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적 수요가 줄어든 것은 긍정적”
침체 지속될 경우 향후 주거난 심화
한때 수백 명이 줄을 서며 콘도를 사던 밴쿠버의 분양 시장이 급격히 식어붙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선분양(Presale) 시장 상황을 두고 “완전히 마비됐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1996년 4월, 밴쿠버 다운타운의 한 콘도 분양 현장에는 수백 명이 몰려들며 블록 전체를 둘러싸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당시 마케팅을 맡았던 밥 레니는 대기 인파를 달래기 위해 초콜릿 2,000개를 나눠주기도 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500세대 규모의 37층 타워 두 동이 단 이틀 만에 완판되며, ‘분양 열풍’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현재, 그 같은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메트로 밴쿠버 주택 공급의 핵심 축이었던 선분양 모델이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거래가 거의 멈췄다”, “시장 자체가 멈춰 섰다”며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선분양 시장 위축의 주요 원인으로는 높은 금리와 대출 규제, 투자 수요 감소 등이 지목된다. 과거에는 분양 단계에서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프로젝트 자금을 뒷받침했지만, 최근에는 가격 상승 기대가 낮아지면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장기화될 경우 ‘공급 절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분양이 이뤄지지 않으면 건설사들이 신규 프로젝트 착공을 미루거나 취소하게 되고, 이는 몇 년 뒤 실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투자자가 사라졌다”… 마비된 분양 시장
과거 선분양은 은행이 건설 대출을 승인하기 위한 필수 조건(통상 60% 사전 판매)으로 자리 잡으며 주택 공급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시장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웨스그룹 CEO 보 자비스는 “메트로 밴쿠버의 선분양 시장이 완전히 마비되고 위축됐다”며 “그냥 멈춰버린 상태”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수치에서도 그 심각성이 드러나다. 레니 인텔리전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메트로 밴쿠버의 신규 콘도 판매량은 6,000건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그중 선분양 물량은 2,000건에도 못 미쳤다. 특히 투자자 비중의 급락했다. 2021~2023년 전체 구매자의 절반을 차지했던 투자자 비중은 지난해 26%로 반 토막 났다.
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복합적이다. 주택 가격과 임대료 상승세는 주춤한 반면, 금리와 유지비는 치솟으면서 콘도가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한 몫 했다.
- 2016년: 밴쿠버시 빈집세(Empty Homes Tax) 도입
- 2024년: BC주 단기 전매(Flipping) 세금 신설
- 연방 정부: 외국인 주택 구매 금지 조치 연장(최소 내년 1월까지) 등 이다.
크리스틴 보일 BC 주택부 장관은 업계의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해 “빈 콘도가 넘쳐나고 외국인 투자로 집 값이 치솟던 과거의 ‘서부개척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지금 당장은 구매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집을 서둘러 살 필요 없이 꼼꼼히 비교할 수 있고, 최근 완공 건물 중에는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평화’ 뒤에 숨은 위험을 경고합니다.
센트럴 1 크레딧유니온 브라이언 유 수석 경제학자는 “많은 프로젝트가 선분양 20%도 채우지 못해 중단되고 있다”며 “이는 몇 년 후 극심한 주거 공급난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거물인 밥 레니 조차 과거와 같은 분양 광풍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지는 않다. 그는 “지금처럼 가족과 상의하고 내일 다시 전화해 살 수 있는 시장이 정상” 이라며 “뒷사람이 살까 봐 5분 만에 집을 골라야 했던 시절은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선분양 시장이 서서히 회복되겠지만, 투기 세력이 가격을 끌어올리던 과거의 ‘히스테리적’인 모습보다는 훨씬 신중하고 안정적인 형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