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곳은 대우증권 교육장이었다. 그 무렵 나는 군에 입대해 하사관학교 교장 부속실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 역시 논산훈련소를 거쳐 우리 부대로 배속되었고, 나는 그를 정훈장교 자리로 보내는데 작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서한샘. 키는 작았지만 얼굴은 귀엽고, 성실하고 단정한 청년이었다.
군 제대 후 그는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잘 지내는가?” 물었다. 그는 “군 생활을 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는 나를 은인처럼 대했다. 소공동으로 데려가 정성껏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취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외환은행과 코트라(대한무역진흥공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있던 코트라를 권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말했다. 저는 손에 땀이 많이 나서 은행업무는 어렵겠다고 말했다. 전표와 돈을 다루다 보면 불편이 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코트라는 말로 상담하는 일이 많으니,손의 불편이 덜할 것이라 판단했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출신이던 그는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아버지는 경인지구 한 대학의 교수였다. 그의 노력과 환경이 더해져 결국 코트라에 합격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뉴욕 코트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2~3년을 보낸 뒤, 다시 영국지사로 옮겨갔다. 영국에서 그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던 손의 다한증을, 영국에서는 수술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손의 땀이 겨드랑이로 배출되도록 하는 수술을 권했다. 그는 결심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가 그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나는 마치 내일처럼 기뻤다. 늘 손수건을 들고 다니던 그가, 더이상 그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유로운 일이겠는가.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김포공항 코트라 지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어느 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자마자 그가 보였다. 공항에서 자유롭게 오가며 일하는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공항 근처 유명 식당으로 데려가 한상 차려 주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예전에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안보이네?” 그는 웃으며 영국에서 받은 수술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그 웃음 속에는 오랜 고민에서 벗어난 사람의 평안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를 축하해 주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캐나다로 그는 자신의 업무로. 그 후세월은 또 흘렀다. 나도 은퇴했고, 그도 은퇴했다. 문득 그가 떠올라 회사에 수소문해 보았지만, 회사에서는 그의 근황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의 연락처 하나 남겨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 그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건강히 지내고 있을까. 혹시 나처럼, 가끔 옛 인연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있지는 않을까.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베푼 것은 작았지만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베푼 따뜻한 식사와 마음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람은 사라져도 함께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한번 어디선가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좋으리라. 그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