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5일 WednesdayContact Us

[체질컬럼] “질병은 심리적, 도덕적인 사태다.”

2026-02-25 14:18:14

한 때,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문학’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그 때 책을 읽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 시절, 톨스토이를 글에서 만났다. (필자가 존경하는 어떤 신학자는 그를 인간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하는데, 필자 역시 그리 여기고 싶다.) 그런데, 늘 아쉽고 궁굼한 것이, 그런 위대한 소설가가 태어난 땅이 러시아라는 것. 그런 소설가가 태어난 땅은 왜 그럴까.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땅에 톨스토이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책 저 책 조금씩 뒤적이다 보니, 꽤 잘 알려진 인물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역시 아이러니다. 소위 ‘지성’을 세상에서 펼친 인물이 여럿 이상 나온 저 땅은 왜 저럴까.

지난 주, 러시아 소설가가 쓴 책 한 권을 읽었다. 부유한 지주가 아픈 아내를 두고 젊은 여자와 외도를 한다. 그런데, 그 아내가 느닷없이 죽고 무덤에 묻힌 후, 누군가의 고발로 인해, 그녀가 독살되었음이 드러나고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 되 처형당한 이야기다. 범인은 남편이 아니다. 범인은 그 남편과 애증의 관계에 있는 어떤 나이 많은 여인. 그 죽은 여인의 시신을 검시한 의사는 그 남편과 애증관계에 있는 여인이 독살함을 알지만 함구하고 책은 끝을 맺는다.

도대체 이 소설의 메세지는 무엇인가? 그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부지런히 작품후기를 뒤적였지만 어떤 것이 작가의 심중을 대변하는지 알 수가 없는 법. 필자는 거기서 하나의 메세지를 스스로 끄집어 내어 본다. 글에 등장하는 세 여인 중 한 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큰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세 여인의 중심에 있는 남자는 자기 아내를 독살하지 않았지만, 범인으로 지목되어 ‘아픈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가정 비정하고 악독한 인물로 그 나라에 회자된다.

한스 게으르크 가다머라는 철학자가 말했다. “질병은 심리적, 도덕적인 사태다.” 그의 질병 규정이 조금 생소하여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질병을 그렇게 서술한 이는 의사가 아닌 철학자다. 철학자의 질병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무척 독특하다. 질병은 심리적, 도덕적인 사태라….

질병이 심리적인 요인과 관련성이 있음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납득을 할 수 있다. 소위 stress로 인해서 소화장애가 오고, 두통을 포함하여 혈압이 올라가기도 하고, 불면에 이르기도 하며 혈당이 올라가 당뇨병이 오거나 악화되기도 한다. 분명 질병은 심리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질병이 ‘도덕적’인 문제로부터 역시 기인된다는 소견이 대단히 특이하고 파격적이다. ‘심리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도덕적인 것은 선악과 관련이 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한 정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것이기에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양심’이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 철학자의 소견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질병은 심리적 도덕적인 사태다.”

이를 필자 나름대로 풀어보면, “질병은 스트레스로 기인되고 아울러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마음과 행위 (이를 사상의학 창시자 이제마 선생은 邪心怠行(사심태행)이라고 했다)로 비롯된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스트레스가 없거나 혹은 극복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 선하다면, 이것이 건강이다.

‘사심태행’은 이제마 사상의학의 핵심중의 한가지다. 이제마에게 있어 사심은 驕矜伐誇 (교긍벌과:교만, 자긍, 거짓 되이 꾸밈, 과장이나 자랑)이다. 태행은 奪侈懶竊(탈치라절: 강탈<드러내놓고 빼앗는것>, 사치, 게으름, 도적질<몰래 빼앗는것>)이다. 이제마는 사람을 네 가지로 나누어 사심과 태행을 연결시켰다.

사심에 있어, 태음인은 교만이다. 마음속의 우월감으로,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태음인은 속을 여간해서 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에 해당하는 것이 태음인이다. 교만과 더불어 물욕이 강하다.

소음인은 자긍이다. 자긍은 자부심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자부심이 아니라 잘난 체 하는 자부심이다. 자부심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낫다는 것이다. 지나친 경쟁의식과 질투 그리고 시기심이 강하다. 이러한 성향이 권력욕과 연관된다. 권력욕은 모든 사람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소음인이 권력욕이 강하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함에 있다. 지나친 경쟁심과 함께 권력에 대한 집착은 권력남용에 이르고 결국은 자기 파멸에 이르는 것이 세상 이치다.

태양인은 꾸밈과 과장이다. 자기 혼자만이 유능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면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식이다. 안하무인이요 독불장군식이다.(물론 모든 태양인이 이렇지는 않다. 소위 못된 태양인, 자기 성정 다스릴 줄 모르는 태양인이 이렇다.) 소양인은 과장과 자랑이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려는 마음이 강하다. 자기분수를 넘어 과잉소비, 사치에 이르기 쉽다. 다섯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스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이제마에 있어 질병과 수명은 바로 사심태행과 직결된다. 이것을 도덕이라 한다면 도덕이다. 그는, 모든 사람은 한사람도 예외 없이 사심을 타고 나서 태행을 하는데 사람이 수양을 하고 안함에 따라 명(수명)이 기울어지는 것이니 마땅히 삼가야 할 것을 고한다.

자, 여기까지 왔으니, 사람의 도덕성과 체질과의 연관을 조금 더 들어본다. 태양인은 예禮를 버리고 방종하는 비루한 사람이 되기 쉽고 소음인은 의義를 버리고 안일함을 구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기 쉽다. 소양인은 지智를 버리고 사사로운 일을 꾸미는 경박한 사람이 되기 쉽고 태음인은 인仁을 버리고 욕심을 부리는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기 쉽다.

사람은 선한 본성 ‘인의예지’와 악한 본성 ‘교긍벌과’와 ‘탈치라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는 말하기를 천하의 가장 큰 약은‘好賢樂善’(호현악선: 현인을 좋아하고 <혹은 사람을 사랑하고> 선을 즐거워 하는것) 이라고 한다.

‘호현악선’이 도덕이요, 건강이요, 장수다. 사람의 명수는 하늘에 달린 것이 틀림없지만 이는 하늘 편에서 본 것이요, 사람 편에서도 할 일이 있으니 바로 호현악선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이요, 질병은 바로 이러한 도덕의 파행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질병은 심리적, 도덕적인 사태다” 똑같은 인식인 것이다.

그 책의 저자는 남자를 별로 말이 없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아픈 자기 아내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고자 하지만 그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 어떤 젊은 여인과 외도를 하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또 다른 여인(독살자)과 정신적 교감을 한다고 하지만 소설에 나타난 이 인물은 체면과 위신에 상당히 민감하면서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지키고 그러면서 쾌락을 추구한다. 그의 체질은 무엇일까?(필자는 그의 체질이 이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오해를 사고 싶지 않기에 적지 않는다.)

그 작가는 ‘사심태행’을 알았을까. 그 작가는 ‘질병이 도덕적 사태’라는 것을 알았을까. 소설 중의 남자는 질병을 앓지 않았지만, 세 여인 중, 한 여인은 죽고, 나이 먹은 여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가장 나이 어린 여자는 자살을 기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질병이 아닌 형벌로 생을 끝낸다.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소위 죄에 대한 형벌이나 책임일까? 살인하지 않았지만 도덕적 파탄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당위성을 말하고자 함일까.

그렇다면,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어그러진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없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죽음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선한 양심 곧 ‘도덕’회복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삶을 도덕과 연계시키는 것이 진실로 마땅함을 알지만, 도덕적 한계로 인해 고심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도 이제마의 ‘사심태행’과 ‘호현악선’을 한 번 더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