인 학생들을 모집하여 그곳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아 픈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많은 참전용사의 희생과 용맹함에 감사함을 표하는 뜻깊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 행사를 진행하고 난 후 친구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우리 학교에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마치 한류의 주인공이 가수나 영화배우가 아닌 제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위의 활동을 통해 특정 공동체에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한 사람의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그 한 사람의 책임감과 올바른 변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결국 전체를 움직이는 파급력을 가지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제가 될 수 있어서 보람찬 고등학교 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3. 학교 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듣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 고 느낀점을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토론동아리의 리더로 활동했던 저는 클럽 구성원들과 중요한 철학적 개념 들을 기반으로 토론을 자주 열었고, 저의 도덕적 신념에 가장 중요한 이바지를 했던 이론은 존 롤스의 “원초적 입장” 입니다. “원초적 입장”은 롤스가 1970년대의 사회에서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제시했던 가설적 상황입니다. 그의 가정에 따르면 정치적 의사 결정자들이 특정 세계에 입문할 때 부여될 성별, 인종, 재능, 선호도 및 사회 경제적 지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세 상을 고안함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피하며 정치적 결정의 도덕성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롤스의 신념을 기반으로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3년과 2015년, 학교를 대표하여 다른 학교 학생회장들의 도움과 함께 자선 디베이트 콘서트를 주최했습니다. 300명에 달하는 지역 주민들과 시장님이 관심을 가진 뜻깊은 자리에 서 아프리카 위생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진행하면서 아프리카에 우물을 팔 수 있는 오천 달러라는 금액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오천 달러는 크 지 않은 금액일 수도 있지만,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가난한 대륙의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기반 시설을 마련해주고 싶은 저희의 소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물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직접 가보지 않은 저희와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서 매 순간 가쁜 숨을 쉬며 반나절 동안 물을 얻기 위해 걸어야만 하는 이들의 참담한 현실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자선모금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의무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니세프를 통해 기부하였던 오천 달러는 석 달 후 한 장의 사진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허름한 우물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눔의 힘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뿌듯한 심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4. 해당 모집단위에 지원하게 된 동기와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목표는 고려대학교 국제학부에 입학해 국제관계학, 국제법 등 전공 수업을 공부한 후 국립 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시험을 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는 것입니다. 외교관에게 필요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 뛰어난 영어 실력,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 국제 이슈에 관 한 이해를 위해 유학 초기부터 지금까지 노력해왔습니다. 밴쿠버와 같은 다문화적 도시에서 한국인 커뮤니티를 찾기는 매우 쉽습니다. 그들은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 예능을 보고, 케이팝을듣고, 아주 쉽게 한국 음식을 접합니다. 그들과의 소통 이 줄어들수록 이민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영어를 배울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는 한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영어와 불어를 쓰는 학교로 입학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은 한국인으로 서 자존감을 세울 수 있어야 했던 이유가 되었습니다. 토론 동아리를 설립하여 현지 청중의 편견에도 당당하게 저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토론 동아리는 원어민들 앞에서 클럽 리더이자 한국인 이건형으로 저만의 생각을 공유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핵 군축과 탄소세에 관한 정치적 주제에서 인간 복제와 지구온난화에 관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수천 건의 기사와 논문에 담긴 광범위한 지식에 저 자신을 노출시켰습니다. 캐나다를 대표하여 아일랜드와 슬로베니아에서 열었던 국제 포럼 대회들에 참가하며,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디베이트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의 문화를 예전보다 더 성숙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에서 개최한 모의 법정 대회에 참가하여 3위를 차지하며 법에 대한 실무를 경험하고 법무부의 역할과 법적 절차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MUN 활동은 저 에게 세계 관계의 복잡성과 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세계 질서를 훼손하지 않으며 자신이 대표하는 나라를 위한 최고의 외교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외교관의 주된 역할임을 알려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