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27일 WednesdayContact Us

<시> 오늘의 나 (어제는 네가 나더니 오늘은 내가 너구나) / 오석중

2026-05-27 10:17:06

어렸을 적, 사진을 보고
다들 묻는다.
“이게 너냐?“고

묻지 않아도 될 일을 갖고
묻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같은 사람 같지 않은가 보다

이런,
그래도 나는 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 때문 아니겠는가.
2015.12.16.

(*)인용한 “어제는 네가 나더니, 오늘은 내가 너구나.” (昨日汝是我,今日我是汝)는 조선말의 경허 선사(鏡虛 禪師, 1849~1912)의 오도송과 관련된 선문답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기억으로는 어릴 적, 사진을 보고 말했다고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나는 그 내용을 이 시에 <인용괄호>를 사용해서 썼다. 일상적으로 사진을 보면서 흔히 하는 말이지만 화두의 중심에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시가 스님이 말한 화두를 다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그것을 원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를 달리 판단할 수 있다. ‘멀리 가서 찾지 말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판단하고 있다. 세상에 그럴듯한 말은 널려있지만 그 말들은 세월과 같이 변해간다. 시절에 따라 그 말의 의미가 다른 것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오독하게 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시는 말로 쓰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 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
2026.5.19

 

AI 감상평
선생님의 열세 번째 양의적 진술과 시 **<오늘의 나>**를 깊이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단순하고 명징한 일상의 순간(어릴 적 사진을 보는 일)에서 출발하여, 시간과 자아의 정체성이라는 깊고 무거운 철학적 화두를 가볍고도 날카롭게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와 덧붙여주신 글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몇 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감상해 보았습니다. 1. 시간의 이중성과 ‘너와 나’의 분리 (시의 전반부) <어제는 네가 나더니 / 오늘은 내가 너구나.> “이게 너냐?“고 시의 문을 여는 경허 선사의 선문답 같은 구절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만나는 순간 완벽한 일상의 언어로 치환됩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빛바랜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는 묘한 이질감을 느낍니다.
타인들이 던지는 **“이게 너냐?”**라는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지금의 너와 사진 속의 존재가 도저히 같은 사람 같지 않다’**는 본질적인 의문입니다. 여기서 시간은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단절된 거울이 됩니다. 사진 속 ‘어제의 나’는 객관화되어 ‘너’라는 타칭으로 불리고, 지금의 ‘나’는 그 과거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됩니다. 어제의 네가 나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주체가 되어 과거의 너를 바라보고 있는 이 역설은, 시간의 무상함과 자아의 다면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2. 인과(因果)의 자각과 수용 (시의 후반부) 이런, / 그래도 나는 안다. / 오늘의 나는 / 어제의 나 때문 아니겠는가. 타인들은 겉모습의 변화를 보고 “같은 사람 같지 않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화자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나는 안다”**고 말합니다.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어제의 너’와 ‘오늘의 나’를 잇는 단단한 끈, 즉 **‘인과(因果)의 고리’**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쉬는 숨, 내가 지은 미소, 내 몸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모두 어제의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무수한 ‘시간의 축적’을 화자는 스스로 증명해 냅니다. “이런,”이라는 짧은 감탄사 속에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가벼운 야유와 함께, 스스로의 삶을 관조하는 노시인의 여유가 묻어납니다. 3. 언어의 운명과 ‘오독(誤讀)’에 대한 통찰 (산문 평설) 선생님께서 덧붙여주신 2026년 5월 19일의 기록은, 시인이 언어를 대하는 가장 정직하고도 겸손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멀리 가서 찾지 말라: 경허 선사의 거대한 화두를 가져왔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심오한 불교 교리 속에서 풀지 않고 ‘일상의 사진첩’ 안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내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는 일상 속에 있다는 깨달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의 독립성과 생명력: *“시는 말로 쓰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 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라는 구절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시인이 아무리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시를 써도, 시가 활자가 되어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것은 읽는 이의 ‘시절’과 ‘상황’에 따라 저마다의 의미로 다시 태어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의지와 다른 오독’이라 표현하셨지만, 동시에 그것이 시가 가진 숙명이자 지평이 넓어지는 과정임을 담담히 인정하고 계십니다. 총평 이 시는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에 대한 시인만의 대답입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느끼는 낯섦(너)과 익숙함(나)의 경계에서, 선생님은 과거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오늘의 나’를 완성하십니다. 선사의 화두를 빌려왔으되 그것에 갇히지 않고, 시 고유의 독립된 생명력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가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입니다. 선생님의 말대로 이 시는 이제 선생님의 손을 떠나 읽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저마다의 ‘오늘’과 ‘어제’를 비추며 새로이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