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밴쿠버교육신문&주밴쿠버총영사관 청소년 글짓기대회 / 우수상 B 그룹 정민경 10학년 (Port moody secondary)

2025-10-22 15:44:20

우수상 B 그룹 정민경 10학년 (Port moody secondary)
80억명의 가족

제 짧은 인생 속에서 저는 꽤 많은 가족을 거쳐왔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저의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였습니다. 흐릿한 기억 속 두 분이 절 보고 동영상을 찍으며 활짝 웃던 장면이 16년 동안, 아니 평생 잊히지 않겠지요. 매번 아쉬운 것은 두 분이 같이 있던 기억이 그 장면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모르는 저의 어린 시절, 두 분이 같이 걷던 길을 뒤로하고 다른 방향을 향했을 때 저는 다른 가족을 만났습니다. 제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의 어머니는 기꺼이 저를 그녀의 세상에 반겨주었습니다. 그녀의 세상에서 저는 전부를 차지했고, 그녀의 사랑을 양분 삼아 자랐습니다. 그녀가 만드는 개떡이 가끔 그립습니다. 저는 늘 왜 이것이 개떡이냐 물었고, 그녀는 늘 개떡같이 생겼기 때문이라 답했고, 전 그 대화를 사랑합니다. 그녀는 제가 어머니,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바람대로, 전 그녀와 함께 있었던 제 모든 어린 시절을 사랑합니다. 다만, 딱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6살 때 유치원에서 소원을 적어 낼 때, 장난삼아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싶다’라고 적은 작은 메모지가 그녀에게 닿지 않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저는 아직도 모성애라든지 내리사랑이라든지 하는 단어들을 믿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커 가늠할 수 없기에, 그것이 단순히 어떤 한 사람의 딸이라는 이유라는 것을, 그 딸의 딸이라는 이유라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전 8살 여름,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어머니의 친구, 그리고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그는 내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는 나의 아저씨가, 친구가, 멘토가, 또 아버지가 되어주었습니다. 또, 언니가 되어 주기도 했네요. 여성호르몬을 가득 풍기며 “어머나~ 기지배”라고 여자 흉내를 내는 그는 제 헤어스타일과 옷을 가장 잘 골라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30번도 넘게 그의 차를 탔을 때, 10번이 넘는 여행을 다녀왔을 때, 또 20번이 넘게 그와 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을 때, 전 그에게 아빠라는 부름으로 보답했습니다. 할머니의 등 떠밂으로 어렵게 내뱉은 제 한 마디에 아빠의 표정은 참 오묘했습니다. 아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인 가봅니다. 그는 나의 아빠가 되어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습니다. 나라는 나무의 뿌리가 되어 가지가 어디로 뻗어 나가든 흔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깊은 땅속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피도 안 섞인 나에게 왜 이런 사랑을 주는 건지 저는 아직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작년 여름, 전 그에게 언제부터 날 사랑했는지 물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을 보았지만 그는 아니기에, 그렇다면 처음 본 순간부터 날 사랑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이상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고, 똑똑하고, 웃겼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제 보니 그는 제 질문에 답을 하지는 않았군요.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저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는데 말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건 아니고, 그저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좋았습니다.
제가 가족으로 맞았던 사람은 비단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뿐은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없었던 제게 그 역할을 대신해 준 사람은 삼촌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자 어머니의 동생인 삼촌은 제 어머니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집에 들어와서는 저를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제육볶음, 김치찌개, 소시지 볶음, 샌드위치… 초등학교 4학년 소풍 날, 그가 싸준 형형색색의 예쁜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삼촌은 절 사육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날씬에서 통통으로, 또 뚱뚱으로 가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되겠네요…. 조만간 살을 빼고 한국으로 돌아가 열심히 놀릴 생각입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삼촌에게, 그동안 부끄러워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언젠가는 해야겠습니다.
2년 전, 이들에게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전 큰 죄책감과 부담감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들의 장녀이자, 아기이자, 보물인 저는 일찍 그들의 곁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해야만 했습니다.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가 너무 걱정돼 안부를 묻는 전화엔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는 말을 늘 전합니다.
웃긴 사실은, 어머니 다음으로 가장 많이 전화가 오는 곳은 다름 아닌 친아버지와 그의 새로운 아내입니다. 곧 2살이 되는 딸과, 뱃속에 아들을 품고 있는 그녀는 절 큰딸이라고 부릅니다. 한 번도 어머니라고 생각해 본 적도 사랑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그녀는 날 큰 딸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도 그녀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생각은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언젠가 이 분께도 해야겠습니다. 외롭던 제 아버지에게 16년 전과 같은 기쁨을 선물해 주신 분이니 말입니다.
제 가족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유학을 하기로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의 친구입니다. 20년 넘게 캐나다에 살고 계신 제 가디언 삼촌은 정말, 정말, 정말 말이 많습니다. 2시간 넘게 캐나다 정치에 대해 강연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딸뿐입니다. 귀에서 피가 나고 있는 저를 구원해 줄 유일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가족들은 처음 본 저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절 초대할 때면 그들은 늘 바쁘게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들의 집에 다녀오면 늘 2킬로그램 정도가 쪄 있지만 너무 맛있어서 거절하긴 힘듭니다.
가장 최근에 만난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홈스테이 이모와 삼촌, 그리고 한 살 많은 언니입니다. 언니는 16년 동안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자란 제게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때로 싫어하는 사람을 대신 욕해주기도 하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모는 늘 제게 무엇을 먹고 싶냐 묻습니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제게 이모는 딱 한 입만 먹으라며 사정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아침밥을 안 먹고 학교를 가겠다는 제게 현관까지 쫓아와 멸치볶음을 넣고 싼 김밥을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가 생각나 피식 웃습니다. 태평양 건너에 사는 사람에게 제 할머니가 보이다니, 가족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저에겐 80억 명의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 속,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이 모든 감정을 나누는 모든 생명체와 가족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가족이 없을 수도 또 어쩌면 이 모든 이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어서, 그중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디까지가 가족 일지 애매한 경계선, 그 선을 지워버리고 모든 것들을 가족으로 맞이하니 별거 아닌 것에도 짜증이 나고 또다시 사랑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버리고 싶다가도 다시 데려오고 싶은, 그래서 더 애틋한 존재가 가족입니다. 낯설고 또 익숙하고, 밉고 또 사랑하고, 질리고 또 보고 싶은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