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유배지 삶을 중심으로 다각도 해석 담아
고려 문학의 시가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별곡』은 정제된 형식미를 잘 갖추었을 뿐 아니라 문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서정성을 지닌 작품으로 널리 애호되어 왔다.더욱이 『청산별곡』은 순수 국어로서의 구전된 과정을 거치면서도 거의 일인칭 서술체로 일관되게 정착하였으므로 그 작가는 언증의 공동작일 것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한 개인적인 노력의 결정체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청산별곡』은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여타 고려가요들과 함께 오랜 기간 베일에 싸여 있다. 그 궁금증에서 시작한 이승돈 작가가 지난달 ‘정과정(鄭瓜亭)의 『청산별곡』의 고증(考證)’ 상편을 출간했다. 이승돈 작가는 “고전문학의 시대 흐름에서 작가연구는 작품의 실체 파악 뿐만 아니라 인간 체험의 정서적 바탕 위에서 이해하는 척도가 됨을 부인 할 수 없다. 정과정(鄭瓜亭)이란 산 증인의 행적을 예측하여 시도한 나머지 그의 유배지 삶인 역사적 안목에 치중하여 해석하되 되도록 작품의 주변을 폭넓게 주목하고 다각도로 이해를 돕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이승돈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
고려가요 중에서 백미로 일컬어지고 있는 『청산별곡』이 주제의 무분별한 억측과 난해한 시어의 해석으로 인하여 작품의 올바른 이해가 저해되었다고 생각했다.
몇 해 전부터 『청산별곡』이 과정(瓜亭)의 작품 같다고 주위에다 의사타진을 해보았지만 거의 무관심 내지 냉소로 일축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국내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던 경험으로 더 이상 명료한 진실을 외면하는 게 도리가 아니다 싶어, 그렇다면 비록 외국에서지만 내가 구체적으로 증빙해낼 수밖에 없구나 하고 시작했다. 때마침 펜더믹이란 갇힌 공간이 형성되어 뜸을 들이고 웅크려서 이정도로나마 결과물을 내게 되었다.
Q 다소 어려운 주제인데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
과정(瓜亭)과 정서(鄭敍)에 대한 자료는 정말 빈약하기 짝이 없는 편이었다. 그나마 10구체 사뇌가 형식으로 남아, 이재현(李齋賢)이 『고려사』 「악지」에 의역으로 소개한 『정과정곡鄭瓜亭曲』이 유일하게 작가 과정(瓜亭)의 작품으로 알려져 전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고려사절요』 각종 「악부」 「파한집」 「보한집」의 발문 임춘(林椿)의 글 등 여러 역사적 사료와 개인문집을 참조하여, 그의 숨겨진 일화와 존재감을 부각시키기에 이르렀다.
특히 『청산별곡』의 해설 면에서는 기존의 해설들을 대부분 제외시키고 『민족문화백과사전』 및 각종 지방문화의 도서 및 어휘사전을 동원하여, 새로운 사실과 실체의 면모를 구축하기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한시의 무분별한 번역과 인용들을 직면할 때 함께 상의해 볼 벗이 없어 뜬눈으로 더러 냉가슴을 앓았다. 이 중에는 알찬 블로그의 현지인들 지식도 있었음을 밝힌다.
Q 책의 주요내용
가) 『청산별곡』의 작가를 정과정(鄭瓜亭)으로 볼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들을 마련했다고 본다. 과정(瓜亭)을 『청산별곡』의 작가로 보면서 있을 수 있는 가능한 범위와 환경에서 다각도로 해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는 차후 연구 보조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대부분 기록물로 남겼다.
나)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원문 3장을 원문 6장의 위치로 배치하게 했다. 원본의 4장과 5장의 위치를 맞바꾸는 형식미는 기존의 학설이 있으므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전자는 『청산별곡』의 형식이 삽입시가로 된 합성이라는 점을 예상해 볼 수 있게 하는 주요한 배치라고 본다.
다) 각종 난해한 어휘에 대하여 본고 스스로 많은 보완적인 견해를 남겼지만, 지금까지 시도된 적 없었던 뚜렷한 증거자료들은 작품을 새로운 측면에서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믈아래’를 ‘낙하(洛下)’로 ‘잉무든 장그’를 ‘이끼 묻은 지팡이’ ‘홍려장(紅藜杖)’으로, ‘나ᄆᆞ자기 구조개’는 ‘동래 남촌(南村)의 굴조개’로 ‘에정지’를 ‘과정(瓜亭) 정자’ ‘과정잡서’ 및 ‘고정부곡’ ‘고지도(古智島)’로 보거나 ‘사ᄉᆞ미 짐ㅅ대’를 ‘오륙도’ 등으로 상정하게 되었다.
라) 한편 ‘가다’를 ‘갇다(收, 斂)’에서 나온 뜻으로 보고 과정(瓜亭)이 『습기잡서(習氣雜書)』라는 저서로 엮어 놓은 내용 중의 일부가 『청산별곡』의 원본 3장 7장 8장 형식으로 삽입된 가칭 「전리지곡(田里之曲)」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삽입가요의 성격으로 ‘잉무든 장그’를 ‘랑(郞)자가 박힌 지팡이’ ‘위패(位牌)’나 ‘탈춤의 탈(假面)’ 또는 ‘에정지’를 『정읍사』로 ‘사ᄉᆞ미 짐ㅅ대’를 민속극의 ‘산대(山臺)’ ‘채붕(彩棚)’ 및 ‘삼대목(三代目)’ 혹은 『찬기파랑가』에 나오는 ‘설진강수(雪震 强首)’ 등 흥미진진한 분석과 추증들을 담았다.
마) 나아가 부록을 통하여 가칭 「전리지곡(田里之曲)」의 내용이 이른바 『정읍사』의 「줄노래」이거나 「고사축문(告祀祝文)」 또는 『찬기파랑가』를 의역으로 소개해 놓지 않았을까하는 바람을 밝혀놓았다. 이는 기존 『정읍사』의 내용을 뒤집는 결과로 솟대쟁이들의 줄타기놀이가 현존 『정읍사』일 것으로 보는데, 특히 『정읍사』의 가사 외에도 후렴의 내용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게 된다.
만약 『청산별곡』의 합성시가격인 가칭 「전리지곡」이 『찬기파랑가』의 의역시로서 향가 해설에 뒷받침이 된다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밖에 기존 오륙도 각개 섬 명칭을 고지도의 네 이름들로 상기시키고, 『쌍화점』의 ‘회회(回回)아비’에 대한 소견을 부가하여 두었다.
Q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고전문학작품을 보다 가까이 피부로 느껴보았으면 하는 점이다. 고전을 문자적인 의미에 가두어두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누구나 재미있게 이해하고 접근하여 즐길 수 있는 문학적인 것으로 ‘당대의 삶의 모습을 담다’하는 자료로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날 가장 많이 애송되고 접하던 『청산별곡』도 엄연히 실존 작가의 아픈 역사적 현실이 보이듯이, 누구나 고전도 함께 얘기해보면 작품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되는 진수를 맛보게 된다고 일러주고 싶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
당장 예고해 드린 『정과정(鄭瓜亭)의 청산별곡 고증(考證)』 하권 거제 편을 펴내는 일이 남았다. 지금처럼 앞으로 학계의 관심과 반응이 없으면 이 역시 힘든 일이겠지만, 고려의 역사가 거제에서 마감하면서 더 말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다. 고전문학 작품이 ‘역사적 사실의 기반에서’ 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예상치 못한 다른 고려가요를 추가시켜 보겠다.
욕심 같아서는 『청산별곡』을 위시하여 고려시대를 망라하는 「대하드라마」와 같은 고전 작품의 해설을 가해보고 싶지만 여러 부면의 자료들과 인식부족으로 한계를 느낀다. 우리 문학사의 이런 실물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역사 속의 눈물을, 『반도 아리랑』과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닐 영상기록물 하나쯤으로 남겨놓을 뜻있는 분에게 차 한 잔 사드리고 싶다.
Q 밴쿠버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
국외에서 사는 동안 누구나 눈 감으면 달려가고 싶은 곳이 고향산천이지 않겠는가? 외국으로 나오면 해외여행도 많이 할 것 같았지만 실상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 국내 편 대한항공이다. 아마 그리운 부모 동기, 친지, 친구들의 안부만큼 길흉사가 서린 영역이니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비행기 꼬리에 그려진 태극무늬만 보아도 가슴이 짠한데, 한편 지지리도 쌈박질하는 뉴스들만 도배되어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의 진원지도 한국이다.
오늘은 한 토막의 『청산별곡』의 얘깃거리로 청량제가 되어 가볍게 웃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믿음생활의 연합체로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고 국내에서도 많은 안부들이 오간다. 시차적응에 시달리며 마냥 만년(晩年)은 한국을 그리워만 해야 할 것 같은 노구(老軀)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승돈 작가는
영남대 국문과, 세종대 대학원 수료.
서울에서 20여 년간 국어교사로 재직함.
『시조문학』천료, 『 문학사랑』 신인상 수상.
저서: 『 장시조의 연원연구』
시집, 『마음의 바닥짐』, 『 예고된 길 뜻밖의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