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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밴쿠버에서 공연한 연극 나르는 원더우먼

2023-10-19 14:41:28

글 전재민 사진 김상희 

인생은 한 편의 연극 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말로 연극은 누군가의 삶이 녹아 들어 가야 진정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한편의 연극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배우만 있어서도 안되고 백 스테이지의 스텝만 있어서도 안된다. 연극단을 운영하려면 자금도 필요하다. 물론 연습 때와 공연 때 모두 자금이 필수적이다. 영화는 한번 필름으로 만들면 계속 상영만 하면 되지만 연극은 막을 올릴 때마다 사람의 연기와 스텝들의 노력이 있어야 막을 올릴 수 있다. 사실 연극은 노력한 만큼 돈이 안되는 일 중에 하나이다. 물론 대다수의 영화인 연극인, 그리고 예술인 들이 사실은 돈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 문인도 그 대열에 포함된다.

아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돈도 안되는 거 불 들고 있다고 돈이 나와 밥이 나와 하면서 핀잔을 계속 준다. 그래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접지 못하는 것은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표현하고 삶을 표현하고 그곳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꿈을 꾼다.

이 연극은 극작가 이선경의 작품으로 2017년 거제에서 초연을 한 작품으로 대전,당진등 전국에서 리바이벌 된 작품으로 멀리 캐나다에서도 캐나다한인대표극단인 하누리 극단에 의해 밴쿠버에 소개되었다. 밴쿠버에서 연출은 윤 명주 감독이 연출했는데  그는 어쩌면 잊혀 진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자 만들어 졌다고 말한다.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상경하던 시절 부산에서 식모를 하다가 버스 회사 차장으로 일하게 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은 그 시절의 감성과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서 관객에게 감동과 재미를 한꺼번에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밴쿠버에서는 출연 배우가 젊어서 그런지 관객도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밴쿠버 하누리 극단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욱 발전하고 캐나다 아니 북미주를 대표하는 극단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들 직장생활등으로 빠쁜 시간을 쪼개서 연습하는 일반인으로 전문 연기인이 아님에도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저렇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나와 비슷하거나 누나 뻘의 안내양들이 그 시대를 살면서 겪었을 애환을 연극으로 잘 녹여 내고 있다. 극의 초반 부에 주인공이 차장으로 취직하기 전에 식모살이 하던 모습이 잠깐 나왔는데 나의 누이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40년도 더 지난 누이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됐다. 누이도 식모로 서울에 올라 가서 주인집 아들이 그렇게 못살게 굴고 주인아저씨도 성추행을 너무 심하게 해서 다시 시골로 내려 왔다.사람은 누구나 막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당시 식모는 그냥 막 해도 되는 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 식모 뿐이겠는가 방직 공장에 취직해서 일하던 동네 누나 친구들과 동생들은 저녁에는 야학을 하면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돈을 시골로 부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 졌다.

내가 청주직업훈련원에서 졸업생들에게서 원고를 받아 보면 조선소나 포항제철 등에서 산업 재해가 나서 한쪽 다리를 못 쓴다든가 허리를 다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안전하다는 생산 기술부의 금형 반에 취직을 했지만 금형을 만들어서 금형 시 운전을 하기 위해 라인으로 가면 프레스 라인에 대부분의 직원이 손가락을 한 개에서 다섯 개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손가락이 없으니 다른 곳에 취업도 힘들고 그저 일거리를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면서 프레스의 안전장치를 풀어 놓고 작업량을 채우려고 늦게까지 잔업을 하던 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선진 조국이다. 말하기 좋아 산업 역꾼이라고 부르지 사실 지금도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이 아닌 간접 고용과 파견 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빵 공장에서 믹서에 빨려 들어가서 목숨을 잃은 현장에서도 빵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차장이 반장들에게 금액이 안 맞는다고 혼나고 홀딱 벗겨서 센터 당하고 억울해서 피켓을 들면 공산당으로 몰아서 처벌하던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다. 역사의 강은 말없이 흘렀지만 그 강물은 피와 땀으로 얼룩졌었다. 하루에 17시간 씩 일하던 버스 안내양의 처지는 이민 사회에서 워킹 비자나 영주권에 목매어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 17시간씩 주방 일을 하다가 파킨슨병을 얻은 지인의 사례에서 보듯 노동 현장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할 말을 하고 요구하면 빨갱이로 몰아 가는 정부가 다시 나타나고 모든 언론이 정부에 아부하는 세상이 촛불 혁명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타났다.

기숙사 유리창에 교도소처럼 창살을 만들어 교도소처럼 만들고 불이 나서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도 사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많은 쪽방 촌의 쪽방과 독서실 등의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의 삶이 휴대폰이 나오고 스마트폰을 쓰고 대형 스크린 텔레비젼을 보고 명품을 못써도 짝퉁은 쓰는 시대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 차장이 창살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 가듯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살아 가고 있다.

죽은 버스 차장 동료들이 살아서 청소 일을 하던 동료를 찾아와서 참지 말고 말하라고 하고 원더우먼의 옷을 입혀주며 원더우먼처럼 버스 기사가 되는 꿈을 실현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왜 연극의 제목이 나르는 원더우먼인지 알게 됐다. 물론 연극 사이사이에 차장의 순수한 사랑과 사장의 성폭행을 의심케 하는 대목도 나오고 그럼에도 노래로써 중간 중간 신나는 무대를 만들 것은 아주 칭찬하고 싶은 연출이었다. 사실 연극보다 뮤지컬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노랫가락이 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60여 년을 살아 오면서 느끼는 것은 때론 정의로움이라고 외쳤던 순간들이 사실은 나에게 옹이 같은 아픈 순간이었던 것 같다.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파업이라는 것을 해봤지만 손님들은 호텔에서도 파업을 하냐 하는 식으로 바라봤다. 호텔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이 아니다. 고객의 만족을 위해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여 모든 고객의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월급은 작고 고객의 봉사료로 월급을 대신하는 회사의 행태는 묵과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로 인해 노동조합 일을 하던 직원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버스 안내양, 방직 공장 직원, 도자기 공장 직원, 전자 회사 직원 모두 한때는 산업의 역군이었지만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지고 누구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오래전엔 간호 장교는 영관 장교나 장군들의 밥이다 라는 말도 있었다. 진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추행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한다고 달라지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 졌다 고는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고 퇴직하고 경비로 취직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지 않는 것은 판검사를 해야 힘이 생기는 사회 구조적 문제와 어느 누가 정치를 해도 자꾸만 뒤로만 가는 것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 되기 때문은 아닐까?

연극 속의 원더우먼처럼 그 시대의 그 안내양들을 만나보고 싶다. 물론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직도 생활고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삶의 희망은 함께 할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사는 우리도 소중한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30년을 한결같이 연극을 공연한 밴쿠버의 유일한 하누리 극단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많은 젊은 배우들의 열정이 넘치는 연극 역할로 인해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면 이 연극을 막에 올린 소기의 목적을 달성 했다고 생각된다. 사실 문학은 글자를 읽고 독자가 상상을 통해 자기만의 감각으로 감동과 환희를 이끌어 내는 반면 연극은 현장 성, 동시 성, 소품과 관객의 호응 등이 모두 제 역할을 다해야 연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욕심을 부리자면 좀 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연극 무대였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상상 속에선 중고등학교 때 버스 4대 5대를 보내고 나서야 탈 수 있었던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서 버스 안내양과 내가 마주 서는 얄궂은 상황 그리고 지그재그로 운전을 해서 버스를 출렁이게 만들다가 급정거로 골고루 뒤로 들어 가게 만들던 버스 기사의 순발력이 있던 검정 교복에 검정 교모를 쓴 까까머리 나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빨간 가방을 들고 분 내를 풍기던 여학생의 하얀 카라가 속살처럼 눈부시던 그 시절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양 갈래로 땄거나 단발을 한 여학생들과 어쩔 수 없이 꼭 끼어서 살과 살이 맞닿던 그 시절 젊은 피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추행이라는 말도 모르던 시절 순순하던 그 여학생들은 할머니가 되어 아직도 팔팔하다면서 경주로 여행을 가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우리는 잊혀 진 시간을 그리워하지만 돌아 가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리워 지는 젊은 날의 우리들의 초상이 나르는 원더우먼처럼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박제하는 것이 화가의 그림이고 사진이라면 흘러간 시간을 재현하고 미래에 다가 올 날들을 상상하는 것이 소설과 영화 연극이 아닐까 한다.시간이 흐르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시계라는 것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약속을 만들었듯이 삶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과 행복을 나누는 일은 예술가들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고 진리를 알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