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송년회

2024-11-20 13:31:34

이원배 (늘푸른 장년회 회장)

11월 26일 화요일 실업인 협회 송년회를 시작으로 밴쿠버 한인사회의 각종 송년회가 시작된다. 청룡의 해 갑진년은 서서히 을사년 뱀의 해에 자리를 물려줄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연말에 송년회 따라다니느라 병이 날 정도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동창회, 직장 입사 동기 송년회, 직장 부처별 송년회, 출생지 동향 송년회, 취미클럽 송년회, 교회 송년회…

물론 오라는 곳마다 모두 참석할 수 없다. 어떤 때는 겹치기도 하고, 더 중요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싫은 사람 있으면 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꼭 필요한 곳만 선택해서 참석하는 요령을 길렀다. 처음 밴쿠버 와서는 송년회가 없으니 좀 심심했다. 물론 그때도 이런저런 송년회들이 있었지만 인연을 만들기 전이니 무턱대고 참석할 수 없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니 제법 갈 곳이 많아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주관하는 단체의 송년회는 피할 수 없다. 늘푸른 장년회의 경우 회원 수가 늘어나니 참석 여부 확인하고, 프로그램 짜고, 주요 인사 초청하고, 전단지 돌리고, 신문에 보도하고, 이런 일들이 시간이 소요되고 힘들지만 문득 이런 생각에 멈출 수 없다. ‘앞으로 몇 번이나 송년회’를 주관할 수 있을까?’

해가 바뀌면 젊은이들은 희망을 설계하는 데 바쁘지만, 세월의 짐인 연장자들은 살 날이 얼마 남았나 하는 생각에 슬프다. ‘누구나 가는 길인데…, 젊은이들도 가는데…, 사고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복이니 너무 안타깝지 말자.’ 마음먹어도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주변에서 고령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보면 마음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래서 생각한다. ‘있을 때 잘해’라는 옛 유행어가 말하듯 나이 들수록 이웃과 좀 더 정을 나누고, 서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밴쿠버의 어떤 고령자분이 “***가 제발 나보다 먼저 죽으라고 기도하는 데, 그놈 죽으면 무덤에 가서 대소변 질러놓겠다.’고 해서 한참 웃은 적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하직할 때 뒤따라오는 세대들이 먼저 가는 이들의 인품과 인격을 생각하며 애석해할 수 있다면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해서 좋은 추억만 남기기 위해 장년회는 ‘우리들만의 송년회’를 한다. 밴쿠버 70년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교민사회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 주는 ‘한인연합회 송년회’가 12월 7일 토요일에 개최된다는데 장년회가 참여하지 못한 것은 연장자들이 참여하기 힘든 저녁시간이고, 장소가 회원들의 거주 지역과는 좀 떨어진 곳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끼리끼리’가 편해서 그런 듯하다. 마치 대학 총 동창회가 있고, 과별 동기 동창회가 있는데, 그래도 서로 대화가 통하고 연배가 맞는 동기동창회 참석이 더 재미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다양한 교민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남녀노소 모두 연합 송년회에 참석하기를 권장한다. 장년회도 ‘우리들의 송년회’와는 별도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자. 본론으로 돌아가자.

사실은 늘푸른 장년회를 후원하고, 참여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인연이 10년을 넘어섰으니 이제는 애틋한 정을 나눌 수 있고, 또 한 해 갈 때마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추억하며 남은 날들을 건강하고 활력 있게 보내자고 다짐하는 것이 ‘우리들의 송년회’이다. 늘푸른 장년대학에서 배운 노래, 춤, 악기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우리들의 재롱잔치’, 소소하지만 참석자 한 사람도 빈손으로 가지 않게 배려하는 경품 추첨, 경로효친 사상을 적극 실천하는 초청손님들의 특별 선물, 그리고 초청공연팀의 연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지는 우리들의 송년회는 요란스럽지 않지만 소중한 삶의 순간을 함께 하는 즐거움에 의미를 둔다.

송년회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배우자를 제외하고 인생길 동반자로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뜻밖의 축복이다. 수십 년을 곁에 있어도 여전히 불편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단 한 번 보아도 뱃속 다 들어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우리들의 송년회’를 통해 함께 식사하고, 담화하고, 게임을 즐기면 대충 알게 된다. 오래갈지, 다시는 상종 못 할 사람인지.

‘서로 존중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부지런히 봉사하라’는 장년회의 이념에 따라 금년 한 해 모두들 열심히 살아온 장년인(長年人)들. 11월 29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우리들의 송년회’에서 한 해를 결산하고 다음 해의 힘찬 걸음 디딜 수 있는 기운을 마음껏 받으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