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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올때 읽으면 잠 오는 커피 이야기 24

2023-09-20 16:46:47

케냐 커피 이야기

어느 날 회사 SNS계정으로 메시지 하나가 왔다. 확인해 보니 본인이 케냐에 살고 있는데 몇 주 뒤에 밴쿠버를 방문할 예정이고 케냐 생두 샘플을 가지고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요새는 하도 신종 피싱 수법이 많다 보니 이 메시지도 그런게 아닌가 하고 처음엔 무시했다. 그러나 며칠 후 혹시 진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답을 해보았다. 사실 케냐 커피가 정말 수준 높은 커피이기에 실제로 진짜 케냐에서 보낸 메시지라면 잠재적 케냐 생두업체와 만남을 차버리는 것이기에 약간은 찝찝했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주 뒤 만남을 갖기로 하고 만나는 날이 되니 약간 긴장이 되었다. 케냐 사람들은 나보다 체격조건이 좋을 테니 만에 하나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강도를 당하게 되면 어떡하지… 뒷문도 없는데… 같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찰라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첫 인상에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한 중국인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안도감(?), 또 한편으론 어리둥절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중국인인데 8년쯤 전에 온 가족이 케냐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이번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오려고 한다며 케냐에서 쌓았던 경험과 인맥들을 가지고 케냐 생두를 수입하는 것이 사업성이 있는지 확인할 겸 왔다는 것이었다. 한 참을 아이들 이야기, 커피 이야기를 하고 샘플을 받고 헤어졌다. 내 단조로웠던 삶에 최근 들어 굉장히 스릴(?)있었던 경험이었다. 오늘은 그럼 그 케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893년 경, 케냐는 에티오피아를 통해 커피를 도입하였고, 1963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커피산업을 수출전략 상품으로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커피 농장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세기 말부터 영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콜롬비아의 커피 정책을 모델로 커피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재배 기술을 연구하고 유통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 오늘날의 케냐는 고급커피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 스콧농업연구소 (Scott Agricultural Laboratories)를 세우고 품종 개발에 열을 올렸다. 품종을 개발할 때 마다 고유 코드를 부여했는데 SL (스콧연구소의 약자) 뒤에 번호를 붙였다. 예를 들면 SL28, SL29, SL30…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이었던 품종은 SL28과 SL34였다. 두 종 모두 병충해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그 향미가 너무나 훌륭해서 현재도 케냐 커피 하면 이 두 종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현재는 동아프리카 최상급의 커피를 생산한다. 케냐 커피는 짙은 바디감 속에 쓴맛, 신맛, 과일향, 와인향이 난다. 향이 대체로 강하고 독특 하리만큼 쌉쌀한 신맛과 부드러운 신맛의 조화가 뛰어나고 아로마는 캐러멜향과 와인향이 깃들여 있으며, 특히 신맛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는 인기가 대단하다. 케냐의 커피는 단순한 농장에서의 직접 거래는 거의 하지 않고 전국의 생두는 일단 수도인 나이로비로 집결된 후 이곳 CBK (Coffee Board of Kenya)에서 맛과 등급을 구분한 뒤 경매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모든 커피의 품질은 CBK의 주관과 보증 하에 이루어지므로 아프리카 커피 중 가장 품질의 기복이 없는 품질을 자랑한다. 품질 구분은 생두의 크기에 따라 E (Elephant Bean 코끼리 빈), AA, A, AB, C로 분류되고 맛/품질로는 Top, Plus, FAQ (상업용 등급)로 나뉜다.
오늘날 케냐에는 57만개의 작은 커피농장이 있고, 약270개의 협동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 500만명(전체인구의 약20%)이 커피산업에 종사할 정도로 큰 산업에 속한다. 재배방법은 그늘 재배법을 사용하고 농약, 제초제등 화학비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우간다 접경지역 산이 많은 곳의 엘곤산 지역과 나쿠루의 동부 지역, 카시이 서부지역 등에서 주로 재배한다. 케냐의 소비문화는 그리 많이 발달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아직은 자국내 커피소비는 생각보다 적고 거의 수출을 하는 구조다.
아이러니 하게도 케냐 사람들은 아침에 커피 보다는 우유를 넣은 Tea를 (밀크티)를 주로 많이 마신다. 또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커피 보다는 Tea를 더 많이 수출 한다고 한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그동안에는 많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커피 전문 카페도 조금씩 늘어난다고 한다. 아직 생계유지가 우선이다 보니 수출을 위한 커피 생산에만 집중한 탓에 커피를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즐기는 문화는 아직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수입국들은 훌륭한 커피를 즐길 수 있으니, 멀리서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