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층 푸드뱅크 이용 횟수 지난해 보다 15% 급증
중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한 뒤 2015년 캐나다로 이주한 징 리 씨가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른 아침 버나비 크리스탈 몰로 향하는 것이다. 전날 팔고 남은 떨이 채소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리 씨는 “시장의 채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신선한 야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리 씨와 남편은 밴쿠버 차이나타운의 1베드룸 아파트에 월세 1,200달러를 내고 살고 있다. 부부의 고정 수입은 중국 정부에서 나오는 연금을 합쳐 한 달에 약 2,000달러 선. 매달 수입의 절반 이상이 고스란히 집세로 나가는 셈이다.
리 씨는 “지난 10년 동안 이곳에서 새 옷을 산 기억은 한두 번밖에 없다”며,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대부분 밴쿠버 구호단체인 ‘유니언 가스펠 미션(UGM)’의 중고 옷걸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활비 부담이 치솟으면서, 리 씨처럼 푸드뱅크를 찾는 노인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BC 푸드뱅크에 따르면, 지난 4월 노인층의 푸드뱅크 이용 횟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나 급증했다. 이는 전 연령대의 평균 증가율(9%)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댄 황-테일러 BC 푸드뱅크 협회장은 “노인층의 푸드뱅크 의존도 증가세가 전체 평균을 확실히 앞지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치솟는 물가 압박으로 푸드뱅크를 찾는 주민들은 늘어나는 반면, 기부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협회 조사 결과, 지난 2024년과 2025년 회원 기관의 95%가 식품이나 현금 기부 유입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황-테일러 협회장은 “2019년 이후 푸드뱅크 이용 횟수는 약 80~90% 증가했으며, 푸드뱅크를 찾는 개인 수 자체도 50% 늘었다”고 설명했다.
“집세 내고 남은 돈 800달러… 우리는 사회 최하층”
리 씨 부부가 집세를 내고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고작 800달러 안팎이다. 이 돈으로 공공요금을 내고 나면 식비를 감당하기 조차 벅차다.
리 씨는 “우리는 모두 저소득층이고 나이도 많다. 사회의 가장 바닥에 있는 셈”이라며 “요즘처럼 물가가 폭등하는 시기에 UGM에서 지원해 주는 음식이 없었다면 당장 먹고 살기조차 불가능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댄 레빗 BC 노인복지옹호관에 따르면, 리 씨 부부의 월 수입인 2,000달러는 현재 BC주 전체 노인 인구의 25%가 처한 현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레빗 옹호관은 “현재 많은 노인들이 ‘간병 등 홈케어 서비스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그 돈을 아껴 집세와 생활비에 보태야 할지’ 생존을 위한 잔인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노인들이 푸드뱅크로 내몰리고 있으며, BC주의 수많은 고령층이 길거리로 나앉기 직전인 홈리스(노숙)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리 씨가 처음 UGM의 문을 두드린 것은 생활비 압박이 극에 달했던 지난 2022년이었다.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진심 어린 상담을 받으며 위로를 얻었다. 이후 그녀는 UGM의 여성·가족 센터를 통해 여러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리 씨는 “스태프들이 옷과 음식을 가져와 편하게 고르라고 했을 때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평생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앞으로 영주권 자격 요건이 충족되어 시니어 연금·복지 혜택을 받게 되면, 달걀이나 우유 같은 식료품을 가격 걱정없이 마음껏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