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너무 멋지세요 / 최금란

2025-12-18 10:50:25

웨스트밴쿠버 산등성이에 살지만 해안길을 자주 걷는다. 주말만 피하면 한적하다. 바다는 늘 푸르고 투명하다. 늦가을이면 철새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힘을 비축한 뒤 다시 남쪽으로 날아간다. 같은 시기,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늦은 계절에 보라색 들국화가 해안길을 따라 애잔하게 피어난다. 꽃을 보면 문득 코끝이 찡하다.
오늘은 해안길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을 만났다. 거의 1년 만이다. 연한 노란색 레인코트를 입었고, 신발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화장은 진하지 않은데 얼굴에서 빛이 난다. 전에 만났을 때는 수심이 가득했다. 남편이 병환으로 고생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두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어머나! 너무 멋지세요.
어디를 꼭 집어 멋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참 멋있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아래래, 이곳에 산 지는 내가 더 오래되었다. 답례로 오늘은 너무 반가웠다. 우리 손을 잡고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다. 차림새가 멋있다고 말하자 나지막이 “고마워요”라고 미소 지었다. 남편이 건강을 회복했는지, 혹은 어려운 일을 당했는지 그도 언급하지 않았고 나 또한 묻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그런 질문을 사생활 침해에 가깝다. 캐나다 사회에서는 상대의 나이나 직업을 묻는 것을 금기시한다.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에 무척 인색하다는 것이다. 꼭 크고 대단한 일에만 칭찬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상대의 헤어스타일이 멋지다고, 새 옷이 잘 어울린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찾아보면 칭찬할 일이 많다.
미국의 켄 브랜차드 박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그는 샌디에고 씨월드에서 범고래 조련사들이 칭찬으로 고래를 길들이는 모습을 관찰했다. killer whale이라 불리는 맹수를 훈련시키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칭찬이었다. 고래가 묘기를 성공하면 어김없이 칭찬하고, 고래는 춤을 추며 좋아한다. 칭찬은 신뢰를 쌓고, 그보다는 묘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상대가 착용한 스카프 하나, 병원에 잠깐 들어왔는데도 관심을 갖고 칭찬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훈훈해진다. “어머나! 너무 멋지세요.”라고 칭찬해서 싫어할 사람은 없다. 상대에게 즐거움 뿐 아니라 자신감과 동기를 준다. 영국 속담에 “바보라도 칭찬해 주면 쓸모가 생긴다”고 했다.
최근 전설적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전기를 보았다. 외 아들 숀(Sean)이 남들이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해 쓴 진솔한 기록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구호활동이다. 그녀는 1988년 유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수단 등을 다니며 세계에 이들의 참혹한 상황을 알렸다.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일은 계속되었다. 오드리 헵번은 뛰어난 미모 못지않게 마음의 아름다움도 배웟다. 이런 사람에게 “어머나! 너무 멋지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연방의 인종차별 때문에 27년간 로벤섬 감옥에서 청춘을 보냈다. 후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청춘을 구겨버린 백인 정치인들에게 복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젤라는 정적들을 포용하여 함께 남아연방을 위해 일하게 했고 일체의 복수를 하지 않았다.
한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대범한 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람에게 “어머나! 너무 멋지세요”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현재 47대까지 대통령을 냈다. 그 많은 인물들 중에 국민들은 누구를 가장 존경할까? 이 질문의 대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제16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압도적 1위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링컨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식을 줄 모른다. 그의 업적 중 노예 해방, 남북전쟁의 승리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치적은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반대당에도 일방적이거나 독단적인 정치를 하지 않았다. 상생의 정치를 지향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정직하고 신실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인간적으로 무척이나 고독했다. 그리고 국내외로 큰 문제들이 밀려왔다. 그는 백안관에 골방을 만들어 놀고 늘 하나님께 기도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에 가면 큰 바위 얼굴이 있다. 러시모어 산에 4명의 대통령이 산 정상에 조각되어 있다. 가장 왼쪽에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는 링컨 대통령의 조각이 있다. 그 위용과 규모가 엄청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 당하게 한다. 1927년부터 1941년까지 무려 15년이 소요된 대공사였다. 이 곳은 대평원 지대라 별로 유명한 관광지가 없지만 큰 바위 얼굴을 보기 위해 매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그는 탁월한 정치인이지만 인품이나 인간성은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런 위인에게 “어머나 너무 멋지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참 멋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사람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산다. 외모의 아름다움보다 인류를 위한 휴머니즘이 더 깊은 감동을 준다.
해안길에서 만난 그녀처럼, 어두웠던 얼굴이 빛을 되찾은 사람들.
그 작은 변화 속에도 우리가 칭찬해야 할 멋진 이야기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