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오석중
매해 있는 날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고 연말이 지나가면 새해가 온다. 나이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몇 번 아니기도 한 이 시간이 노인들에게는 평생 겪어온 시간이기도 해서 각자가 가지는 감흥은 다 다르다.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밤 시간이 길어지고 낮 시간이 짧아진다. 서머타임 해제를 지나면 해지는 시각이 일러져 갑자기 겨울이 닥친 느낌이지만 여기 캐나다는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서 일조량이 적고 쌀쌀한 날씨처럼 모든 일과가 위축 되게 마련이다. 광역 밴쿠버는 겨울이 우기인지라 비가 오지 않더라도 흐린 날이 많아 아침 일곱 시가 넘어도 창밖은 어두컴컴하다. 해에서 에너지를 받아 생명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생명체는 잠을 잔다거나 결실을 맺는다는 방식으로 이 계절을 보낸다.
새해가 되면 한 살씩 나이를 더 먹는다. 19살이 20살이 된다던지 59살이 환갑이 된다던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연말을 보내기도 한다. 스무 살이라든지 불혹, 칠순이나 팔순 등 특별한 날을 맞는 것은 개인이지만 사실 그 나이는 매해 있다. 세월이 지나도 특별한 나이를 보내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기차를 타듯 인생의 역을 하나하나 지나면서 늙어가고 거기에는 항상 중장년이, 노인이 있고 스무 살의 젊음이 있다. 나도 그 어느 그룹에 속해 있다가 다른 그룹으로 나이를 먹고 슬쩍 옮겨간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런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고 느끼지만 나는 변하고 달라진다. 그런데도 나는 변하지 않는데 나의 환경이 변하고 배경이 변한다고 생각하며 산다. 마치 나의 시각에 따라 나의 희망에 따라 변하고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는 눈에 따라 마음대로 다르게 본다. 동반해서 모든 것이 같이 달라지기 때문인지 같이 달리고 있기 때문인지 냉정하게 바라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도 없는 것 같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나도 매일 새로 맞는 오늘을 항상 어제 같이 생각하고 어제 바라보기를 오늘 같이 하면서 생각 없이 산다. 하긴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느끼면서 사는 일은 어제 본 거울에서의 나와 오늘 거울에서 본 나와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힘든 일이니까 그날을 그날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하며 살아야하는 젊은 날은 목표를 이유처럼 살고 그보다 어린 학창시절에는 단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목표처럼 정해놓고 산다. 무엇을 해도 느려터지기만 한 지금 늙은 시절의 나는 관습이나 습관처럼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지나가는 행인을 보듯 어디에도 특별함도 새로움도 감동도 없어 보인다. 오직 남의 도움 없이 자립하는 생활에 매달려있어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피지 못하는가보다. 모든 면에서 뚜렷하게 낫다고 할 수 없던 지난날도, 지나갔기에 마냥 그리워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젊다고, 힘이 조금 더 있다고, 생기가 더 있다고 삶이 조금 더 남았다고 의미가 생기고, 저절로 가치가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돌아갈 수 없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갔고 내 일생의 대략적인 계산서를 받고 펼쳐보니 삶의 어느 순간도 뚜렷하게 특별하지 않지만 모든 순간이 다 특별했었다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목표가 없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목적이 없는 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 나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살까? 평생 없었던 적이 없던 그 목적 말이다. 은퇴는 나에게 목표가 완성되고 더 이상 목표를 갖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 시점이라면 목표를 완성했다고 해도 아직 목적을 이루거나 알아내지는 못했다. 연말과 같은 나의 인생의 시간도 또 지금 연말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간도 이전에 있었던 어느 시간만큼 소중하고 중요하다. 나의 인생의 목적이 꼭 목적을 선명하게 찾거나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나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멈추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무슨 일에도 나의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추리나 징글벨이 울리는 연말연시는 동지를 지나고 봄으로 가는 희망이 가득한 계절이다. 고마운 사람을 만나고 고마움을 선물하고 또 누군가의 사랑을 선물 받고 지나가는 해의 회고와 성찰, 다가오는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평범하게 아주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보내기로 한다.
이 순간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이 자신의 집이든 병원이든 모두는 새해를 맞이할 차비를 차리고 지나가고 있는 한해를 기념하고 있다. 이런 삶은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삶이 아니라 매우 각별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가 지면 우리 동네에도 이웃 동네도 크리스마스 불빛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집을 만난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산타크로스가 굴뚝으로 오기 전부터 이렇게 찾아오고 전해지고 또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