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중독 설계” 주장
소셜미디어 책임 범위 가늠할 시험대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메타(Meta), 틱톡(TikTok), 유튜브(YouTube)가 청소년에게 의도적으로 중독을 유발하고 정신적 피해를 초래했다는 혐의로 미국 법정에 서게 됐다. 이번 재판은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법적 책임 범위를 처음으로 배심원단이 판단하는 사례로, 향후 글로벌 플랫폼 운영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이정표적 재판’으로 평가된다.
LA 카운티 고등법원은 26일부터 배심원 선발 절차에 돌입했으며, 본격적인 재판은 향후 6~8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매일 약 75명의 예비 배심원이 심문을 받게 되며, 이는 메타·틱톡·유튜브가 배심원 앞에서 직접 소송을 다투는 첫 사례다. 당초 함께 피소됐던 스냅챗 모회사 스냅(Snap Inc.)은 지난주 비공개 합의로 소송에서 빠졌다.
“슬롯머신처럼 설계된 플랫폼”
이번 소송의 중심에는 가명 ‘KGM’으로 알려진 19세 여성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소셜미디어에 노출되며 심각한 중독 증상을 겪었고, 그 결과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악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 측은 메타의 인스타그램, 바이트댄스의 틱톡, 구글의 유튜브가 청소년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독성을 강화한 설계를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소장에는 “플랫폼들이 슬롯머신이나 담배 산업에서 활용되는 행동심리학과 신경과학 기법을 차용해 이용자 참여를 조작하고 광고 수익을 극대화했다”고 명시돼 있다.
기술정책 전문가인 클레이 칼버트 교수는 “이번 재판은 향후 수천 건의 유사 소송에 기준점이 될 것”이라며 “플랫폼 설계 자체가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1998년 미국 담배 회사들이 건강 피해 책임을 인정하고 수천억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했던 이른바 ‘담배 소송’에 비유하고 있다. 이번 재판에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배심원단이 원고 측 손을 들어줄 경우,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콘텐츠 책임뿐 아니라 플랫폼 설계 방식 자체에 대해 대대적인 규제와 손해배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 “정신 건강 원인 단순화” 반박
이에 대해 메타는 최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를 소셜미디어 하나로 환원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라고 반박했다. 메타는 “정신 건강은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며, 사회·가정·교육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며 “단일 요인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과학적 연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틱톡과 유튜브 역시 자사 플랫폼이 청소년 보호를 위한 기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으며, 유해 콘텐츠를 차단하고 이용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미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다수의 소셜미디어 관련 소송 가운데 첫 번째 본안 재판이다. 오는 6월에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학교들이 메타와 틱톡을 상대로 제기한 연방 소송이 예정돼 있으며, 이는 교육 현장에서의 학습 방해와 정신 건강 피해를 다루는 첫 집단 소송이다.
현재 미국 40개 이상 주(州)의 검찰도 메타를 상대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청소년을 중독시키도록 설계됐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틱톡 역시 여러 주 정부로부터 유사한 법적 대응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소셜미디어 산업이 담배·주류 산업처럼 ‘공중보건 책임 산업’으로 재분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는 향후 알고리즘 설계, 광고 방식, 청소년 접근 정책 전반에 대대적인 규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