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15일 WednesdayContact Us

[체질컬럼] 체질은 동서양이 똑같다!

2026-04-15 10:27:24

살다가 간혹 그런 생각이 들어온다. 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지난 해 한국 방문 중 고등학교 동창이, 너 좋은데 산다라고 하길래, 내가 지금 한국 땅에 살고 있지 않고 있음에 조금 이상스런 마음이 든 적이 있다. 태어난 곳이 한국 땅, 부모 형제가 사는 땅,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 그런데 지금은 그 땅이 아니라 다른 땅에서 살고 있음이 좀 그럴 때가 있다.

한 번뿐인 삶인데, 어떻게 하다가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땅이 아닌, 지금은 다른 땅에서 살고 있음에 픽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좀 이상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정말 해석이 안될 때가 있다.

내 형제 중에서 나만 한국 땅을 떠났다. 고등학교 몇몇 동창과의 단체 카톡 방에서 나만 외국에 살고 있다. 내가 좀 특이한건가. 그런데, 이 땅에서 여전히 한국말하고 한국 음식 먹고 한글로 된 소설과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러고보면 땅만 다를 뿐이지 이 땅에 사나, 저 땅에 사나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래도 몇 가지 다른 점들 중에서 한가지는 역시 이곳에서는non한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내 사촌 여동생이 서양인(미국)과 결혼했다. 내가 좀 알고 지내는 몇몇 한국인이 non-Korean과 결혼했다. 한국에 살았다면 아마 국제 결혼한 가정을 만날 기회가 별 없었을 것인데, 이곳에 살다보니, 그런 가정을 간혹 만나고 밥도 먹는다.

필자는, 진료하는 한의원에서 국제결혼한 가정을 간혹 만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 부인을 둔 non-Korean남편이 자기부인을 따라 한의원을 오는 것이다.(아주 간혹 한국인 남편, non-Korean 부인이 오기도 한다.) 그리고 체질을 문의해 온다. 그리고 치료가 필요할때는 별 주저함 없이 치료를 받는다.

종종 체질은 서양인에게도(이제부터 서양인은 한국사람이 아닌 세상 모든 인종을 의미한다) 동일하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체질의학이 한국에서 비롯되었고 한국인의 체형과 심성을 기초로 된 것인데, 과연 그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먼저 사람의 혈액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의 혈액형은 네가지로, 동.서양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똑같다. 인체의 구조에 있어서도 안으로의 오장육부로부터 밖의 사지와 이목구비에 이르기까지 똑같다. 지역적인 환경이나 인종간의 차이로 인해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나 피부의 색깔이 다르며 문화가 다르지만 인체의 구조와 감정세계는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장육부의 강약, 허실대소에 따른 체질개념은 어느 민족, 어느 인종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체질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인에게만 국한된 것 같지는 않다. 아흔을 바라보는 중국인 노인(여성)이 해마다 방문하는데, 공자와 맹자를 도외시하고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현 중국정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투로 말을 한다. 그리고 ‘체질’이란 개념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며 체질에 따른 식이의 차이에 대하여 십분 이해한다는 듯한 수긍을 표한다. 그래서 그 전보다 육고기를 좀 더 섭취하고 있다.

필자의 경험상, 인종마다 어떤 체질이 주로 많은가 있어서는 조금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일본인 가운데는 금과 수 체질이 많이 나타나고, 많이 대하지는 않았지만 월남 사람들은 단연코 수양체질이 많으며 인도인 가운데는 목체질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한국인의 거의 반이 태음인 (목)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한국은 어찌보면 정적이고 고요하고 수동적이고 세밀한 음의 나라임에 반해, (그런데 지금은 상당히 양성화 되었다. 긍정 반, 부정 반) 서양사회는 외모나 성격으로 볼 때, 동적이요, 개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양적인 경향이 더 강해 보인다. 필자의 경험상 서양인 가운데는 확연히 양인이 많은것으로 나타나고 그 가운데 태양인(금양, 금음)이 제법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음극과 양극이 서로 끌리는 음양의 이치상, 일반적으로 음인과 양인의 부부가 서로 끌릴 소지가 많고 실제로 이런 체질적 부부 만남이 많다. 그래서 그럴까, 한국인 아내, 서양인 남편의 체질적 만남이 어떤 조화라면 조화가 있어 보이고 실제 좋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구상에 수 천 이상의 인종, 수 만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신비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같은 인간인데, 정말 어떻게하여 이다지도 많은 인종과 언어로 나누어진 것일까? 그러나 좀 더 신비롭다고, 아니, 아이러니하다고, 아니, 기괴하다고 할만한 것은 역사적으로 어찌 그리 인종간의 갈등이 심하여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적의, 증오를 품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역사적 적의, 증오, 착취는 지금 시대에는 과거의 유물이 될 법한데,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일으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적대감과 증오. 수단내의 인종 분종.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이란에 폭탄을 난사하고, 이란이 이에 강력하게 맞받아치고 있다. 도데체 이것이 실화인가.

캐나다에서 사람 한 명 죽으면 가벼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최근 B.C주 텀블러 리지라는 고등학교에서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카나다 전체가 그 참혹함에 며칠을 고통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각 곳에서 자행되는 전쟁에 도데체 몇 명이 죽었는 지 그리고 오늘도 몇 명이 죽어 나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우리는 지금 몇 백, 몇 천, 몇 만이 죽었다는 기사에 얼마나 애통하고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동일하다. 내가 무시받거나 병이 있으면 아픈 것처럼, 저 사람, 모든 사람도 그러하다.  그런데, 저들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왜 남의 나라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일까. 그들이 혹이라도 저들도 같은 인간이요 같은 뿌리를 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같은 땅에 살고 있지 않는다고 해서 폭탄을 투여할 수 있을까.  결국 똑같은 사람이라는 본질적 동질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민족우월주의나 지역주의 같은 이기적 본성에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동서, 문화, 노소, 빈부 그리고 교육과 직위를 막론하고 똑같이,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갖고 있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존재이다. 문제는 국가간, 지역간 그리고 개인간 극도의 이기주의다! 사람마다 조금은 더 남을 생각해 주고 양보해 주고 배려해 준다면 그러한 삶, 사회, 국가 그리고 세상은 참으로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유토피아가 이 땅에 도래할 수 있을까.

어제 필자는 SFU에서 다섯명의 인종이 다른(캐나다, 중국, 아프리카, 한국) 대학 1학년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필자는 즐거웠다. “야, 인생 호사다! 내가 한국땅에 살았다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랴.”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웃으면서, 조그마한, 아주 조그마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보았다.

필자가 그 자리에서, 너나 나나 모두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니, 같은 동족이요 형제라고 한 마디하자, 그들이 십분 동의한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들을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땅에 계속 살 지, 다른 곳으로 갈 지 모르지만, 동질감의 기치를 가지고 산다면 그래도 세상은 유토피아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다.//다니엘 한의원 (604-790-8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