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밴쿠버교육신문&주밴쿠버총영사관 청소년 글짓기대회 / 최우수상 이제현

2025-09-24 13:27:07

최우수상 이제현 BROOKSWOOD SECONDARY SCHOOL (Gr.12)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

나는
연필을 아낀 적이 없다.
심이 부러지면
깎고 또 깎아, 마음껏 썼다.

종이도 그랬다.
구기고, 찢고, 버려도
언제나 새하얀 얼굴로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몰랐다.
부모라는 이름의 연필과 종이가
얼마나 묵묵히 닳아가고 있었는지를.

엄마의 손등은
오래 쓴 노트처럼
주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고,

아빠의 어깨는
이 제현
낡은 책등처럼
말없이 나의 무게를 견뎠다.

나는 그 위에
철없는 문장들을 써내려갔다.
“엄마, 아빤 몰라도 돼.”
“귀찮아.”
“몰라, 됐어.”

흘러쓴 말들이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씩 마모시켰다.
시간은 지우개처럼
모서리를 조용히 갈아냈고,
어느 날 문득 돌아봤을 때—

내 곁의 연필은
손가락조차 잡을 수 없을 만큼
짧아져 있었고,

종이는
구겨진 채
숨죽이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들의 몸이
잉크처럼 스며들어

내 하루를 채워왔다는 걸.

이제 나는,
연필이 다 닳기 전에
종이가 색 바래기 전에
부드러운 문장으로 그들을 감싸 안겠다.

낡고 닳은 여백 위에
다시 써 내려 가는
다섯 글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